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M씽크 3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요 Nov 06. 2020

14F는 왜 90년대 TMI를 알려줄까

14F '띵★작 문화재'와 엠빅뉴스의 '그땐 그랬지'

궁금한 이슈를 알아보기 위해 포털 검색창에만 키워드를 입력하던 시대는 지났다. 시사 이슈를 다루는 SNS 계정에 간편하게 요약된 카드 뉴스를 읽고, 정치 분야 팟캐스트를 듣거나, ‘뉴닉’, ‘어피티’처럼 밀레니얼 세대의 눈높이에 맞추어 가공한 뉴스를 메일로 보내주는 서비스를 구독하기도 한다. 뉴스 소비에 있어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 특히 유튜브의 활용도 크게 증가했다. 닐슨 조사에 따르면, 2019년 4월 기준 구독자 1만 명 이상의 뉴스 채널 계정은 306개, 그중 방송사가 만든 디지털 언론 채널은 62개라고 한다. 변화하는 소비 행태에 따라 디지털 혁신을 추구하는 방송사들이 유튜브 유행을 따라 앞다투어 채널을 개설하면서 안방을 벗어난 제2의 콘텐츠 경쟁의 장이 열리게 된 것이다.


뉴스 보도 분야에 있어 지상파 방송사들은 대체로 방송 뉴스 영상을 편집 없이 거의 그대로 올리는 기본 뉴스 채널과 특정 연령대와 성별을 타겟팅하여 새로 구성한 콘텐츠를 올리는 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MBC는 MBC News 채널과, 30~40대에 초점을 둔 엠빅뉴스, 그리고 20~30대 여성을 주 시청층으로 둔 14F 채널을 운영 중이다. 엠빅뉴스14F는 기존 뉴스와 다르게 시선을 끄는 제목과 썸네일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뉴스를 쉽고 재미있게 해설해주는 콘텐츠를 올린다. 두 채널의 메인 콘텐츠는 지금 가장 주목할 만한 이슈의 요약 영상이지만 14F의 ‘아이돈케어’, ‘일사에프 엔터’, 엠빅뉴스의 ‘궁금해 MLB’, ‘엠빅X로드맨 앤 더 시티’처럼 채널 특성에 따라 기획한 오리지널 콘텐츠도 꽤 많은 편이다. 그런데 시시각각 변하는 현재에 가장 집중하는 시사 채널과는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플레이리스트들이 있다. 70년대부터 90년대의 뉴스를 재조명하는 14F의 ‘띵★작 문화재ㅣ아카이브 탐사대’와 엠빅뉴스의 ‘그땐 그랬지’ 코너다.

채널의 주요 콘텐츠처럼 매일 업로드되진 않지만 그래도 한 달에 적어도 한 번, 많게는 3번 정도로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띵★작 문화재’는 오렌지족, 옛날 CM송, 90년대 인기 연예인 등의 전반적인 문화를 주로 다루고, ‘그땐 그랬지’에서는 한국 현대사의 주요 사건과 위인, 명절 풍경, 당시 스포츠 이슈 등이 주제로 다뤄진다. 사실 이런 이야기들은 전혀 모른다고 해도 지금 내가 발 딛고 있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을 이해하는데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런데도 시사 이슈를 다루는 채널들은 어쩌다 옛날이야기를 계속 꺼내 오게 된 걸까.





