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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현 Oct 15. 2023

나의 빈틈을 찾아내도 칭찬을 하는 이유

어린이급식관리지원센터의 순회점검

우리 원은 재원생이 많아 새 학기가 시작하는 3월에도 비교적 평화로운 편이다.

올 해는 재원생의 동생들이 세명이나 들어왔다. 


3월은 나도 마음이 바쁘다.

일 년을 잘 보내려면 나름 전략을 워야 한다.

각반마다 먹는 양 분위기, 선호하는 음식 등을 파악하고, 관리대상(잘 안 먹는) 아이의 이름과 성향을 빨리 기억해야 한다.

나의 레이더망에 들어온 아이들은 앞으로 나와 좀 더 친해지게 될 것이다.


잘 안 먹는 아이는 대부분 타고난 입맛 때문이다.

맛에 대한 선호와 민감도가 떨어진다.

이런 아이에게는 거꾸로 접근하는 편이 좋다.

음식과 연결된 즐거운 기억을 먼저 만들어 주는 것이다.

먹는 것에 대해 작고 긍정적인 경험이 쌓이게 되면 맛에 관심을 갖게 된다.

나는 그 작고 즐거운 기억을 만들어 주려 한다. 아이들은 달라질 것이다.


새로 온 아이들 중 잘 안 먹은 아이들의 유형을 분석해 다. 하언이는 멍때리기형, 하정이는 느린보형, 지호는 고기반찬일 때만 잘 먹는 편식형인 듯했다. 하언이의 멍때림이 예사롭지 않다. 하긴 소은이가 요즘 밥 먹는 걸 보면 하언이 정도는 가을이면 될 듯싶다.

  



그동안 코로나 때문에 축소되거나 온라인으로 간소화되었던 일들이 작년 가을서부터 하나 둘 재기되었다. 

올 해는 개원 이후 제대로 된 운영을 하는 첫해가 되는 것이다. 

주방도 올해 도우미샘이 한 명 더 들어왔다.

작년에 원장이 구청을 쫓아다니며 인력요청을 한 끝에 석식을 제공하는 국공립 어린이집에 보조인력을 지원받게 되었다.

나는 설거지, 청소, 쓰레기 버리기 등 잔일은 안 하게 되었지만 급식관련한 모든 일을 맡게 되었다.



어린이집 급식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어린이급식지원관리센터는 주기적으로 방문해서 주방을 꼼꼼히 점검하고 조리사에게 위생교육을 하고 간다. 

보건소에서 나오는 불시 점검은 적발 시 법적제재가 있는 반면 순회점검은 교육을 목적으로 한다. 하지만 담당자에 따라서는 먼지하나까지 턴다 할 정도로 깐깐하게 관리해서 일 년간 점수를 매긴다.

작년엔 일손이 부족해서 평균점수 97.5를 받았었다. 점수에 따라 다음 해 순회점검 횟수가 정해지는 0.5점 차이로 올해 검 횟수가 6번이라 했다.

"그래요? 그럼 올해  백점 맞으면 되잖아요... 그러지 뭐... 올해는 인력도 있는데..."

점수를 더 잘 받으면 점검 횟수가 준다니 못 할 것도 없었다. 교육이 목적이라 방문 날짜를 알리고 때문에 만반의 준비만 하면 올 100점을 받는 게 불가능하지는 않다.

올해 첫 순회점검은 2주 전부터 준비를 했다.




우리 원은 보육교사들은 주 업무인 아이들의 보육 말고도 소방, 안전, 급식, 교육파트를 하나씩 맡아 일 년간 관리하게 된다. 원감은 각파트의 샘들을 체크하고 문제가 발생하면 관리책임을 물을 수 있다.

급식파트를 맡은 샘은 순회점검이 나오기 전에 자체점검을 해서 원감에게 보고해야 한다. 최종관리자인 원장은 중간관리자 원감에게 체크사항을 보고 받는다.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업무방식인 건 맞다.

