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방, Living Room

by 김 스텔라

타인과 구별되는 자아정체성이 형성 되는 시기에는 내 마음의 방이 생기고 그 곳에서 자기 자신으로 있고 싶어진다.


나 만의 방을 간절하게 원했던 때가 있었다.

독립적인 분위기 속에서 맏딸로 자랐지만 혼자 방을 쓸 수 있을 만큼 넉넉하지 않은 형편이었다.

그래서 아쉬운대로 장롱과 벽 사이에 책상을 놓고 나만의 공간으로 사용했다.

책상 위에 펼쳐진 참고서와 책 뒤에는 소설책이, 서랍 안쪽에는 일기장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 곳에서 내 마음의 방이 만들어졌다.


존 화이트 알렉산더 그림 'Quiet Corner'

청춘의 또 다른 이름이 있다면 '갈등' 일지 모르겠다.

나의 젊음은 억압돤 사회와 정서가 개안의 삶을 지배했던 80년대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 시절에 나 만의 방은 현실과 닮은꼴로 어두웠다.

출구를 모르는 어두운 숲과 같은 현실은 내 방에 들어와 문을 닫고 누워도 그대로 '숲 속의 방'이었다.


unnamed.jpg 소설 '숲속의 방'

결혼하고는 나 만의 방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 만의 방을 가지고 방문을 닫는 것은 가족 간의 단절을 뜻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자신들 만의 방을 가지고 방문을 닫았을 때 조차도 나의 방문을 열려 있었다.

가끔 모두가 잠든 늦은 밤, 부엌 옆 작은 식탁에 앉으면 문득 나 만의 작은 방이 그리워지곤 했다.


51SqM8z0cgL._SX313_BO1,204,203,200_.jpg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

아이들이 성장하고 이제 완전한 나 만의 방을 갖게 되었다.

버지니아 울프가 말하는 경제적, 정신적인 독립이 가능해졌는지 아닌지는 차지하고라도

언제든지 내가 안에서 열고 닫을 문고리가 있는 방이 드디어 생겼다.

처음 나 만의 공간을 가졌던 사춘기처럼 설레면서 나의 방을 채워가는 시간 만큼 내 마음의 방문이 닫혀 있는 시간도 길어져 갔다.

그리다 문득, 고립되어 간다는 느낌이 들던 어느날 부터 다시 조금씩 열어두기 시작했다.


IMG_1777.jpg 영화 '조용한 열정'의 에밀리 디킨슨

나 만의 방이 열려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그만큼 나 만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들이 엿보일까 염려스럽기도 하다.

세월은 마음의 방에 기억이라는 짐들을 들여 놓는다.

그 짐들이 내 마음을 어지럽히기 전에 버릴것은 버리고 보관할 것은 정리해서 제자리에 놓아 두고 소중한 것들을 지키고 더 이상 추한 것들이 들어올 수 없도록 문을 닫아야 할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밀리 디킨슨의 시와 같이 내 마음은 나의 방에 기쁨을 먼저 들여놓고 싶어하고 있다.

상처 받을 각오하고, 두려움을 넘어서 내 마음의 방문을 열고 기쁨을 초청한다.


기쁨을 청해서 머무르게 할 나 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면 아늑하고 좀 넓은 거실이었으면 좋겠다.

내 마음의 방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이 각자 평안히 쉴 수 있도록 서로의 공간을 존중해 준다면 관계가 굴레가 되지 않고 기쁨이 되지 않을까 ...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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