뉴스 채널도 피해 가지 못한 레트로와 뉴트로

레트로(Retro, 복고)와 뉴트로(Newtro, 복고의 재해석)가 미디어, 문화, 마케팅 등의 산업군에서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은 건 최근의 일이 아니다. 2000년대부터 각박해지는 현실에 저항해 과거의 것을 찾는 레트로가 유행했고, 그 과거를 경험하지 않았음에도 복고 문화를 오늘날의 관점에서 재해석하여 즐기는 10~20대가 증가하면서 뉴트로가 등장했다. tvN의 <응답하라> 시리즈, 탑골 공원으로 인기를 끈 SBS <KPOP CLASSIC>, SNS를 통해 다시 부상한 시트콤 <순풍 산부인과>와 <야인시대>의 짤과 유행어, 그리고 올해 <놀면뭐하니?>의 ‘싹쓰리’와 <문명특급>의 ‘숨듣명 콘서트’까지 수년째 이어지고 있는 뉴트로 트렌드는 대체로 드라마나 예능에서 자주 보였지만, 이제는 디지털 뉴스 채널들까지 그 흐름을 이용해 조회수를 얻기 위한 목적으로 8090년대 문화를 재조명하는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 과거의 생활 모습이나 당시 뜨거웠던 이슈들을 다루는 이런 뉴트로 콘텐츠는 그 시기를 거쳐온 사람들에게는 추억을 소환시키고, 그때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아날로그 문화를 통해 신선함과 새로움을 전달한다.

띵★작문화재 ‘마르쉐부터 씨즐러, 코코스까지. 특별한 날에만 가던 90년대 패밀리 레스토랑 감성’ 영상에 달린 댓글들

뉴트로 콘텐츠들이 주로 90년대를 다루는 이유는 그때 학창 시절을 보낸 세대가 이제 30-40대가 되어 미디어 산업의 주요한 제작자나 구매력 있는 소비층이 되었기 때문이다. <고스트버스터즈>(2016), <기묘한 이야기>(2016-2019)처럼 2010년대 미국 영화와 드라마에서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하거나 80년대 작품과 문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유다.




5분이면 되는 스낵커블(snackable) 아카이브 다큐멘터리

아카이브(Archive)는 보통 물리적인 장소의 존재와는 상관없이 미디어 환경에서 사진, 이미지, 영상, 기타 정보를 저장하는 장소 또는 저장된 정보라는 의미로 통용된다. 영상 아카이브를 편집하여 재구성하는 방식은 다큐멘터리에서 종종 사용되는데, ‘그땐 그랬지’와 ‘띵★작 문화재’도 넓게 보면 그런 아카이브 다큐멘터리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 MBC가 지금까지 보관해온 대량의 영상들을 하나의 주제로 엮어 재편집한 이 코너의 플레이리스트를 만약 한 번에 모두 시청한다면, 텔레비전으로 송출되는 한 시간 분량의 방송 다큐멘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단지 분량이 긴 콘텐츠에 오래도록 집중할 시간이 없는 MZ세대의 소비 성향에 맞추어 5분 이내의 짧은 영상에 다양한 자막을 입혀 가벼운 간식(스낵)처럼 소비할 수 있는 스낵커블 다큐멘터리가 된 것뿐이다. ‘띵★작 문화재’와 ‘그땐 그랬지’는 다큐멘터리의 관습적인 특징인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 대신 4:3 비율의 아날로그 방송 화면에 복고풍 서체와 색감의 자막, 그리고 그 시대 인기가요를 배경음으로 넣어 다른 콘텐츠보다 과거적인 느낌을 풍기게 한다.

아카이브 다큐멘터리는 과거의 맥락을 보여줌과 동시에 현재의 시각으로 재해석이 이루어진다는 특징을 가진다. 양방향 소통을 즉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유튜브에서는 콘텐츠의 재해석이 수용자의 감성과 일치하는지 아닌지를 댓글로 파악할 수 있다. ‘그땐 그랬지’에서 70, 80년대의 추석 풍경을 다룬 영상은 마지막에 ‘온 가족이 함께 모이는 과거의 추석이 진정한 의미의 추석이 아닐까요’라는 자막으로 끝난다. 이 자막에 공감하지 못한 사람들은 “추석의 의미는 변하기 마련이다”, “마지막에 나오는 문장 뭐냐”, “예전처럼 어머니들만 죽어나가는 꼴 못 보겠어”라는 댓글을 남겼다.




