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이성을 옥상에 두고 내려온 그 처절한 기록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인도'라는 나라의 이미지를 떠올려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갠지스 강'과 가트를 떠올릴 것이다. 나 또한 인도하면 갠지스강이었고, 그 갠지스강이 흐르는 고대도시 '바라나시'에 꼭 가고 싶었다. 그리고 나에게는 흥미로운 미션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갠지스강 가트에서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읽는 것이었다. 도대체 이 아이디어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신성한 강가에서 인류 최고의 철학서를 펼치는 자신의 모습이 꽤 근사해 보였던 것 같다. 어쨌든 나는 실제로 이 무거운 책을 배낭에 넣고 인도 전역을 돌아다녔다. 델리에서도, 리시케쉬에서도, 자이푸르에서도 이 책은 배낭 멘 밑바닥에서 묵직하게 나의 허리를 압박했다. 그리고 마침내, 이 바보 같은 결정의 결실을 맺을 곳에 도착한 것이다.
하지만 내가 바라나시에서 제일 처음 맞닥 뜨린 것은 삶에 대한 신비로움도, 죽음에 대한 통찰도 아니었다. 길거리에 넘쳐나는 쓰레기와 소똥이었다. 릭샤에서 내리는 순간 발밑에서 무언가가 눌리는 감촉이 전해졌고, 나는 아래를 내려다보지 않기로 했다. 좁은 골목을 빠져나가는데 소 한 마리가 길을 막고 서서 나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 눈동자에는 수천 년간 이 도시를 지나간 모든 여행자에 대한 무관심이 담겨 있었다. 너도 왔구나, 그래서?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갠지스강 가트에 도착해서도 도저히 앉아서 책을 읽고 싶은 분위기는 아니었다. 계단에는 빨래를 널어놓은 천들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고, 물가에서는 아이들이 첨벙거리며 놀고 있었고, 강물은 내가 상상했던 그 신성한 빛깔과는 거리가 먼, 탁하고 느릿한 흐름이었다. 하지만 미션은 미션이었다. 나는 마음을 다잡고 순수이성비판을 펼쳤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구걸하는 사두 한 명이 내 앞에 와서 팔을 내밀었고, 옆에서는 관광객 무리가 셀카봉을 휘두르며 웃어댔다. 집중력을 잃었다. 짜증이 올라왔다. 그런데 문득, 펼쳐놓은 페이지에 눈이 멈추는 구절이 있었고 그것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시간이라는 것, 이것도 어떻게 보면 실체라기보다 우리의 개념에 가깝다. 스마트폰을 켜면 먼저 나오는 것이 시간이고, 벽에 걸린 시계를 보면 1초, 1초씩 시간은 지나가지만, 그것은 단지 표면적으로 우리가 정한 약속/프로그램에 의해 시계침이 이동하고 숫자가 바뀌는 것에 불과하다. ‘시간’이라는 것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2시라는 것이 실제로 우리가 경험할 수 있나? 없다. 단순히 우리가 만든 룰에 의해 2시라고 명명한 것뿐이다.
사물을 예를 들어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자주 먹는 사과, 하지만 ‘사과’라는 것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자주 보는 그 과일에 ‘사과’라는 이름표를 붙이고 그것을 개념화하여 우리 모두 그것을 사과라고 부르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것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것의 이름과 관련된 정보들일뿐, 우리는 그 실체에 다다를 수 없다. 아무리 그것을 보고 만져봐도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이 물체가 있고, 특정한 색을 띠고 어떠한 촉각적 느낌이 전달된다는 것일 뿐, 우리는 영원히 사과에 대한 실체에 도달할 수 없다. 그리고 사과를 만졌을 때의 느낌도 설령 사과에 대한 ‘개념’ 보다도 더 직접적인 경험일지라도 그 사과에 대한 ‘상’이 우리 내면에 맺히는 것일 뿐, 이것 또한 매우 주관적인 경험이기 때문에 우리는 영원히 사과의 실체에 다다를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이 생각을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에리카에게 들려주었다. 그녀는 이뻤고 나는 그녀의 환심을 사고 싶어 이런 지적인 얘기를 쏟아내고 있는 중이었다. 우리가 사물의 실체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 시간이라는 것도 우리의 구성물이라는 것, 저 화장터의 연기 너머에 있는 것을 우리는 영원히 알 수 없다는 것. 말하면서 나는 내 목소리가 점점 열을 띠는 것을 느꼈다. 에리카는 처음에 고개를 끄덕이며 듣는 것 같았다. 나는 더 신이 났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녀의 시선이 내 얼굴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테이블 위에 놓인 여행 가이드북의 모서리를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보면서도 멈추지 못했다. 마치 브레이크가 고장 난 것처럼 칸트에 대한 설명이 입에서 계속 흘러나왔다.
