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와 원망 말고 냉정한 분석을 해보자
스레드에서 그런 글을 봤다.
50대 엄마인데 20대 딸이 일할 생각도 없고 평생 백수로 집에서 엄마아빠랑 같이 살고 싶어 해서 어떻게 해야 하나 눈앞이 캄캄하다는 엄마의 고민 글이었다.
구직 활동 안 하고 그냥 쉬는 대졸 백수가 405만 명으로 역대 최대라 한다.
댓글을 보니 내가 그 사람이다, 우리 집에도 있다, 주변에도 있다 등등 손을 드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도 그중 한 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우울은 아마도 여기에서 온 것 같다.
온실 속 화초가 온실을 나와 힘든 거라고 한다.
너무 곱게 자란 탓이라고 한다.
독립할 힘이 없어 그런 거라고 한다.
맞다.
내가 우울한 이유인 것 같다.
무언가 할 힘이 없다.
작은 파도에도 사르르 무너진다.
해봐야지 마음먹고 작은 성을 쌓아도 파도 한 번이면 그냥 무너지고 만다.
우울증, 무기력증, 백수, 히키코모리, 정신병, 나르시시스트, 회피성 성격장애…
모두 다 내 이야기 같다.
그렇다고 그동안 그렇게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고 가만히 있던 건 아닌데.
내 20대는 열정 하나로 다양한 것들을 시도해 보았다고 자부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활동들에서 어느 하나 성공의 맛을 본 적은 없었고, 좌절과 패배만 맛보았을 뿐이었다.
삶에 대한 집착도가 높았던 것 같다.
하고 싶은 것을 꼭 해야 하고, 싫은 건 꼭 피해야 하고.
정말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싶었다.
나의 노력 부족도 맞다.
적성에 맞지 않았다는 것도 맞다.
그럼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답답하다.
우연히 생각지도 않게 새로운 기회가 생겼다.
너무나 생각지 않은, 생각한 적도 없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던 기회여서
마냥 좋고 감사하기보다 이제 하다 하다 여기까지 가게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감사하고 좋은 기회이고, 남들은 이것도 어려운 기회라 생각할 수 있다.
어쩌다 여기까지 왔는지 참내 인생 도대체 어떻게 흘러가는 건지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삶에 대한 집착도가 높고, 그동안 한쪽의 극단에 있던 것이라 중도를 지키기 위해 반대의 극단에서 나를 끌어당긴 것이라 받아들이기로 했다.
원치 않았던 것이어도, 나에게로 온 것이라면, 감사히 여기자.
삶에 대한 집착, 내가 원하는 것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나에게 오는 것들을 저항하지 않고 받아들여보자.
내가 전혀 원하지 않던 것들이라도 이것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기대해 보자.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저 받아들여보자.
그래, 그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