집에 돌아오니 해가 거의 넘어가고 있었다.
호전된 몽이를 안고 웃으며 나오긴 했지만 예상치 못한 병원비 50만원을 결재하고 나니 걱정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한없이 가볍기만 했던 강아지들이 세월과 함께 무거워져 갔다.
내가 몽이까지 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다.
내게 몽이는 뚜앙이와는 전혀 다른 영역에 있었다.
내 주위사람들이 아는 것과는 반대다. 내가 티 나게 뚜앙이를 예뻐하는 건 사실이지만 뚜앙이는 내 감각표면과 일부 감정영역에 거쳐 있을 뿐이다. 뚜앙이가 내 옆에 있을 이유는 아름답고 맛있고 듣기 좋은 음악을 좋아하듯 내겐 늘 당연하다.
반면에 몽이는 내 사유의 영역에 있다. 나한테 몽이가 존재하려면 상당한 계산과 이성과 도적적 잣대와 의미론적 사고가 필요하다. 몽이는 나의 이성과 높은 정신작용으로 존재하는 아이다.
8년을 키우며 몽이는 내게 기쁨을 주지 않았다.
"나니까 키우지 다른 사람은 못 키워. 남 주면 바로 파양 될 거야"
언니가 몇 년 전 다 큰 몽이를 키우겠다고 했을 때 그러고 말기는 했지만 내 속은 좀 더 구렸다. 몽이는 태생부터 나의 구린 속내에서 탄생한 아이니까...
그래도 수의사 말대로만 된다면 난 좀 더 이성과 정신을 쓸 용의가 있다. 다음 달에 담낭수술을 하고 뚜앙이와 같이 약물치료를 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지홍이가 조금만 도와준다면 가능하다.
내게 다른 선택지가 있을까?
"엄마, 몽이가 더 안 좋아진 것 같애"
아까부터 몽이의 상태를 살피던 지홍이의 말을 건성으로 들었다.
언뜻 보니 집에 데려올 때와 별반 달라 보이진 않았다.
여전히 거동이 힘든 듯 누워 있었지만 내가 6시 반쯤 밥을 줬을 때 밥은 다 먹었다. 약도 먹었다.
병원에서 약을 먹으면 약간 멍해질 수도 있다고 했다.
지홍이는 몽이의 모습을 검색을 해보더니 다시 동물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네네 근데 눈에 촉점이 없고요..... 몸이 한쪽으로 자꾸 기울어요....."
상대방은 데려와 봐야 알 수 있다고 한 듯했다.
"몇 시까지 하나요?"
"지홍아 내일 아침에 병원에 다시 가보자. 지금 가면 응급실로 가야 돼"
몇 시간 전에 병원에 가서 의사의 진찰을 받았고 검사까지 했는데 응급상황이 발생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내 말을 아랑곳하지 않고 지홍이는 응급실이 있는 병원을 찾아 다시 전화를 했다.
어떻길래 저리 유난을 떠나 싶어 몽이를 다시 살펴보니 입에서 침이 흐르고 있었다.
지홍이 말이 맞았다. 응급상황이었다.
다음날 아침 내가 다시 응급실에 갔을 때 몽이는 어젯밤과 똑같은 상태였다.
응급상황이 아니라 이젠 변하지 않을 것 같은 몽이의 모습을 보니 눈물만 흘렀다.
몽이를 안은채 택시를 타고 치료를 받았던 동물병원으로 향했다.
어젯밤 응급실 갈 때도 지홍이의 품에서 힘겹게 빠져나와 나에게로 왔다. 살갑게 예뻐하진 않았지만 그동안 밥 주고 씻겨준 나를 본능적으로 찾고 있음이 느껴졌다.
내 품에 안긴 몽이는 고개는 가누지 못했고 몸에는 힘이 없었다. 몽이의 양쪽 눈은 달랐는데 오른쪽은 흰자가 보일 정도로 힘을 주며 마치 고통을 담은 듯했고 왼쪽은 아주 평온했다.
택시를 타려고 겨우 멈춘 눈물이 또 났다. 뚜앙이 때와는 달리 안타까움의 눈물이 아니라 자괴심과 미안함의 눈물이었다.
이미 난 어떤 것도 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응급실 비용 30만원을 포함해 하루동안 80만원이 든 것이다. 치료는 아직 시작도 안 했다.
수의사의 말은 두 가지로 들어야 했다. 개의 상태와 질병에 관한 이해버전 그리고 과정과 비용버전. 아주 큰 수술비가 아니면 보통 비용은 물어봐야 알려주는데 그냥 "네 네"만 하고 있다가 나중에 청구서를 받으면 얼굴이 굳어질 정도의 금액이 나온다(몇 번 겪으면서 나는 불편하지만 그때그때 비용을 물어볼 정도로 뻔뻔해졌다.)
동물병원에 다다르자 이전에 뚜앙이를 수술했고 어제 몽이의 진료와 검사를 했던 그 수의사에게 무슨 말할지 잠시 생각해 보았다.
몽이를 다시 본 수의사는 약간 당황한 듯했지만 내 예상대로 예상했었다는 태도였다.
"말씀드렸잖아요 그럴 수도 있다고..."
그래도 이 수의사는 아직 나의 신뢰도 안에 있다. 그걸 걸고 넘어가지 않기로 했다. 앞으로도 중요한 결정을 의논해야 한다.
당장이라도 이 사람이 동물병원 의사가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기 위한 갖가지 방법을 내게 제시한다면, 순수하고도 원칙적인 얘기만 한다면 가장 괴로울 이는 보호자인 견주가 된다. 바로 나다. 그녀는 나를 괴롭게 만들 수도 있다.
"밤새 응급실에서 뇌압을 낮추는 처치가 들어갔을 거예요. 그런데도 이 상태인 걸 보면..."
나는 어제 일은 언급하지 않았다.
"몽이한테 어떤 치료를 더 할 수 있나요?"
나는 화두를 과거에서 빼냈다. 그러자 그녀도 매뉴얼과 원론적인 방패를 내려놓았다.
"정말 보호자가 끝까지 치료하겠다가 아니면 사실 지금 할 수 있는 방법은 항경련제와 뇌압을 낮추는 것 밖에 없어요.... 어제 밤새 했는데도 차도가 없는 걸 보면 더 이상은 치료가 안될 수도 있구요. 일단 단계를 높여 반응이 오는지 해 볼 건데 어떻게 될진 몰라요..... 지금 상태로 봐선 죽을 수도 있구요. 각오는 하셔야 해요. 혹시 오늘 밤이라도 전화 갈 수 있어요."
축 처진 몽이를 내 품에서 데려가며 수의사도 눈시울이 붉어졌다.
병원에서 나와 나는 집까지 걸었다. 어제 내린 눈이 녹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날은 추었지만 볕이 좋았다.
슬펐지만 더 이상 내가 선택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만으로 살 것 같았다.
십여분을 걸어 집 앞에 왔을 때 몽이가 8년 전 이맘때 태어났다는 게 떠올랐다.
2014년 12월 16일 뚜앙이는 몽이를 낳았다.
내 이혼과 함께 생이 시작되었으니 둘 다 8년이 되었다.
그게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는 게 구린 비화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