"내일 아침에 보트 타고 일출 보러 갈 건데, "
그녀가 내 말 중간에 말했다. 끊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내 말이 끝나기를 기다리지 않는 자연스러움이었다. "같이 갈래?"
나는 입을 다물었다. 방금까지 열변을 토하던 그 입이 갑자기 할 일을 잃었다. 순간 공기가 어색해졌고, 그 어색함은 온전히 나의 것이었다. 에리카는 내 표정을 보더니 웃기 시작했다. 크게 웃은 것이 아니라, 코로 바람을 내쉬며 눈이 가늘어지는 그런 웃음이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밥이나 먹으러 가자."
나는 그녀의 뒤를 따라 일어섰다.
밥을 먹고, 라씨를 마시고, 가트에서 아르티 의식까지 보았다. 수백 개의 불꽃이 강 위를 비추고 종소리와 찬트가 밤공기를 가득 채웠다. 에리카는 의식 내내 불꽃을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도 아무 말하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오후에 칸트에 대해 떠들 때보다 이 침묵이 더 나은 대화 같았다.
의식이 끝난 후 아직 잠이 오지 않아 나 홀로 게스트하우스 옥상으로 올라갔다.
옥상은 비어 있었다. — 적어도 그렇게 보였다.
난간에 기대 서니 바라나시의 밤이 한눈에 들어왔다. 별이 쏟아지는 하늘은 아니었다. 도시의 불빛이 하늘을 뿌옇게 물들이고 있었고, 간간이 개 짖는 소리가 골목에서 올라왔다. 강은 보이지 않았지만, 강이 거기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공기 속에 물 냄새가 섞여 있었고, 어디선가 불경 소리 같은 것이 아주 낮게, 거의 진동처럼 느껴졌다.
수천 년 전에도 이곳 사람들은 매일밤 똑같은 의식을 치르고 삶에 대해 성찰했을까? 그때 사람들과 우리는 얼마나 다른가? 아니면 얼마나 같은가? 내가 지금 들고 있는 스마트폰으로 얼마든지 다른 세계와 연결될 수 있고 검색한방에 내가 원하는 지식을 찾을 수 있는 세상에서 지식의 역할과 또 그것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생각해 봤다. 바람이 한 줄기 불어왔다. 따뜻했다. 나는 눈을 감았다. 이 순간만큼은 어떤 개념도, 어떤 언어도 필요 없는 것 같았다. 갠지스강의 실체에 다다를 수 없다 해도, 이 바람의 온기는 지금 분명히 나의 피부 위에 있었다. 칸트가 뭐라 하든 이건 진짜였다.
그때, 방귀가 마려왔다.
보통이었다면 참았을 것이다. 하지만 옥상에는 나밖에 없었고, 바라나시의 밤은 너그러워 보였고, 나는 방금 전 '어떤 언어도 필요 없는 순간'에 대해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가장 솔직한 자기표현이 아닌가 —라는 말도 안 되는 정당화를 0.3초 만에 마친 후, 나는 시원하게 방사하였다. 꽤나 큰소리에 살짝 당황했지만 옥상에는 나밖에 없기 때문에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는 찰나… 나의 식스센스는 이 ‘공간’에 누군가 한 명이 더 있다는 것을 느꼈다. 옥상 반대편 구석, 낮은 의자에 앉아 있던 사람. 어둠 속에서도 내가 아는 누군가의 모습이 보였다. 에리카였다. 이 짧은 순간에 세상은 노랗게 변하기 시작했고, 나의 세계가 붕괴되는 것을 느꼈다. 어둠 때문에 그녀가 나라는 것을 모를 수도 있다는 희망도 가졌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건 이 상황에서 살아남는 것이었다. 나의 유일한 선택은 재빠르게 이곳에서 벗어나는 것일 뿐…
나는 몸을 돌렸다. 그리고 번개처럼 계단을 내려갔다. 한 칸씩이 아니라 두세 칸씩 뛰어내리며. 등 뒤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는지, 들리지 않았는지 — 확인하지 않았다. 확인할 용기가 없었다. 방에 들어와 침대에 엎드렸을 때, 심장이 갈비뼈를 두드리고 있었다. 천장의 팬이 느리게 돌고 있었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은 배낭 속에 있었고, 나의 순수한 이성은 옥상 위에 놓고 왔다.
내일 아침, 에리카를 마주쳐야 한다. 보트를 타고 일출을 보러 가자고 했던, 그 약속.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있을까? 아마도 그녀는 웃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 아마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굴겠지만, 우리 둘 다 알 것이다.
바라나시의 마지막 밤이었다. 천장의 팬이 돌고, 어디선가 개가 짖고, 갠지스강은 여전히 아무 의미도 스스로 말하지 않은 채 흐르고 있었다.
아디오스, 바라나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