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멈추지 않고 흘러가지만 인생은 반복된다.
우리는 시간의 수레바퀴를 굴리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수레바퀴 안에서 돌리고 있는 것일까?
어느 쪽이든지 길 위에 있다면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진선은 코로나19로 인해 그동안 겨우 버티고 왔던 가게 문을 얼마 전에 닫았다. 차마 스스로는 내리지 못하는 결정을 하게끔 도와준 팬데믹이 고맙기까지 했다. 미국 영주권자와 결혼해서 3년을 기다렸다가 태평양을 건넌 후 30년의 반 이상을 일해온 세탁소였지만 미련은 없었다. 다만 기억은 몸이 더 잘하는 법이라서 일상의 습관과 원했지만 갑자기 찾아온 휴식의 시간은 서로 친해지지 않아서 아침에 눈을 뜨면 좀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역시 휴식은 일하고 난 후에 쉬는 시간이라 그런지 그렇게 달콤했던 주말 오후의 휴식은 이제는 밤에 잠이 오지 않을까 염려돼서 졸린 눈을 참아가며 한국 드라마를 보아야 하는, 일하는 시간처럼 되어가고 있었다.
지난밤에도 진선은 한밤중에 잠이 깨어 뒤척이다가 따듯한 우유를 마시고 숫자 1000부터 거꾸로 세기를 하다가 겨우 잠이 들었다. 잠깐 잠든 것 같은데 머리를 때리는 날카로운 소리에 눈을 떴다. 무의식적으로 알람을 맞춰 놓고 자던 습관대로 핸드폰을 잡고 보니 그 소리는 오늘 통행금지 시간을 알리는 경고음이었다. 요 며칠 계속되는 인종차별 시위와 약탈로 인해 내려진 조치였다. 진선은 또 습관처럼 시계를 보고 본 것과는 다르게 시간을 기억하지 못한 채로 침대에 앉아 잔뜩 흐린 하늘을 물끄러미 내다보았다.
10년째 살고 있는 아파트는 오래되기는 했지만 비교적 안정된 동네에 독립된 콘도미니엄 스타일로 지어져서 진선은 매우 만족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살던 집이 은행으로 넘어가고 가게 매상이 곤두박질치는 상황에서도 아직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었던 둘째가 학교를 옮기지 않아도 될 뿐 아니라 2층 안방에서 보이는 풍경이 살던 집에서 보이는 하늘과 흡사했기 때문이었다. 진선은 동남향으로 난 큰 창에 하루 종일 블라인드를 치지 않았다.
진선은 앞집의 빨간 지붕 끝과 진 초록으로 변해가는 키 큰 나뭇잎 사이로 난 회색빛 하늘에 새삼 눈길을 빼앗기면서 늦은 아침의 한가한 시간을 휴식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때 "띵" 하고 텍스트 메시지의 경쾌한 음이 좀 전의 경고음을 상기시키며 울렸다. 딸이 오늘 통행금지 때문에 저녁에 못 가고 점심때 집에 오겠다는 메시지였다. 무조건 'Okay~'를 쳐서 보내고 진선은 그제야 아이들이 오늘 집에 오기로 한 약속과 통행금지가 상관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진선의 몸은 아침에 가게에 필요한 모든 일과 집안일을 처리하고 도시락을 싸서 가게로 향하던 습관을 기억해냈다. 딸과 아들이 도착하기 전까지 먹을만한 점심이 준비될 터였다.
진선은 이제 성인이 돼서 제 앞가림을 하는 아이들이 고맙고 또 한편 미안하다. 지금도 살가운 대화를 하려고 하면 긴장되고 어색한 것은 자격지심 일까? 이혼하고 가게를 혼자 시작했을 때 진선과 아이들은 각자의 몫을 살아내느라 온 에너지를 다 써야 했기 때문이었는지 서로 간섭하지 않는 것이 묵계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진선은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말은 하지 않게 되었고 가끔 아이들 쪽에서 먼저 이야기하기 전에는 물어보지 않는 것이 반쪽 부모로서의 사랑이라고 스스로 위로하게 되었다. 진선은 가끔 그때 우리는 서로에게 배려해 주려한 건지, 아니면 서로의 고통을 덜어줄 여력이 없었는지 아이들에게 물어보고 싶지만 마음뿐이지 입을 열지 못하고 마음속 비밀의 서랍을 열었다 다시 닫곤 했다. 대신 불쑥 튀어나오는말만큼은 막지 않았다. "미안하다. 고맙다"
