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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를 말할 때 하고 싶은 이야기

하루키는 아니지만

by 염동훈

러닝을 처음 시작한 것은 14년 전쯤이다. 취미로 생각해서 나름 열심히 달린 것은 대략 2020년쯤이다. 그때는 지금처럼 러닝 크루나 러너는 드물었다. 한강이나 청계천을 달리면 빨간색 조끼만 입고 뛰는 어르신 동호인 분들이 다였다. 아직 달리기가 흥행하기 전이었다. '라테는 말이야'처럼 들리겠지만 그땐 그랬다.


그렇다고 서브 3을 달성할 정도로 고수는 아니었다(서브 3은 풀마라톤을 3시간 이내 완주를 뜻함). 심지어 풀마라톤 경험도 없다. 열심히 달리다가 그만둔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아해도 아픈 것을 참고 하기는 힘들다. 장애물은 두통이었다. 지금까지 달리면서 아니 어떤 운동을 하든 큰 부상이 없었다. 3대 운동을 미친 듯이 했을 때도 헬스, 주짓수 할 때도 그랬다. 부상이 아니라 두통이 내 발목을 잡았다. 4~5년쯤, 아침 6시쯤 일어나서 물 한 컵 마시고 바로 달리러 갔다. 매일 10km 이상을 달렸다. 페이스는 대략 4분 15초~30초(1km를 달리는 평균 시간). 운동을 끝내고 들어올 때까지는 괜찮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두통이 시작된다. 마치 숙취 두통과 비슷하다. 나는 과음을 하고 나면 이마 쪽이 아프다. 이 징글징글한 머리 통증이 꼭 달리고 나면 짧게는 3시간 길면 6시간 유지됐다.


처음에는 체내에 물이 부족해서 그런 줄 알았다. 몸속에 수분이 부족하면 그럴 수도 있다는 글을 봤다. 그래서 운동 전후 물을 충분히 마셨지만 효과는 없었다. 아침 운동이라서 그런가 싶어서 저녁운동으로 바꿔도 똑같았다. 오버페이스라는 심증은 있지만 물증은 없었다. 결국 일상생활이 힘들어지면서 달리기를 쉬게 됐다.


달리기를 쉬는 동안에도 가끔씩은 뛰었다. 한 달에 한 번이나 두 달에 한두 번 정도. 휴식 기간이 긴 만큼 예전처럼 다시 뛸 수는 없었다. 천천히 달리기 시작했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존 2. 존 2 트레이닝은 심박수가 높지 않은 상태에서 훈련하는 것을 의미한다. 느긋하게 조깅하는 법을 배웠고 존 2 러닝을 처음 접하게 됐다. 다시 두통을 겪지 않기 위해 조깅을 하기 시작했다.


존 2 트레이닝의 장점은 부상이 적고 몸에 쌓이는 피로도 적다. 달리는 동안 사용하는 열량의 지방 비율이 높아서 다이어트를 할 때 도움이 된다. 비만인, 부상을 겪었던 사람에게 추천하는 운동이다. 존 2가 뜨기 시작하고 나도 매료되었다. 유튜브에서 많은 사람이 찬양했다. 천천히 달려야 빨라진다. 코로 숨 마실 수 있을 정도로 천천히 달려야 한다. 소위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운동법이었다. 나도 몇 년간 존 2 러닝을 했다. 심박수를 130~140을 유지하면서 45분 정도 달렸다. 주 3회 정도를. 이렇게 달리고 나서 깨달았다. 이것도 틀렸다는 것을.


전 세계 최고의 러너들도 존 2 훈련을 한다는 영상이 많다. 엘리우드 킵초케를 비롯해 많은 케냐 달리기 선수들이 훈련의 80%를 존 2 트레이닝을 한다. 나머지 20%는 중고강도 훈련과 인터벌 트레이닝 같은 고강도 훈련이 포함돼 있다. 그래서 일반인 우리도 80:20의 양극화 훈련(쉬운 강도와 어려운 강도로만 훈련하는 것을 의미)을 해야 한다고 많은 전문가들이 말한다. 나도 어느 정도 동의한다. 하지만 여기서 틀린 전제가 하나 있다. 그들은 하루에 2번 훈련한다. 우리와 훈련양이 정말 다르다. 그들은 주 200km~220km을 달린다. 중간값으로 210km을 잡아도 매일 30km 미터씩 달리는 꼴이다. 오전에 하프 마라톤을 달리고 오후에 8~9km을 더 달린다. 우리 같은 일반인은 상상할 수 없는 훈련이다. 이렇게 달리면 선수들에게는 위험한 손님이 찾아온다. 바로 부상이다. 선수에게 부상은 가장 무서운 유령 같은 것이다. 한 번 다치면 1년 이상을 쉴 수도 있고 선수 생명이 끝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선수들은 천천히 달리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 다치지 않고 훈련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프로에게 필요한 덕목이다.


