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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를 왜 하십니까?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뭘까?

by 염동훈

독서를 왜 해야 할까. 이제는 수많은 정보는 영상이나 사진으로 전환되었다. 심지어 영상이 더 쉽고 편하게 전달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요리다. 글로 담을 수 없는 정보를 쉽게 알려준다. 어느 정도 색이 날 때까지 볶아야 하는지, 어떻게 양파를 썰어야 하는지, 접시에 어떤 모양으로 담아야 하는지. 글보다 더 쉽게 이해시킨다.


정보성 내용은 그렇다 치자. 그럼 스토리가 있는 것들은 어떨까? 영화, 드라마 VS 소설, 에세이, 극본. 이동진 평론가의 말처럼, 영화는 불이고 책은 물이어서, 영화는 절대 책을 넘어설 수 없을까. 본질적으로 봤을 때 그래 보인다. 우리가 즐겨보는 넷플릭스 영화 결국 글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작가가 스토리를 생각하고 글로 써야지 시작이 되기 때문이다. 대본 없이 시작한 영화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현실은 아닐지 모른다. 판매량과 매출로만 보면 다르다. 박정민 배우가 나온 한 영상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책 판매량이 전국 기준 하루에 300권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어서 말했다. 하루 300명이 보는 영화였다면 박살 난 것이라고. 앞 뒤가 안 맞는 말 같기도 하다. 글로 출발한 영화이지만 책을 압살 하는 모습은 마치 영화 프로메테우스에서 나온 인공지능 로봇이 인간을 가볍게 이겨버리는 상황처럼 보이기도 한다. 코로나 19가 이 상황을 부채질한 것 같기도 하다. 전 세계 어디에서나 한 달 요금을 내면 스마트폰, 태블릿, 텔레비전에서 원하는 영화, 드라마를 볼 수 있으니 말이다. 파급력만 보면 영화는 이미 책을 앞서갔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난 책을 읽고 있다(물론 독서를 한지는 얼마 안 됐다). 1년 전쯤에 독서하는 유튜브 영상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촬영을 하다 보니 책을 왜 읽는지 알게 됐고 원하는지는 않았지만 책 읽는 습관이 생겨버렸다. 2년 전만 해도 1년에 한 권은커녕 단 한 줄도 읽지 않았던 내가 지금은 한 달에 1권-2권 정도는 읽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책을 즐겨 읽은 사람은 왜 독서를 하는지 잘 모른다. 관성으로 흘러간다. 어렸을 때부터 가지고 있던 습관이었으니 커서도 그런 것이다. 하지만 어른이 돼서 아니면 나처럼 30대가 훌쩍 넘어서 책과 친해지기는 매우 어렵다. 관성도 없고 습관도 없고 더 재밌는 넷플릭스가 있으니까.


1년 정도 독서를 해보니 왜 책을 읽는지 알게 됐다. 그 이유는 아주 단순하지만 강력한 것이다. 바로 '재미'다. 무슨 소리야 넷플릭스가 훨씬 재밌지. 이 글을 여기까지 읽은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물론 넷플릭스도 재밌다. 나도 넷플릭스를 애용한다. 내가 말한 재미는 문턱이 있는 즐거움이다. 영상을 볼 때 바로 즐거움을 느낀다. 유튜브 쇼츠, 인스타그램 릴스는 보는 즉시 즐거움을 준다. 머릿속에서 도파민이 뿜어져 나온다. 당연하다. 그러려고 만든 플랫폼이니까. 하지만 책의 즐거움을 느끼기 위해서는 문턱을 조금 넘어야 한다. 헬스와도 비슷하다. 처음 헬스를 하면 이걸 왜 하는 거지 라는 생각이 든다. 똑같은 행동을 10번씩 반복하고 심지어 4세트를 한다. 비슷하게 생긴 운동 기구를 하고 원래 고문 기계였던 트레드 밀에 올라가 지루한 달리기를 한다. 하지만 몇 개월만 지나면 상황이 달라진다. 달라진 내 어깨 근육, 등 근육을 보면서 변화를 느끼고 하루만 운동을 건너뛰면 내가 지금까지 열심히 만들었던 근육이 녹아 없어지는 것 같다고 느낀다. 이 불안감으로 헬스를 더 열심히 하고 하루 힘든 식단을 유지한다.


독서도 비슷한 면이 있다. 첫 번째 책 한 권이 고비다. 만약 그 책이 어려운 책이라면 더 빨리 포기할 수밖에 없다. 책을 읽기로 결심을 한 뒤 고전을 고르거나 총 균쇠, 사피엔스를 고른다면, 역시 난 책과 맞지 않아라고 말하고 접을지도 모른다. 책을 읽는 즐거움을 느끼기 위해서 가벼운 책을 읽거나 재밌는 소설을 고른다면 책이 갖고 있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재밌는 책 2~3권만 읽어도 책이 생각보다 재밌네 라는 생각이 들고 자기도 모르게 더 재밌는 책을 찾게 될 것이다. 내가 그랬다.


