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을 생각하며 에필로그
사람이 아름답게 보이는 순간은 언제일까?
먼저 어떤 이미지가 떠오를 것이다.
파스텔컬러 보자기에 싸인 갓난아기의 하품,
비 오는 날 창밖을 응시하고 있는 소녀의 먼 시선,
무심코 돌아보다 마주친 연인의 눈가에 번지는 미소,
인생의 끝에서 세월에 씻겨진 노인의 맑은 웃음 속에서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초상을 본다.
하늘을 배경으로 절벽 꼭대기 정점에서 아래로 떨어지기 직전의 한 실루엣이 떠오른다.
올림픽 남자 다이빙 경기에서 본 한 장면이다.
여자의 몸은 곡선 그 자체로 아름다움이지만 남자의 몸이 아름답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순간 정지된 인간의 근육이 아름다움이라는 사실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 후로 아름다움이란 어쩌면 균형과 조화가 완전하게 이루어진 상태가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군더더기가 없이 조화로운 몸이 긴장된 근육으로 균형을 이루고 있는 상태와 같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면서 머리와 가슴이 조화를 이루는 내면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나이나 외모와는 상관없이 아름다운 사람일 것 같다.
Balance 와 Harmony 를 이루는 인격이 자연스럽게 품어져 나오는 상태가 아름다움이라면
아마도 그 사람은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일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행복할 때 아름답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은 나타나고 행복은 추구한다.
'인간의 목적은 행복의 추구'라고 학창시절 윤리 시간에 배웠던 기억이 난다.
그 후로 줄곧 행복이 목적이지 왜 거기에 추구가 붙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시험 문제에 나올 때도 행복 까지만 쓰고 싶을 정도로 어린 마음에도 추구라는 단어 속에 함축된 피곤한 삶에 대한 거부는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하기 원하는 마음과 애씀은 멈추지 않는다.
그래서 삶과 내면의 균형과 조화를 추구하는 노력도 끊이지 않는 것 같다.
구분해야 하는 것을 잘라내고
통합해야 하는 것을 혼합시키며 행복에서 멀어지고 싶지 않다.
갈등을 싫어하면서도 누구보다(?) 많이 갈등하는 입장에서 위의 밴 다이어그램을 만들면서 서로 상반되는 두 가지가 화해하며 행복을 향해 나가는 방향을 모색하고 싶었다.
A와 B의 '갈등' (칡과 등나무가 서로 엮어 있는 상태) 은 피할 수 없다.
그러나 갈등으로 인해 더 견고하게 성장한다.
각각의 고유한 특성이 혼합되지 않고 서로 분리되지 않으면서 건강하게 세워져 가는 아름다운 사람과 관계를 그려본다. 섞이지 않고 엮이면서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인격과 관계를 향해 삶의 방향을 맞추려 한다.
성의 평등이 성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로 진행되고 있는 이 시대의 페미니즘 정서 위에 나무를 심고 싶다.
남자와 여자가 친밀한 관계를 맺으면서 행복하고 보기에도 아름다웠으면 좋겠다.
진정한 페미니스트는 고유한 성 정체성을 가지고 조화롭고 균형있는 인격이 되어 갈 것이다.
아름다운 사람에게 행복을 추구하겠다고 약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