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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현 Jun 12. 2024

최고의 스펙을 가진 보조 조리사

"서로 마음 다치지 않게 잘해봅시다."


출근시간보다 30분이나 일찍 와서 조리복과 개인컵, 칫솔등을 줄줄이 꺼내어 개인 사물함에 넣고는 내게 던진 첫마디였다.

..... 학교, 어린이집등 단체급식을 20년 가까이하셨는데 5년 전 정년퇴직하셨데요, 자기는 집에서 쉬지 못하는 성격이라 하시더라고요....

원장이 같이 일할 시간제 보조 조리사에 대해 알려줬을 때도 느낌이 좀 싸하긴 ,

 느낌이 틀리지 않을 것 같은 또 느낌이 들었다.


"그럼요, 잘 부탁드립니다 선생님."

나는 불안한 속내를 감추고 밝게 인사했다.


보조샘은 첫인사만 서울말씨로 또박또박 말하고는

그다음부터 따끈따끈한 남도사투리를 구사하기 시작했다. 서울 온 지가 40년이 다되어 간다는데 그럼에도 오리지널리티가 살아 있었다.

"여수에 사는 잡것들은 오히려 서울말씨를 쓴당께, 나안 모뎌!"




그렇게 존재감 있게 나타난 나의 보조샘은 매 순간 존재감을 까먹지 않게 해 주었다.

처음 경험해 보는 소란스러움이었다.

그건 수다스러움과는 달랐다.

"으매 더운거 으매 더운거... 겁나게 덥구마이.... 그려그려 선풍기를 켜야겠구먼....으매 시원한...이제야 살 것 같네그려..."

"으매 배부른 거 배터져 죽게고마.....아이고 배불러라...무 많이 먹어부렀네..."

매일 그 걸쭉한 남도사투리로 자신의 감각상태를 실시간으로 생중계하셨다. 거기에 틈나는 대로 지금의 일상은 물론, 수십 번도 더 얘기했을 굵직굵직한  경험까지 소상히 알려주셨다.

나는 사흘 만에 그녀의 가족관계와 반려견 감자에 대해서도 잘 알게 되었고, 그녀가 처음 단체급식조리를 시작한 건 ㅇㅇ여고였다는 것까지 기억하게 되었다.

그쯤이야 적응의 범위에 둘 수 있다.


그런데 보조샘은 자신의 화려했던 단체급식 경력을 며칠에 거쳐 얘기하더니 조리사 경력으로는 4년이 채 안된 나를 병아리처럼 대하기 시작했다.

20년간 쌓은 단체급식의 노하우를 병아리 메인조리사에게 잘 가르쳐줘야겠고 나름 큰 그림을 그리고 온 듯했다.


"..... 이럴 땐 더 쉬운 방법이 이쓰.....고것을 세로로 고러코럼 썰지 말고 가로로 길게 썰어 크게 부쳐서리 가위로 똑똑 라내면 훨씬 빠르자녀..."

그녀가 대단한 팁처럼 알려주는 방법은 매번 내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렇긴 하죠... 근데 그러면 가지전이 물컹물컹해서 맛이 없잖아요, 전은 표면의 바싹한 맛으로 먹는 건데..."

"....."

자신의 기대와는 달리 나의 호응이 없자 그녀는 잠시 후퇴한 듯 잠잠하다 다시금 기회가 생기면 처음인냥 떠들었다.

"달걀찜을 바트에 하나도 안 달라붙게 하는 똥찬 방법이 이쓰." 

그녀는 재빠른 동작으로 수납장에서 롤팩꺼내 들었다.

"뜨거운 찜기에 넣을 건데 비닐을요?.... 안 되죠."

그러자 이내 포기하고는 롤팩을 도로 넣두었지만,

아직 내게 전해줄 아흔아홉 개의 꿀팁이 남아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쉽지 않은 일 년이 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그녀를 뽑은 애꿎은 원장에게로 점점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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