하지만  효율성이라는 이면에는 구조상 모든 샘을 심리적으로 장악할 수 있게 되어있다.

샘들은 메인업무 말고도 많은 업무고리에 엮여 부수적인 업무까지 틈틈이 해야 한다.

중간관리자인 원감은 이런 구조여야 자신의 업무를 분담할 수 있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도 책임을 나눌 수 있게 된다.

이 작은 조직에서 이렇게까지 효율성을 극대화해서 생기는 이득이 과연 누구에게 향할까 나는 작년부터 궁금하였다.



그럼 조리사인 나의 위치는 어디쯤일까?

원감은 조리사인 나를 주방 책임자라 칭하지만 실은 말단에 둔 거나 다름없었다. 급식담당샘한테 외부점검을 관리하도록 하고 자신은 그 샘을 체크하면 주방에 들어가지 않고도 조리사와 주방을 관리하게 되는 셈이다.

조리사인 나는 결국 급식관리지원센터, 급식담당샘, 원감, 원장 등의 관리를 받게 되고 그렇게 되면 심리적으로 한없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사소한 지적사항이라도 생기면 스스로 체크에 체크를  해가하며 내 노동력을 한없이 쏟아붓게  것이다.

조직의 늪이라는 게 바로 이런 것이다.

이럴 땐 *범주화를 달리 하는 것으로 대처할 수 있다


*범주화(categorigation); 비슷한 성질의 것이 일정한 기준에 따라 하나의 부류로 묶이게 됨을 한다.




올해 급식파트를 맞은 샘은 성품이 온화하고 아이들한테도 무척 다정한 신입샘이었다. 

"원감샘, 이전 샘들은 아주 잘 잡아냈는데.... 특히 작년 그 샘... 자기는 털털해도 보는 눈은 예리하더라고요... 올해 샘은 너무 유하게 보이시네요...."

순회점검을 대비해서 내부점검을 어떻게 하는지 새로  샘에게 교육을 하고 있는 원감에게 나는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교육을 받은 신입 샘은 적잖은 부담감으로 책임을 다해 나의 빈틈을 찾아내게 될 것이다.

"샘이 잘 아내야 요. 알아서 잘하시려니 생각하면 안 돼요. 제눈엔 익숙해서 못 보는 것들이 분명 있을 거예요, "

이러면 나의 빈틈을 찾아내도 서로 언짢을 이유가 없다.



원감에게도 그녀가 떠넘긴 업무를 다시 갖고 다.

식자재검수서와 급식일지, 키즈노트에 올린 급식 사진을 대충 훑어본 후 한번 더 체크해 달라고 했다.

"내가 한 번 체크하긴 했는데, 내 눈에 안 보이는 게 분명 있을 거라니까요. 크로스 체크를 해야죠"

이쯤 되니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는지 원감은 귀찮은 듯 댓구했다.

"뭘 또 해요."

"시간 날 때 한 번 더 봐줘요 관리자의 눈으로 봐야지요. 이번엔 완벽하게 해 보자고요."



다음날 급식지원센터에서 순회방문을 왔다.  

바뀐 담당자는 신참인 듯했는데 배운 대로 모든 걸 다  털고 갔다.

우동장국에 들어 있는 가다랑어의 원산지 표시를 지적했는데 경미해서 원장에게는 보고하지 않겠다고 했다.

가다랑어의 원산지 표시는 원감과 내가 뭘 써야 할지 몰라서 얘기만 하다가 넘셨던 부분이었다.


그날 오후에 내가 먼저 선수 쳤다.

"원감샘 우리가 이거 뭘 써야 하냐고 얘기했었잖아요... 이거더라구여" 하며 쯔유에 붙어 있는 코딱지만 한 글씨를 보여주었다. 방점은 '우리'였다.

"여기 외국산 보여요? 우리 눈엔 보이지도 안잖아요."

원감은 '우리'가 되어 말했다.

"그러게요 너무 작아서 안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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