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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발까마귀 May 08. 2023

당신의 목걸이

제가 게스트하우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을 때 이야기입니다.


일본에서 온 손님 두 명이 잠시 머물게 되었습니다. 체크인을 하면서 간단히 얘기를 나누었는데요. 저는 당연히 일본어를 잘 몰랐기 때문에 영어로 설명을 했는데, 그분들은 영어를 잘 못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구글번역기를 쓰면서 얘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명동에 어떻게 갑니까?" 

"명동에 지하철 타고 가세요."

"걸어서 갈 수 있스므니까?"

"걸어서 갈 수 있는데 좀 멀어요."

"얼마나 걸리므니까?" 

"잘 모르겠는데 좀 걸릴 거예요" 


우리는 핸드폰을 들고 서로를 바라보면서 소통을 했습니다. 웃기기도 했고 그들이 귀여웠습니다.  


다음 날, 출근을 하고 사장님과 얘기를 하게 되었는데, 어제 체크인한 손님들 때문에 좀 힘들었다는 겁니다. 다름이 아니라 손님이 귀걸이인가 목걸이를 티비 쪽으로 빠뜨렸다는데, 자기가 방에 들어가서 티비를 해체까지 하면서 찾아보았지만 못 찾아서 고생했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 얘기를 들으면서 설마 그 일본 손님들인가? 했습니다.


시간이 좀 지나고, 좀 피곤해서 빨리 퇴근하고 싶다는 생각이 잔뜩 올라오는데 어제 그 일본 손님이 프런트로 들어왔습니다. 역시 구글번역기에 대고 일본어로 뭐라 뭐라 말을 했습니다. 잠시 후, 그녀가 핸드폰을 보여줬습니다. 


"목걸이가 없어졌어요. 도와주세요."


저는 도와주겠다고 하고 잠시만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솔직히 조금 귀찮았습니다. 사장님한테 얘기를 들었던 터라 설마 티비를  또 해체해야 하는 건가? 싶었고 일이 아니었으면 거절했을 것 같았습니다. 어찌 됐든 그들 방으로 들어갔고 목걸이가 어디 있냐고 물어보니 그들이 벽을 가리켰습니다. 수납벽과 벽사이 아주 절묘한 위치에 목걸이가 끼어있었습니다. 목걸이 줄은 보이는데 펜던트가 끼어 있었습니다. 저는 빗을 이용해서 툭툭 쳐서 떨어뜨리려고 했는데 정말 너무나 절묘하고 완벽하게 끼어있어서 전혀 움직이질 않았습니다. 우리는 온갖 방법을 동원해 목걸이를 빼내려고 했습니다. 제가 하나 둘 셋 하면 그 둘이 힘을 써서 수납벽을 댕기고 저는 그 틈을 빗으로 툭툭 치기도 했고 쌩힘으로 당기기도 했는데, 줄만 끊어지고 펜던트는 그대로 거기에 박혀있었습니다. 


그냥 죄송합니다 하고 돌아가려고 했는데, 그 목걸이가 손님에게는 되게 중요한 물건이라고 했고 또 그분의 난처한 표정을 보니, 이건 꺼내야만 끝나는 일일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10분이 넘게 지나가고 저는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아차! 하고 생각이 났습니다. 주방에 긴 칼이 있으니 그걸 써보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긴 칼을 가져와 투박하게 푹푹 빈 공간을 찌르기 시작했고 얼마 후, 드디어 툭! 하면서 펜던트가 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저는 그걸 집어서 그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들은 매우 행복해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저에게 너무너무 고맙다고 했고 또 일본에서 가져온 선물을 주었는데 저는 그때 짜증이 나있는 상태라서 기계적으로 거절을 했습니다. 그리고 재빠르게 인사를 하고 다시 프런트로 돌아왔습니다. 빨리 퇴근하고 싶어 졌습니다. 


퇴근시간이 될 때쯤, 그들이 프런트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너무 고맙다고 다시 한번 인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제 놀러 나간다고 했고 우리는 작별인사를 나눴습니다. 그들의 순수한 미소를 보고 사라진 빈 공간을 보니 순간 멜랑꼴리한 기분이 몰려왔습니다. 


첫 번째로, 이제 아마도 저는 그들을 이 삶에서 다시 만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두 번째로, 그들의 진심으로 감사하는 모습과 순수한 미소가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내가 뭐라고 그렇게 감사하는 것인지... 그리고 그때 저는 최선을 다하기보다는 귀찮음과 짜증이 나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의 모습을 보고 저 또한 마음이 따뜻해졌고 겸허함이 느껴졌습니다.


누군가 그렇게 순수하게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또 나의 노력이 그들을 기쁘게 만들어주었다는 생각을 하니까 기분이 좋았습니다. 평생을 이기적으로 산 사람으로서 이것 또한 새로운 삶의 가능성의 계시처럼 느껴졌습니다. 타인을 위하는 하나의 제스처가 그 사람뿐만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좋을 수가 있구나. 그리고 바쁘고 기계처럼 움직이는 일상 속에서 이런 감동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감사한 일이라는 것도 느꼈습니다. 


요즘도 목걸이를 보면 그 생각이 납니다.

어디에선가 잘 살고 있을 당신, 

오늘도 즐거운 하루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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