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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현 Nov 03. 2023

아이들의 피로연

잔치국수와 동그랑땡

"원감샘, 이번주 금요일 오후간식 마들렌이요... 그냥 풀무원에 발주 넣었어요."

"네에"

그때 지나가던 원장이  말을 낚아채 다시 물었다.

"이번주 금요일이요? 조리사님 마들렌 말고 동그랑땡으로 발주 넣어주세요."

"네? 동그랑땡이요?"

"그날 행사가 있어요. 결혼식 피로연인데 밖에서 동그랑땡을 부칠 거니까 발주만 넉넉히 넣어주세요."

"피로연이요?"


달이 바뀌는 주이기는 했지만 오후간식과 연동되는 행사가 있는데도 원감은 내게 전달하지 은 거. 그녀는 그제야 자신이 까먹은 걸 깨달은 듯했는데 그 조차도 언급이 없었다.

원장이 행사에 대한 설명을 계속 이어갔다.

"그날 아이들은 결혼식을 할 거고요, 야외 피로연장에서 잔치음식인 전을 부쳐 나누어 먹을 거예요. 관리사무실에 돌리고요.... 조리사님은 재료만 준비해 주시면 돼요. 어머니들 몇 분이 오셔서 도와주시기로 했어요."

"결혼식이요? 결혼식 하면 잔치국수죠."

난 또 이렇게 말해버렸다.

"맞다 국수! 잔치니까 전을 먼저 생각했는데.... 조리사님 말을 들으니 잔치국수도 확 당기네요.....

두 가지를 다하기엔...."

원장이 내 말에 혹해서 망설였다.

"어머님들이 전은 부친다면서요, 그럼 제가 안에서 잔치국수  줄게요."

원장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바로 옆에 있던 원감은 말없이 듣고만 있었다. 섣불리 얘기했다간 주요 행사를 잊고 있었다는 게 부각될 테니 말이다.

나는 얘기를 마무리 지었다.

"그날 원래 간식이 빵이니까 잔치국수는 괜찮을 것 같은데..... 동그랑땡과 같이 나가면 점심이 생선가스라 감수가 안 나올 수도 있겠어요. 일단 감수 넣어볼게요 원장님."




아이가 6살 즈음 엄마와 아빠가 처음엔 모르는 사이였다고 얘기했더니 진짜냐고 놀라 물었다.

엄마는 처음부터 엄마로, 아빠는 처음부터 아빠로 태어났다고 생각할 아이에게 그게 아니라는 걸 알려주기란 쉽지가 다. 


남남이었던 엄마와 아빠

사랑하게 되어 프러포즈를 하며 결혼을 약속하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아이를 낳고 돌보며 한 살이 되는 날 돌잔치를 하고,

그 아이가 커서 다시 결혼시키는 까지 

가족의 긴 여정을 체험하는 행사라 아이들도 흥미로워했다.


요즘은 행사의 무대를 꾸며주는 업체가 따로 있어 이런 시공간을 재연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행사 전날 시간이면 아이들의 교실은 갖가지 체험장이 된다.


아이들은 좋아하는 친구와 짝을 지어 프러포즈를 하였다. 표정이 너무 생생하여 내가 다 설레었다.

결혼식의 신랑 신부가 되어보고,  하객이 되어 웨딩 사진을 완성다. 

한 달간 프로젝트 수업을 하며 가족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엄마 속에 있을 때의 초음파 사진을 가져와 자기 모습을 클레이로 만들었다.

도 없이 보았을 자신을 안고 있는 돌사진 속으로 들어가 엄마 아빠가 되어 보기도 했다.




그날 주방도 외부점검이 3개나 잡혀 있었다. 코로나가 끝나자 미루거나 간소화되었던 일정들이 시에 몰린 것이다. 그냥 한 번에 끝내자 싶어 일정 조정 없이 오케이를 했다. 원장 말대로 국방부 빼고 다 온다는 말이 실감 났다.

행사의 끝은 자신들이 키운 자식을 결혼시키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이들은 피로연장에서 잔치국수와 동그랑땡을 먹었다.

행사는 잘 마무리되었고, 주방 점검도 무사히 끝났다.

퇴근하려는데 원감이 나를 보며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 난 조리사님이 힘드실까 봐 그날 부러 암말 안 하고 있었는데..... 에구 조리사님이 또 일을 만들어하셨네요...... 암튼, 수고 많으셨어요."

구렁이 담 넘어가듯 넘기는데 선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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