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을 생각하며
나는 유디트와 자주 마주쳤다.
책 표지 그림에서, 도서관에 걸려 있는 그림에서, 생각 없이 넘기던 화집 속에서 그녀를 만났다.
"또 너야?"
그때마다 다른 모습으로 칼을 들고 남자의 머리를 들거나 밟고 있는 유디트의 그림은
끔찍하면서도 눈과 마음을 끌어당겼다.
"너는 누구니?"
동일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많은 얼굴을 가진 여인,
슬프고 아름답고 당당하고 고혹적이고 뻔뻔스럽기도 하다.
최초의 페미니스트 화가라고 불리는 여류화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가 1620년경에 그린 유디트.
유디트는 성경의 제2경전, 혹은 외경이라 불리는 '유딧서'의 주인공이다.
이스라엘이 앗시리아의 공격을 받아서 예루살렘이 포위당했을 때 젊은 과부였던 유디트는 시녀와 함께 적진으로 들어가서 앗시리아의 제2인자이자 장수였던 홀로페르네스와 친분을 쌓은 다음에 그가 술에 취해 자고 있는 동안 목을 베어 죽이고 머리를 음식 포대에 싸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고 이로써 이스라엘이 앗시리아를 몰아낼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쓰여 있다.
르네상스 시대에서 현대까지 많은 화가들이 유디트를 그렸기 때문에 자주 마주친 게 당연하기도 하지만
유디트의 이야기를 알고부터는 볼 때마다 그녀의 선택에 자꾸 마음이 갔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외에 많은 남자 화가들이 유디트를 그린 걸 보면 그들도 나와 같이'어떻게 여자가 이렇게 담대한 선택을 하고 실행에 옮길 수 있었을까?'에 관심이 있었던 것 같다.
카라바조의 유디트.
그림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그런데 들여다볼수록 이 많은 유디트 중에서 누가 진짜 유디트 인지 궁금해진다.
첫인상이 가장 강하게 남는 법인지... 찡그리고 있는 카라바조의 앳된 유디트가 나의 유디트에 제일 가깝다.
아무리 정당한 이유가 있어도 사람을 죽여야 하는 상황은 고통스럽고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유디트는 어차피 죽거나 노예가 되어야 하는 절망적인 현실에서 '두려움을 이기는 용기'를 선택했다.
절망이 나를 죽이기 전에 내가 먼저 절망을 죽이겠다는 선택이 아니었을까?
여자는 신체적으로 약하다.
그러나 사람은 현실에 굴복하지 않기로 선택하고 용기를 내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