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걸 지켜보는 나
지금 기분이 매우 좋지 않다. 잠깐 좋지 않은 것이 아니라 이 기분이 지속되고 있다. 무엇때문에 기분이 좋지 않은지, 거친 생각들이 이어지고 있는지 나를 지켜본다.
갑작스러운 전화를 받았다. 토요일 아침에 출근해야 한다는 전화였다. 나는 순번을 잘못 보셨다,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전화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 일이 매우 찝찝하다. 마치 내 잘못인 것 같다. 급한 연락이었다. 그런데 내가 순번이 아니라는 실망스러운 말을 뱉어야 했다. 이성적으로는 내 잘못이 아닌데 내가 무언가 크게 잘못한 것 같다. 이 느낌이 매우 불쾌하다.
문제는 이 느낌을 떨쳐 버리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이런 내가 바보같다는 생각도 동시에 한다. 그런데 여전히 남아있다. 생각이 반복된다. 소용돌이 치고 되풀이 된다. 전화를 받고 죄책감을 느끼던 그 순간을 자꾸 되새김질 한다. 정신줄을 잡아보려 한다. 이건 내 잘못이 아니다. "에라이" 하고 털고 잊어버리고 싶다. 그러나 다시 그 순간들이 되풀이된다.
이 하향곡선에 내가 서 있을 때는 작은 일도 크게 증폭된다. 오늘 아침 무엇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새해 벽두부터 팀장님이 티타임을 갖자고 모두를 불러모으더니, 대뜸 "계산하지 말고 살자, 자존심을 지키면서 살자"라는 알 수 없는 암호같은 이야기를 했다. 마치 나에게 하는 것 같았다. 우연의 일치인지 팀장님과 내가 자꾸 휴가가 겹치고 있다. 그게 불쾌하셨던 걸까? 한편으로는 내가 확대해석하는 것도 느낀다. 그런데 이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내가 마치 파렴치한 사람이 된 것 같다.
내가 무엇인가 크게 잘못한 느낌. 미래에 이 일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와 나를 고통스럽게 할 것이라는 생각. 이미 잘못되었고 나는 글러먹었다는 비약.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다는 충동. 이것들이 소용돌이치고 반복되어서 에너지를 소모시키고 불안과 답답함을 만들어내고 있다. 거친 생각들을 하게 된다. 갑자기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이 플래시처럼 스쳐지나가고, 나는 또 그것을 바라보고 놀란다. 왜 사소해보이는 사건들이 이렇게 크게 비약하는지 알 수 없다. 지금 나에게 오류가 발생했다.
불쾌하고 불안한 상태에 있다가 조금 늦은 퇴근을 하고 요기를 한 다음 카페에 공부를 하러 왔다. 도무지 할 마음이 들지 않는다. 아무리 인스타그램과 트위터 피드를 올려봐도 내 도파민을 활성화 시킬 만한 것은 없다. 공허한 마음을 채울 수는 없다. 이리 저리 뉴스 기사를 읽어봐도 짜증만 날 뿐이다. 대신 내 마음을 조금 지켜보기로 한다.
내 상태를 글로 그대로 표현해 보니, 심호흡처럼 내 몸에서 이산화탄소가 조금은 빠져나가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여전히 답답하다. 거친 생각들은 그래도 조금 진정된 것 같다. 불안한 눈빛은 아직이다.
문득 상담을 종결할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이 든다. 이렇게 사소한 것들로 스트레스 받는데, 내가 앞으로 살아낼 수 있을지 스스로가 조금 의심이 된다. 그래도 한가지는 확실하다. 나를 스스로 지켜볼 수 있다는 것. 내가 오류가 난 순간을 캐치할 수 있다는 것. 지금 나는 오류 투성이다.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메시지만 뜨고, 어디가 잘못된 것인지는 아직 모르는 상태. 어디가 잘못되었고 어떻게 고치면 되는지 친절히 알려주는 것은 없다. 스스로 복기하고 디버깅할 수밖에.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들을 글로 적어내려가다 보면 아주 짧은 찰나에 평온함을 느낀다. 이 평온함 때문에 글을 자꾸 쓰게 된다. 이 찰나를 위해 몇백자의 글을 두드린다. 찰나를 늘리기 위해 더 많은 글을 두드려야 할거다.
스스로 디버깅 해보면 문제는 운동이다. 요즘 운동을 하지 않았다. 리부팅 하는 시간이 없었다. 작업관리자를 켜면 메모리에 쓰지도 않는 프로세스들이 쌓여있을 것이다. 그래도 잠은 충분히 잤다고 생각했는데 균형이 맞지 않기 시작했나보다. 그러나 오늘 운동하기는 싫다. 오늘은 아무것도 하기 싫은 상태다. 이렇게 글이라도 끄적여본다. 술이 땡기는 날이다. 강제로 모드를 바꾸고 싶다. 억지로 안전모드로 부팅하는 것처럼. 무엇인가 나를 강제로 작동시키고 안전모드처럼 세상을 단순하게 바라보고 싶다. 지금 나는 오류 투성이에 버벅대고 있는 컴퓨터같다.
나아지겠지? 나아질 거란 희망을 갖는 내가 비참하고 불쌍해 보이지만, 그런 것 따위 세상에 없다고 냉소하는 나이지만, 가만히 나를 쳐다본다. 이렇게라도 하면 좀 나아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