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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떼구르르꺄르르 Jun 25. 2022

향을 입기 & 냄새 빼기

훈습에 대한 자잘한 생각들


요즘은 나도 안다. 스토커의 가사처럼.

 "나도 알아 나의 문제가 무엇인지." 


종종 부정적인 하향 나선에 서있는 중이고 떨어지는 중임을 인식한다. 그럴 때는 잠과 운동, 글쓰기, 책 읽기, 영화보기로 스스로를 꺼내려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 말려들어간다. 말려 들어갈 때마다 끌고 올라갈 수 있는 건 나 자신.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허락하는 것도 나 자신.


며칠 전 썼던 프레임에 대한 두 가지 생각을 말씀드렸더니 이제 훈습 단계에 들어갔다고 하셨다. 훈습? 어디서 들어봤는데. 검색해보자.




출처 네이버 블로그 동안 정신건강의학과

자신의 갈등에 대한 통찰을 갖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증상의 호전이 일어나지 않고, 행동의 변화도 없을 수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자신의 갈등에 대한 지적인 이해를 했을 뿐, 마음으로 경험하여 깨닫는 훈습의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정신분석이 중간 단계에 들어가면, 전이가 일어나고 지적 통찰을 갖게 되지만, 그것 만으로 환자의 욕구 충동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고, 지금까지 익숙하게 써왔던 방어를 포기하지도 않습니다.

관성의 법칙이 여기에도 적용되어 불편하지만 전처럼 살려고 저항합니다. 이 저항을 이해하고 극복하는 과정이 훈습입니다. 훈습은 반복적인 해석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훈습에는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것입니다. 훈습을 마치고 전이 관계가 해소되어, 환자가 통찰의 적용에 익숙해지면 치료는 종결의 단계로 넘어가게 됩니다.

프로이트는 분석과정 중에, 어떤 형태의 저항은 매우 특이해서 이것을 인식하여 푸는데 시간이 걸리는
것을 호보는 ‘훈습(working through)’ 개념을 세웠습니다. 자유 연상이 계속되면 저항이 점점 커져 극에 달합니다.  이때가 바로 억압된 것들이 나올 순간입니다. 이때 저항과 이 밑에 숨어 있던 본능적 충동을 확실히 보고 알 수 있게 됩니다. 본능적 충동을 수정 극복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됩니다. 여기까지 진행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딱 블로그의 설명글이 한 줄 한 줄 이해가 간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내 저항은 대체 무엇이고 본능적 충동은 뭔가라는 물음표가 뜬다. 뭔지 알아야 고칠 텐데.


그래도 이 정도면 내가 느끼는 것처럼 상담이 많이 진전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단계에서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한다. 뭐든지 잘 해내고 싶은 나는 이것도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하고 싶다. 농담이지만 빈말은 아니다.


훈습이라는 용어의 설명이 인상 깊다. 불교용어인데 사찰의 향냄새가 떠오르는 단어다. 향기를 쐬어도 향은 금방 증발되어 원래로 다시 돌아오는 것을 생각해봤을 때 꽤 적절한 용어인 것 같다. 향기를 나에게 배게 하려면 얼마나 많이 쐬어야 할까.




시골집에 가면 시골집 특유의 냄새가 있다. 그 냄새는 할아버지 옷에도 배어 있고, 이부자리에도 배어있으며 시골의 물건 무엇이든지에 배어 있다.


캠핑을 한바탕 다녀오면 한동안 불냄새가 차에 진동한다. 정체성이 확고한 그 냄새. 차 창문을 열고 주행할 때마다 빠르게 들어온 공기가 차 트렁크를 지나 다시 앞자리로 올 때도 한동안 잊고 있었던 치유와 여유의 순간들을 떠올리게 한다.


나는 향에 민감한 편인 것 같다. 향수를 뿌린 사람을 금세 눈치채고 귀신같이 음식 냄새를 맡는다. 그 대상이 음식이라는 게 참 안타깝지만... 맛있는 건 냄새도 좋다.


향이 배는 것도 그렇지만 향이 빠지는 게 더 어려운 것 같다. 숙박업소 중에는 실내에서 고기를 굽지 못하게 한다. 고등어 같은 걸 한번 해 먹으면 그 냄새가 오래가서 집에서 해 먹기는 좀 번거롭다. 냄새 입자들이 찰싹 달라붙어서 빠져나가지를 않으므로.


거꾸로 생각해본다. 향을 배이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내 냄새를 빼는 것으로. 그러면 환기를 자주 해야 한다. 답답하고 눅눅한 곳에 있을 것이 아니라 창문을 열고 바람을 쐬며 냄새 입자들을 날려 보내야지.


얼마나 작은 입자들이 얼마나 많이 나에게 배어 있을까. 그 입자들은 너무 작아서 무엇인지, 어디에 있는지 알기가 어렵다. 정체가 무엇인지, 어디에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마구마구 환기하고 있다. 눅눅하고 우울한 냄새보다는 아무 냄새가 나지 않는 상태가 더 좋다. 냄새를 없애보겠다고 이상한 페브리즈를 마구 뿌려서 냄새가 더 엉키는 건 더 싫다. 냄새가 올라오면 바람을 쐬어서 없애려고 한다. 그런데 정작 이 냄새를 어디서 자꾸 배여 오는지를 아직 모른다. 그것을 없애면 쾌적할 텐데.



잡다한 생각들이 많이 드는 것으로 보아 오늘의 상담도 의미가 있었다. 내가 이렇게 돈과 시간을 투자할 수 있는 것도 4개월 남았다. 버즈 라이트이어가 찾아낸 크리스털 연료 같은 것이 필요하다. 어쩌면 그 정체는 향 입기와 냄새 빼기의 반복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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