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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여우 Jun 01. 2023

양심없는 글쓰기

사회복무요원 여우씨의 일일 - 21


그러니까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인 것입니까? 우리들은 단지 보편적인 경험을 한 것뿐입니까? 우리는 존엄하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을 뿐, 언제든 아무것도 아닌 것, 벌레, 짐승, 고름과 진물의 덩어리로 변할 수 있는 겁니까? 굴욕당하고 훼손되고 살해되는 것, 그것이 역사 속에서 증명된 인간의 본질입니까? (<<소년이 온다>>(2014). 한강. 134쪽.)


전쟁으로 흘러가는 익숙한 역사가 새삼스럽지 않게 느껴질 때마다 불쾌하게 벅차 오르면서 목이 멘다. 나는 나를 버릴 수 없기 때문에, 나를 둘러싼 일상의 평화를 깨뜨릴 수 없기 때문에, 이 공포감의 보편성은 장담할 수 없기 때문에, 역겨운 핑계는 많고 부질없는 자기위로는 그대로 자기혐오로 이어진다. 육호수 시인의 시집을 읽다가 거울이라는 단어의 반복이 괴로워 신경질적으로 덮었다.


무엇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지 알 수 없지만 소름이 돋아날 구석이 없을 정도로 어딘 가에 빈틈없이 붙들려 있다. 지금도 총에 맞아 비틀거리고, 살아있는 자들에게 함부로 밟히고 걷어차이며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사람들이 있을 텐데, 도륙난 고깃덩이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으며 연소를 기다리는 시신 더미는 더욱 높아지고 있을 텐데, 그들의 날숨과 각질과 시취가 편서풍을 타고 내 머리에 앉았을 텐데, 내 코와 입으로 들어와 내장 어딘가에 흡수되었을 텐데.


웃음소리를 듣는 것이 힘들었다. 함께 웃어야만 할 때는 더욱 고통스러웠다. 국가를 지키기 위해 국가가 버린 사람들을 보는 것이 두려웠고, 피해를 예상하기 어려운 폭행과 살인 사건들이 증가하는 추세라는 전문가들의 말이 무서웠다. 수천의 죽음은 차갑고 건조한 단어들로 소개되지만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이슈는 감정적이고 호전적인 어휘들로 표현되는 것에 익숙해지고 싶지 않았다. 익숙해지고 싶지 않다.


호명되지 못한 소멸은 비인격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름을 붙이며 권력을 휘두르는 것은 인격적인가. 미지칭의 존재들의 지속적인 사라짐을 그 자체로 매 순간 기억하고 싶다는 광기의 윤리의식과 삶의 무의미함은 어쩔 수 없다는 이성적인 허무주의의 매일 같은 대결. 전자의 마음으로 후자의 삶을 꾸리는 잔인함.


이 비겁함을 어떻게 견뎌낼 수 있을까. 망각의 고통을 이겨내기 위한 바르트의 글쓰기에는 기억의 고통이 수반된다. 안도감과 죄책감이 뒤섞인 채 최루탄과 지뢰를 떠올리며 어둠 속에서 화염을 보며 잠에 드는 모순적인 나날들, 더 많이 망가져 있지 못해 괴로움. 더 많이 망가져 있지 않아 다행임. 끝나지 않는 변증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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