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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발까마귀 Oct 17. 2021

홍상수 감독론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인간 존재를 관찰하다


"When I start shooting, I don’t have a complete idea in terms of structure or narrative. I just start with some material that I want to start with and see what happens, in terms of how I respond to what comes out from that responding."


"Life or being always far surpass any kind of generalization, so the way I approach in terms of making film is try to push away all kinds of generalization, all kinds of genre, technique, all kinds of expectation about a certain effect, and just open and believe myself that these things come to me will be the right one."


-Hong Sangsoo- (2020 베를린영화제 인터뷰 내용 발췌)


내가 홍상수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인터뷰 첫 부분에서 나온 즉흥성이다. 영화의 제작과정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언제나 계획과 통제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다. 각본이라는 틀을 만들어 최대한 각본에 맞게 연기, 촬영을 컨트롤해서 관객들에게 감독이 원하는 메시지 또는 느낌을 전달해야 한다. 이 컨트롤을 얼마나 잘하느냐가 훌륭한 감독과 삼류 감독의 차이를 만들어 낸다. 하지만, 홍상수는 이 컨트롤을 최소화한다. 인터뷰에서도 나왔듯이 촬영에 들어갈 때 완전한 구조를 가지지 않고 단지 떠오른 아이디어만을 가지고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 관찰하고 그것에 대한 반응을 표현해낸다고 하는데 이것은 너무나도 독창적이고 인간적이고 솔직하며 대담한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홍상수의 위대한 점은 바로 대다수의 감독들이 시도하지 않는 방식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촬영 그날그날 받는 느낌, 일어나는 일을 반영하고 그에 따라 대본도 바뀌는 어떻게 보면 ‘수동적’이라고 볼 수도 있는 방식은 예술을 하는 사람으로서 너무나 위대하고 인간적인 방식이다. 느낌은 인간이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감지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열려있어야 하고, 예민해야 하고, 부드러워야 한다. 훌륭한 예술가는 언제나 이 상태에 있어야만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상태에 있는 사람만이 지금 이 한순간 일어나고 있는 수많은 일어남 속, 미묘함을 감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홍상수의 작품들을 보면 미묘하고 아름다운 차이들을 관찰할 수가 있는데 이것은 순전히 홍상수의 작업방식, 철학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인터뷰 마지막 부분에서 존재는 언제나 모든 일반화를 뛰어넘는다고 했다. 그는  장르, 테크닉, 효과 등을 거부한다고 하는데 그것이 바로 영화에서 발생하는 일반화를 거부한다는 점이다. 장르, 촬영기법 등이 결국 영화를 어떠한 틀 속으로 집어넣는데 물론 이것이 잘못된 게 아니라 극적인 효과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방식이다. 하지만, 홍상수의 영화는 인간 존재를 조명한다. 존재라는 것을 과연 일반화시키는 것이 합당할까? 우리는 우리를 너무나 잘 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홍상수 캐릭터들을 보며 다 똑같네, 지질하네 등 너무나 섣불리 판단한다. 우리의 마음은 언제나 미지(未知)를 두려워해서 항상 모든 것을 구별하려고 한다. 알아야 안전하니까. 하지만, 표면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우리는 혼란에 빠진다. 내가 너무나 잘 알고 있다고 믿는 저 사람은 오늘 완전히 다른 사람이고 너무나 다른 단면들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나는 모르는 것이 두려워 그에게 가지고 있던 판단을 보류하려고 하지 않는다. 알아야 하니까.


홍상수 대사에서 나오는 “몰라”는 우리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태도다. 그래서 홍상수는 그저 조명만 한다. 사실 그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유일한 행위이다. 모든 판단은 우리의 기억과 학습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이미 죽은 것이다. 요즘 시대에 지루하게 느껴지는 롱테이크도 그저 인간 존재를 관찰하기 위해서 사용된다. 컷이 여러 번 개입하는 순간 이미 우리의 판단이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홍상수는 캐릭터들의 수다와 행동도 관찰하려고 한다. 거기에서 무엇을 느끼는 것은 순전히 관객의 몫이다.


그러다 보면 어쩌다 이 조화(造化)의 아름다움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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