진선은 전날 통갈비를 사서 피를 빼려고 물에 담가 두고 사위가 좋아하는 매운 떡갈비 찜을 준비하려다 시간이 빠듯해서 대신 매운 닭불고기로 메뉴를 바꾸었다. 담근 짠지와 한국 마켓에서 사 온 몇 가지 반찬을 놓았을 때쯤 딸이 왔다. 사위 죠슈아는 올 때마다 꽃을 사람보다 먼저 들어오게 하고 진선이 꽃을 받으면 그제야 재색 눈동자에 설핏 어린 긴장을 풀곤 한다. 결혼할 때 "엄마 사위는 한국 사람이 아니라도 괜찮지? 내가 한국말 배우라고 했어" 라며 죠슈아와 결혼을 선언했을 때 이제껏 알아서 살아온 딸에게 진선은 할 말이 없었지만 정수리 언저리에 쏴한 바람이 불었었다. 딸이 대학교 때 사궜던 창현이와 법대를 졸업할 무렵 헤어졌을 때 진선은 마치 자신이 버림받은 것 같아서 한참 동안 우울했다. 그래도 딸에게는 " 우리 딸이 사랑하는 사람이랑 결혼해야 엄마도 행복하겠지?..."라고 하면서 자신에게도 그렇게 다짐을 시킬 수밖에 없었다. 진선이 사각 유리 타일로 만들어진 길쭉한 꽃병에 분홍 데이지와 안개꽃을 꽂고 있는 동안 예의 왁자지껄한 소리가 나면서 아들이 여자친구 알리사의 손을 잡고 들어온다. 알리사는 으깬 감자 요리를 만들었다며 파일렉스 그릇 뚜껑을 열어서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진선은 문득 가게 길 건너에 있던 'Soul Food'라는 식당 음식이 떠오른다. 흑인 중산층이 모여 사는 동네에 그들의 조상이었던 흑인 노예들이 먹었던 음식 이름을 따서 식당 간판을 걸고 그 시절의 음식을 주 메뉴로 삼았다. 남은 닭고기로 만든 튀김, 값싼 콩과 옥수수, 감자요리가 쏘울푸드 였다. 진선에게는 좀 짜고 냄새가 강했지만 한 번씩 비가 오면 당기곤 했던 음식이었다. '영혼으로 먹는 음식'을 입으로도 즐겼다. 알리사는 흑인이다. 공대를 다니던 아들과 스터디그룹에서 만나 공부보다는 세상 돌아가는 일에 더 관심이 많던 아들이 자격증 시험에 통과할 수 있도록 도와준 야무진 아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막상 여자친구라고 정식으로 데리고 왔을 때 진선은 매일 상대하던 흑인 손님처럼 대했던 것 같다. 딸은 알리사가 자기가 좋아하는 미셸 오바마를 닮았다면서 아들 편을 들어주었고 진선은 딸이 엄마를 위로하는 방식이라고 받아들이면서도 내심 창현이와 같을 수 있는 가능성에 걸었다. 그런데 오늘 진선은 긴장과 어색함을 이기려고 애쓰면서 거리두기를 무시하고 먼저 알리사를 안았다. 그 순간 인종차별 시위로 인한 통행금지 경고음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식사하는 동안 딸과 아들은 진선의 콩글리쉬를 해석해 주느라 바빴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공통의 화제가 되는 코로나사태와 인종차별시위로 옮겨 가고 있었다. 진선은 미국 사람, 특히 캘리포니안들은 식탁에서 어색한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마음을 이야기해야 하는 두려움 없이 사회 문제나 스포츠로 화제를 삼고 한참을 이야기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위와 아들 여자친구와도 대화하기 위해 안 되는 영어로 열심히 참여했다. 그러다 문득, 이제 임신 7개월째 접어든 딸의 배를 보면서 28년 전 아들을 임신한 상태에서 겪었던 4.29 흑인 폭동이 떠올랐다. 알리사 때문에 망설이면서도 한편 진선은 오늘만큼은 긴장을 풀고 싶어 져서 입 밖에 내지 않았던 아이들 아빠와 폭동 이야기를 꺼냈다. "흑인과 백인의 문제가 발단이 돼서 한인타운에 방화와 약탈이 계속되던 때는 엄마가 미국으로 온 이듬해였단다. 그때 우리는 한인타운에서 조금 떨어진 히스패닉 밀집 지역 쇼핑센터에서 전자제품 가게를 하고 있었지. 한인타운에서 흑인들은 건물에 불을 지르고 히스패닉들은 문을 깨고 물건을 약탈하는 장면이 연일 뉴스로 나오고 있었고 급기야 총을 들고 옥상에서 가게를 지키던 한국사람이 폭도의 총에 맞아 죽는 사건이 보도되기도 했단다. 아빠는 한인 입주자들과 함께 불침번을 서면서 가게를 지켜야 했어." 진선은 남편을 배웅할 때마다 뱃속의 아이가 뭉치는 것을 느꼈던 감각이 살아나서 잠시 말을 멈추었다. "폭도들이 모르는게 있는데 한국 남자들은 군대에서 사격 훈련을 받아서 총을 잘 다룬다는 사실이라고 아빠는 엄마를 안심시키더라. 총이 엄마를 더 불안하게 했는데도 말이야." 듣고 있던 딸의 눈이 젖더니 눈물이 소리 날 것처럼 접시로 떨어졌다.
아이들이 서둘러서 떠나고 진선은 누가 뭐랄 것도 없기에 설거지를 쌓아 둔 채로 커피를 들고 이층으로 올라갔다. 살짝 기울어진 햇빛이 나무 잎사귀에 그늘을 드리우고 세상은 노랗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땡" 메시지 음이 아련하게 울렸다. 아들이 고맙다고, 최고의 시간이었다고 하면서 "엄마, 이거 일거 주세요"라고 맞춤법 무시한 한국말에 파일 하나를 첨부한 텍스트 메시지를 보냈다. '우리에게도 흑인 생명은 소중해요' (Letters For Black Lives)라는 한인 2세가 부모님에게 쓴 편지였다. 진선은 아들이 자기에게 보내고 싶은 편지라는 걸 알았다. 긴 편지를 몇 번 읽고 박수를 보낸다고 아들에게 답했다. 진선은 딸에게 잘 도착했다는 메시지가 올 때까지 기다리다가 혹시 딸 집 근처에서 시위가 있을까 걱정이 되어 미주 한인 인터넷 뉴스를 열어보았다.'사뭇 달라진 시위 현장, 없어진 약탈, 늘어난 숫자, 통행금지엔 순응'이라는 기사와 함께 마스크를 끼고 알리사의 손을 잡고 시위대에 끼여 있는 아들이 사진 속에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