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파이오니아

by 김 스텔라

미국 동부의 상징이 '자유'라면 미서부 캘리포니아의 상징은 '개척'이라고 할 수 있다.

'아메리칸 드림'을 찾아서 신대륙으로 이주했던 초창기의 유럽인들에게 꿈이란 압제받지 않는 자유였다.

이들에게 아메리카 땅은 자유를 줄 뿐 아니라 일한 만큼의 결실을 주는 풍요의 땅이었다.

그 후로 이주민들에게 아메리카 드림은 번영의 기회를 포함하게 되었다.


자유를 찾아 신대륙에 정착한 동부 이주민들과는 달리

초기 캘리포니아 정착민들은 스페인 식민지 정책으로 이주하게 된 사람들이었다.

이 사실은 초기 캘리포니아 도시가 형성된 세 가지 형태를 보면 알 수 있다.

첫째는, 원주민 인디언들을 개종시키고 문명화시키기 위해 선교 목적으로 세워진 미션이고,

둘째는, 미션 선교를 보호하고 땅의 지배권을 확보하기 위해 설치된 군대 요새이고,

세 번째는, 정책적으로 사람들을 이주시켜서 만든 거주지역이다.

그래서 캘리포니안들에게 '아메리카 드림'은 스페인과 뒤 이은 멕시코의 점령 시기를 지나 서부개척시대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캘리포니안들에게 꿈은 더 나은 삶이었다.


1848년에 캘리포니아에서 금이 발견됨과 동시에 멕시코 전쟁에서 미국이 이겨서 (멕시코는 진짜 운이 없다)

1850년에 캘리포니아는 미국의 31번째 주가 되었다.

이때부터 서부 개척의 행렬이 시작되었다.

금을 찾아서, 풍요로운 땅을 개척해서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혹은 그때부터 시작된 대륙횡단 열차 노동자로,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서부로 이동했다. 이들을 가리켜서 '파이오니어'라 부른다.

이유는 달라도 개척자들의 공통점은 자신과 가족을 포함해서 삶에 대해 꿈을 꾸고 용기를 내었다는 것이다.

캘리포니아에는 현실을 이기는 꿈을 포기하지 않고 더 나은 삶을 향해서 나가는 개척의 정신이 있었다.


그 후 곳곳에 횡단철도가 개설되면서 동부의 자본이 몰려들어오기 시작했고 파이오니어의 의미는 희미해져 갔다. 이제 개척은 스스로 선택해서 삶을 걸고 꿈을 이루어 가는 것이라기보다는 자본의 흐름을 파악해서 기회를 잡는 뜻이 되어갔다.


캘리포니아를 여행하다 보면 어디에나 초기 개척자들의 흔적이 있다.

그들의 기록을 보는 건 여행의 큰 즐거움이다.

원주민 인디언과 스페인 정착민들의 역사도 흥미롭지만 왠지 슬프고 화가 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다.

그런데 파이오니아들의 삶은 나에게 힘을 준다.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번영의 기회는 내게 달려 있지 않지만 개척의 기회는 오늘도 열려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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