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 후 다시 파쿠르를 시작했다. 입대 전과는 조금 달라졌다. 기존에 있던 파쿠르 모임에 나가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여겼다. 무엇보다도 대중들이 이 움직임을 파쿠르가 아니라 '야마카시'로 부르는 것을 바꾸고 싶었다. 군 입대전에는 길거리에서 운동하면 도둑놈이나 정신에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오해받았는데 제대하고나니 어디 TV프로그램에서 본적 있다는 반응이 잦았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이 '야마카시' 로 부르고 닌자들이 했던, 일본에서 시작된 운동으로 착각하는 것에 대해 내심 불편했다. 몇몇 네티즌들은 파쿠르하는 사람들을 매국노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래서 운동명칭부터 바꾸기로 결심했다. 이를 위해서는 국내 파쿠르 수련자들의 인식개선, 운동명칭을 파쿠르로 사용하는것이 먼저 선행되어야 했다. 전국 각지의 파쿠르 동호회, 팀들을 규합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네이버 카페 ‘한국 프리러닝&파쿠르 연맹-KFPF’부터 만들었다. (이 당시에는 운동명칭만 바꾸면 위험하다는 사람들의 편견, 부정적인 시선들이 해결될 줄 알았다. 현실은 이름만 바뀌었을뿐 대중들의 인식은 바뀌지 않았다.)
평소에는 해외 파쿠르 자료와 동영상을 번역하여 카페에 올렸고, 주말에는 입문자들도 배우고, 파쿠르 동호인들끼리 교류할 수 있는 정기모임을 주최했다. 몇 년 뒤 회원 수가 3만 명에 이를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모임을 열면서 다양한 연령, 성별, 몸들을 지도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고, 자연스럽게 코칭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파쿠르 코치가 되기 위한 커리어 로드맵을 조사하던 중, 세계 최초 파쿠르 교육기관이자 국제공인 지도자 자격 과정을 제공하는 파쿠르 제너레이션즈(Parkour Generations)를 알았다. 나 스스로 코치뿐만 아니라 유럽의 선진적인 파쿠르 교육 시스템을 도입하기 위해 지사 설립을 제안하는 사업계획서를 준비하여 2012년, 아시아 피트니스 컨벤션(Asia Fitness Convention)이 열리는 태국 파타야로 날라갔다. 파쿠르 제너레이션즈 본사는 영국 런던에 있는데, 마침 당시 열렸던 아시아 피트니스 컨벤션에 파쿠르 제너레이션즈 창립자 3명(Dan Edwardes, Forrest Mahop, Stephane Vigroux)이 참석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첫 미팅에서 한국 지사 설립 논의하고 싶었으나, 그들은 완고하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호. 파쿠르 제너레이션즈 팀이 되려면, 먼저 너 스스로 수련자이자 좋은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
타인을 지도해본 경력과 파쿠르를 경험해본 경력은 분명하게 구분된다. 왜냐하면 파쿠르를 잘하는 것과 파쿠르를 잘 가르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분야이기 때문이다. 좋은 지도자는 실질적으로 잘 가르칠 수 있는 코칭 능력이 더해져야만 한다. 필요로 하는 자질은 너무나 많다.
급한 마음을 추스르고, 그들이 제시한 코치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당시 파쿠르 코치가 되기 위한 길은 파쿠르를 만들었던 ‘야마카시’ 팀과 파쿠르 제너레이션즈가 합작으로 만든 A.D.A.P.T(Art du Deplacement And Parkour Teaching) 자격증이 유일했다.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움직임의 예술 및 파쿠르 코칭 자격증이다. 자격증을 수료하기 위한 훈련 과정에서 스테판 비그로와의 대화가 인상적이었다.
그는 리스(Lisses)에 살면서 원래 브레이크 댄스를 열심히 연습하던 평범한 청소년이었다. 그러나 17세에 데이비드 벨을 만났고 그의 집에서 파쿠르 영상과 그의 아버지, 레이몽 벨의 영상들을 보고서 파쿠르의 매력에 빠져들게 되었다고 한다. 데이비드 벨과 함께 파쿠르 훈련을 할 때, 데이비드 벨은 동작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지 알려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저 동작을 보여주며 한번 해보라고 하거나 같은 동작을 수백 번, 수천 번 반복 훈련시켰다고 한다. 스테판 비그로는 "데이비드 벨은 굉장히 훌륭한 파쿠르 실력자이지만, 좋은 선생님은 아니었다"라고 말했다.
아마도 데이비드 벨이 구체적인 동작과 노하우를 알려주지 않은 이유는 파쿠르는 훈련자 스스로 주변 환경에 적응하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스스로 성장해 나가는 훈련이기 때문이다. 파쿠르를 가르쳐주는 누군가가 훈련자에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지, 혹은 자신만의 움직임 노하우를 그대로 따라하도록 강요하는 순간 훈련자 스스로의 자유로운 영감과 시행착오 경험은 사라지고 만다. 과연 나는 어떤 파쿠르 지도자가 되고 싶은가? 새로운 고민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