그래. 소설은 재밌는 것 알겠는데 사피엔스, 이기적 유전자, 총 균쇠는 솔직히 재미없지 없잖아. 맞다. 지루할 수 있다. 나도 이기적 유전자만 다 읽었고 사피엔스는 절반 읽고 총 균쇠는 보지도 않았다. 이런 책은 확실히 어렵다. 이기적 유전자를 읽고 느낀 점이 있다면 여기에도 숨겨진 즐거움이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의 즐거움은 소설을 읽을 때 즐거움과는 많이 다르다. 소설의 즐거움은 영화의 즐거움과 꽤나 비슷한 구석이 많다. 주인공에 감정 이입이 되고 읽는 사람도 등장인물처럼 사건을 겪으며 변화를 한다. 책 속 인물은 사건을 통해 변하고, 독자는 책을 다 읽고 보기 전과 조금은 다른 사람이 된다. 독자도 인물과 같이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탄 것과 같다.


하지만 비문학의 즐거움은 다르다. 물론 책을 본 후 달라지기는 하지만 감정적 변화는 아니다.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 변화다. 비문학의 즐거움은 '어떤 것을 알게 된 즐거움'이다. 소설이 영화라면 비문학은 다큐멘터리다. 어렸을 때 일요일마다 아버지와 함께 목욕탕을 갔다. 기억상 목욕을 마치고 나오면 어르신들은 동물의 왕국을 보곤 했다. 어린 나는 '저걸 뭐 하러 보지 진짜 재미없는데'라고 생각했다. 볼 때마다 사자는 사슴을 잡아먹고 먹다 남은 사슴을 먹으려고 하이에나가 나왔다. 어르신들은 그 장면을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넋을 놓고 쳐다봤다. 나도 나이를 먹고 나니 그런 장면이 재밌어졌다(나도 그럴 줄 몰랐다). 사자가 어떻게 사냥을 하는지, 사슴은 왜 잡히는지, 하이에나는 왜 저런 사냥 방식을 선택했는지.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된 즐거움이다. 비문학의 즐거움은 이 감정과 비슷하다. '왜'라는 물음에 답을 해주는 기쁨이다.


7살 된 아들은 항상 물어본다. "아빠, 태양보다 큰 행성이 많은데 왜 태양이 제일 밝아?" "블랙홀은 왜 생겨?" "1 광년이 뭐야?" 문과 아빠를 난처하게 하는 질문들이다. 우리 아들만 그런 걸까? 아니다. 우리 모두 그랬을 것이다. 호기심이 넘쳤던 아이였을 것이다. 충만했던 호기심은 왜 사라진 걸까. 아마도 대한민국 교육이 입시가 호기심을 없애버리고 암기로 바꾼 것이라 생각한다. 왜를 없애고 외워로 대치했다. 이유나 원리를 아는 것보다 얼마나 빠르게 남들보다 정답을 고른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교육을 받고 나니 우리는 더 이상 궁금해하지 않게 됐다. 알 이유도 알아야 할 의무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숨겨진 호기심과 알고 싶은 욕망은 있을 것이다. 어렸을 때 궁금했던 것이나 인터스텔라 같은 영화를 보고 우주에 대해 관심이 생길지도 모른다. 궁금증이 생겨났을 때 풀어주는 것이 비문학의 책이고, 알게 됐을 때 느껴지는 것이 비문학의 즐거움이다(남들은 아닐지도 모른다). 이런 작은 사실을 깨닫고 나면 세상을 보는 시각이 달라진다. 아는 만큼 재밌다랄까. 요리도 하다 보면 더 재밌고 공부하다 보면 파인 다이닝도 가게 되고 흑백요리사도 더 즐겁게 볼 수 있다. 아는 것이 많아지다 보면 더 많은 것이 보이고 더 궁금하기 때문이다. 뇌과학 책을 보면 사람을 더 알게 되고 진화심리학을 보면 우리가 왜 자꾸 바보 같은 행동을 하는지 알게 된다. 물론 이런 정보가 인생의 정답을 알려주는 것은 아니지만 자기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게 되고 객관적인 시야로 우리를 돌아볼 수 있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비문학의 즐거움이다.


두 가지의 즐거움 알게 됐다면, 텔레비전에 볼 것이 없을 때 유튜브 쇼츠 보는 것이 지겨울 때 책을 찾는다(쇼츠를 완전히 끊는 것은 어렵다. 이 이유 또한 뇌과학, 진화심리학 책이 잘 설명해 준다). 마음먹고 책을 펴는 것이 아니라 출퇴근길 버스 안에서 잠깐 카페에서 친구를 기다릴 때 책을 찾는 자기 자신을 보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말한 것이 1년 동안에 내 변화이기도 하다. 나는 다독가도 아니고 고전을 읽는 사람은 더더욱 아니다. 아직 책을 보는 눈도 없다. 그런 나도 조금이라도 책을 보니 만약 당신도 책을 읽어보고 싶다면 한번 도전해 보길 바란다. 요즘 재밌다고 소문난 젊은 한국 작가 소설로 시작해 보자. 추천은 예소연 작가님의 소란한 속삭임이다. 무엇보다 짧고 재밌고 잘 읽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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