우리는 어떤가. 직장인이라면 저녁에 5km 정도나 중급자라면 10km 내외를 달릴 것이다. 하이 아마추어 선수가 아니라면 주 50km 정도 달릴 것이다. 우리가 한 달 뛰는 거리가 선수들의 한 주 훈련양이다. 선수의 프로그램이 우리에게 꼭 들어맞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목표는 마라톤 우승이 아니라 마라톤 완주일 것이다. 완주를 해봤다면 서브 4, 서브 330이 현실적인 목표다. 만약 서브 3가 목표라면 이미 자기만의 훈련법이 머리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입문자, 초급자는 러닝에 대한 정보가 없기 때문에 유튜브 영상이나 인스타그램 릴스를 보고 혼란을 느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어떻게 달려야 할까? 존 2도 해보고 미친 듯이 달려서 두통에 시달린 사람으로서 어떻게 훈련해야 될까? 훈련의 전제는 힘들어야 한다. 우리는 선수처럼 긴 시간 동안 훈련할 수가 없다(일도 해야 하니까). 그러니 하루에 한 시간을 알차게 훈련해야 한다. 존 2도 하고 지속주도 하고 인터벌도 하고 골고루 해야 체력이 좋아지고 속도도 낼 수 있다. 존 2만 해서는 곤란하다. 사실 존 2는 회복 달리기 개념에 더 가깝다. 먼 거리를 달렸거나 인터벌 트레이닝을 하고 난 다음에 몸에 쌓인 피로 물질을 순환시키기 위해 달리는 것이 회복 러닝이다. 워밍업이란 단어를 들어봤을 것이다. 운동하기 전에 몸을 데워서 열을 만들고 본 훈련을 하기 전에 다치지 않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그 반대 개념이 쿨다운이다. 훈련 후 생긴 피로 물질을 없애는 것을 도와주고 천천히 몸을 식혀 회복을 도와준다. 이것이 사실 존 2이고 넓게 보자면 LSD이다(LSD는 먼 거리를 천천히 달리는 훈련을 말합니다. 마약은 절대 아니고요). 회복 러닝으로 기록이 빨리 지거나 더 건강해지는 것은 말이 이상하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결국 우리는 적은 훈련에서 여러 능력을 발달시켜야 한다. 인터벌 훈련은 짧은 시간 동안 높은 심박수를 만들고 불완전 휴식을 하고 다시 훈련에 들어간다. 이런 훈련은 Vo2 max(최대산소섭취량)을 향상할 수 있다. 또 다른 장점은 훈련 마친 후에도 추가적으로 열량을 소비한다. epoc이라고 하는데 쉽게 말하면 애프터 번이다. 중고강도 훈련에서 얻을 수 있는 이점이다. 인터벌의 단점은 힘들다는 것이다. 자신과 타협을 하기 쉬운 훈련이다. 최대심박수의 90~95%(거의 전력)에서 훈련해야 하는데 이렇게까지 자신을 밀어붙이는 것은 어렵다. 그래도 주 1~2회는 해주면 좋은 훈련이다. 부상은 조심해야 한다. 워밍업과 쿨다운은 필수.


그다음은 지속주, 템포런이다. 인터벌도 그렇지만 지속주도 훈련법이 많다. 천천히 시작했다가 빨리고 다시 천천히 달리는 지속주도 있고 일정 페이스로 달리는 것도 있다. 무엇을 하든지 자신의 자유다. 어떤 스타일이건 지속주를 하기만 하면 된다. 최대심박수 70~89%(정확한 것은 아니다)를 유지하면서 달린다. 시간은 20~40분. 달리다 보면 젖산역치구간이 늘어나면서 더 오래 달릴 수 있다. 강도는 숨 차오르지만 그래도 힘내서 달릴 수 있는 정도다(심박을 측정을 못한다면 이 방법밖에 없다). 40분까지 달릴 수 있다면 시간과 거리를 늘리면 된다. 주 2~3회가 적당하다.


나는 다시 달리기를 시작했다. 주 3회 지속주, 2회 인터벌, 1회 존 2 훈련을 한다. 인터벌은 22분 정도 훈련을 하는데 다행히 두통은 없었다. 지속주는 40분을 했을 때는 머리가 무겁다고 느꼈고 30분은 괜찮았다. 아직 40분 이상은 달릴 몸이 아니라는 것이다. 30분에서 서서히 늘려가야 할 것 같다. 그렇다면 존 2만 했을 때와 지금은 어떤 점이 다를까? 무엇이 다르냐면 점점 빨리는 것이 느껴지고 체력도 좋아졌다. 인생의 숙제인 다이어트도 효과 있는 것 같다. 느리게 달렸을 때와 확실히 다르다. 내 훈련 방법이나 생각이 모든 사람에게 맞을 순 없을 것이다. 신체 조건, 부상 여부, 경력 등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여러 훈련을 해본 경험자로서 마지막 한마디를 해보자면, '약간은 힘들게 달려야 성장한다'. 무리해서 달리면 나처럼 두통에 시달리거나 무릎, 발목 부상을 입을 수 있다. 너무 천천히 달리면 성장은 없다(물론 성장을 바라지 않는다면 상관없다). 그 중간 어딘가에 답이 있다는 것. 힘들어 죽겠다도 아니고 지루하다의 사이에 자기에게 맞는 선택지가 있다. 그 지점을 찾고 즐겁게 달리면 지금보다 더 강해진 자신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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