뉴스도 재밌어야 한다! 시사 채널 속 예능 코너

‘띵★작 문화재’와 ‘그땐 그랬지’가 보여주는 이야기는 현재의 사건이나 뉴스와 거의 관련이 없다. 저녁 8시 MBC 뉴스데스크의 헤드라인이나 주요 뉴스와는 접점을 찾기 어렵고 그나마 연결 지을 수 있는 건 <놀면뭐하니?>의 환불원정대로 돌아온 엄정화나 추석 특집으로 KBS에서 방영된 나훈아의 대규모 콘서트 같은 문화 이슈들이다. 사회 이슈를 친근하게 전달한다는 시사 채널의 성격과 거의 맞지 않는 이 코너들은 결국 MZ세대가 뉴스 채널에 접근하기 쉽도록 흥미를 유발하는 재미 위주의 콘텐츠라는 것을   있다. 이는 연성 뉴스에 더 초점이 맞춰지는 21세기 디지털 저널리즘의 씁쓸한 단면이기도 하다. 스포츠, 연예, 논란이 불거진 정치인이나 흉악 범죄와 같은 연성 뉴스의 조회수가 방송사가 생각한 주요 뉴스의 조회수보다 훨씬 높게 나오는 유튜브에서 조금이라도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기 위해 마련한 예능적 성격의 시사 콘텐츠인 것이다. 이렇게 재미있는 정보 전달을 목적으로 하는 영상이 없고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뉴스를 굳이 시청할 이유가 없는 ‘흘려보내는 정보’ 정도로 받아들이는 20대의 모습이 드러나기도 한다. 또한, 지상파 뉴스 채널에서 예능적 아카이브 콘텐츠들이 계속해서 나오는 것은 선택할  있는 콘텐츠가 무수히 많은 환경에서 뉴스도 그저 하나의 선택지로 전락했기 때문에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노력으로도   있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여러 의의에도 불구하고 ‘띵작 문화재’와 ‘그땐 그랬지’의 한계는 분명하다. 우선, 차별성이 부족하다. 다루는 주제의 범위만 약간 다를 뿐이지 사실 ’띵★작 문화재’와 ‘그땐 그랬지’를 구분하기는 어렵다. 엠빅뉴스와 14F 두 채널 모두에 비슷한 코너가 존재해야 할 마땅한 이유도 없는 것 같다. 후발 주자이기는 하나 KBS도 옛날티비 채널에서 ‘그땐 그랬지:708090 관찰기’라는 이름으로 거의 똑같은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 차별성을 갖추기 어려운 이유는 아마도 소재가 과거의 뉴스 영상으로 제한되기 때문이겠지만, 더 좋은 콘텐츠가 되기 위해선 단순히 영상을 이어 붙이는 것에서 나아가 다른 방식으로 활용하는 독자적인 기획이 필요하다. 지상파 중에선 유튜브에 가장 잘 적응했다고 평가받는 스브스뉴스의 ‘오리지널 시리즈:다시 만난 세대’가 세대 화합이라는 명분으로 과거의 문화를 되짚어본 것이 좋은 사례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방송사 유튜브 채널의 빈약한 기반이다. 현재 방송사들의 유튜브 채널 운영은 대부분 계약직이나 인턴들이 맡고 있고 방송사에서도 언제까지 인기가 지속될지 모르는 플랫폼에 큰 투자를 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뉴미디어 콘텐츠에 관한 계획이 현재 인기 있는 플랫폼에서 최대한 조회수를 높이는 것 외에는 장기적인 비전을 가지기 어렵다는 것도 문제이다. 물론 디지털이라는 이름을 달고 새로운 방향을 탐구하는 부서들이 생기는 추세지만, 오랜 고민을 바탕으로 한 좋은 기획이 나오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아쉽게도 아카이브 활용 콘텐츠의 발전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참고 자료

‘단순한 복고가 아니다, 뉴트로의 법칙’. N콘텐츠 14호. 18-21. 2019

임윤미. "동시대 다큐멘터리의 아카이브 미학 실천 분석." 국내석사학위논문 한국예술종합학교, 2020. 서울

유승현, 정영주 (2020). 뉴스 유통의 변동과 지상파 뉴스 콘텐츠의 대응전략에 대한 탐색적 연

구 : 지상파방송 유튜브 뉴스 채널을 중심으로. 방송통신연구, 68-109.

매거진의 이전글 내맘대로 MBC 웹예능 성적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