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와 셀프 인테리어는 처음이지?

지옥의 셀프 인테리어

by 염동훈


부동산 계약도 됐으니 인테리어를 시작해야 한다. 문제는 전혀 해본 적이 없다는 것. 신혼집 꾸밀 때 곁눈질로 본 것 말고는 경험이 없다. 물론 사업자금이 넉넉하다면야 인테리어 전문 업체를 부르면 끝나는 일이다. 철거, 목공, 전기까지 한 번에 끝내준다. 항상 문제는 돈이다. 돈만 있다면 뭘 못하겠는가. 하지만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하는 것이 대한민국 사람 아닌가. 업체를 쓸 수 없다면 내가 스스로 해보겠다. 그런데 뭐부터 해야지.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친한 친구에 예전에 인테리어 일을 했었다는 것이다. 일을 그만둔 지는 조금 됐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나보다는 나을 것이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짜고짜 두서없이 직구로 물어본다. "야 인테리어 이거 어떻게 해? 뭐부터 해야 하는 거야?" 친구는 초등학생 같은 질문을 착한 아빠처럼 대답해 준다. "일단 철거부터 해. 바닥이랑 벽에 붙어있는 것부터 깨끗하게 만들어" 친절한 답변을 들었으니 바로 행동 개시.


내가 사용할 공간은 탁구 레슨실이었다고 한다. 바닥엔 데코 타일이 붙어 있었고 벽엔 대충 붙인 벽지가 있었다. 바닥에 있는 데코타일을 만져봤을 때는 아주 튼튼하게 잘 붙어있었다. 살짝 들쳐봐도 본드를 딸기잼 바를 때처럼 듬뿍 발라서 붙인 것 같았다. 제거하기 쉽지 않겠다는 직감이 들었다. 어려운 것은 일단 나중에 하고 쉬운 것부터 하자. 벽지부터 없애버리리라. 동네에 있는 철물점을 갔다. 커터칼과 헤라를 달라고 하고 검은 비닐봉지에 담았다. 가게 도착해서 칼을 꺼내 준비를 하고 본격적으로 전투를 시작한다.


초반 벽지 제거는 쉬어 보였다. 커터칼로 벽지에 칼집을 만들고 그 사이로 칼날을 깊게 넣어서 종이를 자른다. 종이가 잘린 홈을 잡고 살살 뜯으면 잘 벗겨진다. 이렇게 두 시간쯤 했을까. 바닥엔 뜯어진 벽지가 함박눈처럼 수북하게 쌓였다. 작업이 꽤 진행됐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잘 벗겨진 곳은 벽과 벽지 사이가 떴기 때문이었다. 벽지가 붙인 지 오래되거나 습기가 차면 접착력을 잃고 떨어진다. 이런 것들은 제거하기가 쉽다. 문제는 종이를 뜯을 때 속에 있는 얇은 종이가 벽에 그대로 붙어있을 때이다. 이 놈들은 정말 안 떨어진다. 마치 벽과 한 몸이 된 것 같다. 어렸을 때 껌 포장지 안에 있는 은박지를 뗄 때와 비슷하다. A4용지보다 얇고 한지 같은 종이는 물을 부어도 솔로 문대도 완전 제거는 어렵다. 이런 놈은 그냥 포기하는 것이 정신 건강에 이롭다.


내가 계약한 상가는 오래된 건물이다.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1950년쯤 준공됐다. 사람으로 치면 환갑이 넘었다. 그 기간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내가 있는 공간을 사용했을까. 이 질문을 하게 된 이유가 있다. 붙어있는 벽지 장수 때문이다. 처음 여기를 사용한 사람이 한번 붙였을 테고 두 번째 세 번째 사람도 벽지 뜯기 귀찮으니 위에다가 다시 벽지를 붙였을 것이다. 네 번째 다섯 번째 사람이 깔끔한 사람이었다면 뜯고 붙였을 것이고 아니었다면 그냥 붙었을 것이다. 긴 시간이 지난 만큼 많은 사람들이 벽지를 쌓아간 것이다. 기둥에 붙어있는 벽지는 6장이었다. 색깔도 다 다르다. 한 장은 꽃무늬, 또 한 장은 반짝이는 실크 벽지, 다른 한 장은 초록색 벽지. 철거 작업을 하면서 이곳을 스친 사람들의 과거를 볼 수 있긴 개뿔. 죽는 줄 알았다.


며칠 동안 종이만 뜯다 보니 손끝이 갈라졌다. 손톱은 짧은 벽지를 잡으려다 보니 벽과 마찰이 생겨 긁혀나갔다. 인고의 시간이 흐르고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다 뜯지 않기로.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어차피 우리는 페인트 칠을 할 예정이었다. 그렇다면 백 프로 없애기보다 페인트 칠을 했을 때 티가 안나는 정도면 된다는 것이다. 두꺼운 벽지만 제거하고 얇은 종이는 내버려 두기로 결정했다. 더 하다가는 엄지손톱이 남아나질 않을 것이다.


이번엔 바닥이다. 데코타일을 한 장 떼어내니, 식빵에 바른 땅콩버터처럼 본드가 듬뿍 발라져 있다. 뗐다고 하더라도 도끼다시 대리석 바닥에 본드 자국이 그대로 남아있다. 데코 타일을 제거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문제는 남은 접착제를 없애는 것이다. 핸드폰을 꺼내 '본드 자국 없애는 법'을 검색해 본다. 여러 가지가 나온다. 그중에 가장 강력해 보이는 방법을 발견한다. 신나. 한번 들으면 잊히지 않는 글자다. 하지만 정신 명칭은 신너라고 한다. 아주 독한 냄새가 나서 사용할 때 주의해야 하는데. 그땐 그걸 몰랐다. 문을 활짝 열어놓고 마스크 하나 쓰고 바닥에 시너를 조금 뿌린 뒤 칼로 긁어냈다. 바닥은 따로 시공할 생각이 없었다. 건물이 가지고 있던 도끼다시 바닥을 쓰기로 했었다. 그렇기 때문에 벽지와는 다르게 바닥은 깨끗하게 만들어야 했다.


시너를 얼마나 썼을까.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5리터 이상은 썼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바닥 철거 업체를 부르고 대리석도 반짝반짝하게 연마도 했으면 참 좋았을 것을. 돈 좀 아끼려고 독한 냄새 맡으면서 손 피부 다 버려가면서 했다. 사람은 아낄 때 아끼고 쓸 때 써야 한다. 처음엔 조금씩 쓰던 신나는 마지막이 돼서는 위험한지도 모르고 마구 뿌려댔다. 붓다 보니 대리석 바닥에 움푹 들어가는 곳에 시너가 모여 작은 웅덩이를 만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위험한 장면이다. 안전 불감증인지도 모르고 깨끗해져 가는 바닥을 보면서 흐뭇해했다.


자잘한 철거까지 하고 나면 내가 사용할 공간의 민낯을 볼 수 있다. 꾸미지 않은 본연의 모습이다. 여기서 출발해야 어디를 살릴 것인지, 어떻게 꾸밀 것인지 정하는 것이 쉽다. 일단은 0에서 출발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철거는 그 0을 만드는 작업이다. 백지상태에 내 미적감각을 총동원해서 여기를 꾸며야 한다. 출발은 철거부터이지만 사실은 이제 시작이다. 과연 아무것도 없는 이 공간을 어떻게 꾸밀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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