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전환점이 된 경험들이 몇 가지 존재하는데 그 중 한가지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때는 2014년 9월24일, 국제공인 파쿠르 지도자 과정 ‘ADAPT Level 2’ 마지막 5일차였다. 아침 9시까지 하버드 스타디움에 집합했는데 이곳에 도착하자 마자 무엇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느낌이 심상치 않았다.
하버드 스타디움(Harvard stadium)은 고대 로마제국의 아레나(Arena) 건축을 본 따 1903년에 완공됐으며, 시민들이 경기장 계단을 달리는 유서 깊은 문화가 남아있다. 하버드 스타디움 계단 달리기가 세간에 알려지게 된 계기는 1970~80년대를 주름잡던 전설적인 조정경기 선수이자 코치 '해리 파커(Harry Parker)', 아이스하키 선수이자 코치인 '빌 클러리(Bill Cleary)' 등이 수십년간 자기 훈련과 선수육성에 활용 하면서부터다. 이후 보스턴 마라톤 선수들, 산악인, 피트니스 매니아들이 합류하고, 베이비부머 세대들이 노화를 예방하고 체력을 기르고자 천천히 계단 걷기 운동 캠패인을 벌이면서 더욱 널리 알려지게 됐다. 사람들은 하버드 스타디움을 단순히 체력을 기르기 위해 달리는 것뿐만 아니라 탁월한 성취를 이룬 영웅들과 명예로운 도전을 함께 함으로써 자기 자신 또한 그 주인공이 되고 싶은 의식이 밑바탕에 있다. 그런 점에서 하버드 스타디움은 단순히 오래된 경기장이 아니다. 보스턴 시민들의 육체적, 정신적 한계를 깨닫고 그것을 극복하려는 도전 정신과 명예의 역사가 계승되는 문화적 공간인 것이다.
2011년, 'November Project'는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하는 11월에도 사람들이 건강한 몸과 체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보스턴의 올림픽 메달리스트, 프로 선수들, 마라토너, 철인 등이 합심하여 무료로 피트니스 프로그램과 도전들을 제공하는 시민 운동을 시작했다. 나이, 몸매, 체력 상관없이 자신을 변화시키고 싶은 의지만 있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으며, 많은 동기부여와 용기를 얻을 수 있다. 이 프로젝트는 대성공을 거두어 전 세계 50여개가 넘는 도시로 확산되었다. 눈 여겨 볼 것은 전 세계로 확산된 November Project가 하버드 스타디움의 계단 달리기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시민들의 삶의 터전 '도시' '마을'의 공간을 신체적 도전들과 결합하여 건강하고 진취적인 문화를 만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도전정신과 활력이 급속도로 쇠퇴해가는 한국 사회에도 꼭 필요한 프로젝트가 아닌가 싶다.
하버드 스타디움은 한 구역에 31칸의 계단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총 37개의 구역으로 말발굽처럼 미식축구장을 둘러싸고 있다. 하버드 스타디움 계단 달리기는 올라갈 때에 큰 계단으로 오르며, 계단 높이는 15인치(약 38.1cm), 너비는 30인치(76.2cm)이다. 계단에서 할 수 있는 도전들은 다양한데 주로 다음 4가지 방식이 인기가 많다.
Full Tour : 37개 구역을 가장 빠른 시간 안에 완주하기
Tour of 50 : 37구역에서 달리기를 시작하여 13구역을 반환점으로 다시 37구역으로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완주하기.
35 minutes : 35분 안에 최대한 많은 구역을 정복하기
Century : 100개 구역을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완주하기
ADAPT level 2 자격과정 보조 인스트럭터(Instructor)로 참여한 파쿠르 제너레이션즈 아메리카 대표 '블레이크(Blake Evitt)'은 파쿠르 코치가 되기 전에는 육상 선수였고,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하버드 스타디움을 달렸다. 그는 마지막 5일차 도전과제로 하버드 스타디움 달리기를 제시했다. 도전은 간단했다. 40분 안에 37구역까지 완주하기.
파쿠르의 '유용해지기 위해 강해져라(Be strong to be useful)' 정신을 실천하기 위해 자격과정 인스트럭터인 블레이크와 미클(Mikkel Thisen), 앤디(Andy Pearson)도 이 도전에 참여했다. 도전자들은 1구역 첫 계단 앞에 섰다. 서로 지옥에서 보자며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나는 입가에 미소를 활짝 지었지만 머리 속은 이미 두려움으로 가득차고 심장은 쿵쾅쿵쾅거리며 아드레날린이 폭발적으로 붐비되고 있었다.
출발! 첫 시작부터 가볍게 뛰어가는 블레이크를 보며 자동적으로 경쟁심리가 발동하여 뒤쫓아갔다.
1구역에서 4구역 까지는 워밍업이었다.
5구역부터 똑같은 페이스를 유지해서 무심하게 뛰어올라가는 블레이크가 점점 두려워졌다.
7구역이 되자 도저히 처음의 속도를 유지하기가 어려워졌고 다리가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숨이 거칠어졌고, 블레이크를 이겨보려는 내 마음이 내 몸을 옥죄어 왔다.
8구역이 되자 블레이크를 뒤쫓아 가는 것을 포기했다. 녀석은 괴물이다. 대신 나만의 페이스로 뛰려 했는데 되려 내 뒤를 쫓아오고 있는 다른 도전자들이 눈에 보였다.
10구역.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계속 남과 나를 비교하려는 마음을 잊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내 몸에서 내 영혼이 사라져간다. 무의식적으로 팔다리가 움직여 계단을 달린다.
11구역. 다리 근력은 그런대로 버틸만 했지만 심장이 너무 터질 것 같고 호흡이 힘들어서 걸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12구역. 걷는 것은 오히려 잘못된 판단이었다. 계단과 계단 사이가 넓고 높이가 있다 보니 한 계단 오를 때마다 '런지'를 하는 것과 같았다. 허벅지 근육이 터지다 못해 마비될 것 같았다.
13구역. 다시 뛰어올라갔다. 터질 것 같았던 허벅지 근육은 진정되었지만 반대로 호흡이 거칠어졌다. 완전히 딜레마에 빠졌다. 걷는 것도, 뛰는 것도 둘다 고통스러운 것이다. 피할 곳은 어디에도 없다.
14구역. 첫 계단은 뛰어 올라가기 시작해서 호흡이 힘들면 걸어 올라가기로 했다. 이 고통이 끝날 수 있는 37이라는 숫자가 내 머리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18구역. 잠시 저 멀리 달리고 있는 블레이크를 보았다. 그는 아직도 페이스를 유지한 채 처음처럼 달리고 있었다.
23구역. 육체적으로 힘든 상황 속에서 그 어떤 외부적인 것들(숫자, 시간보기, 비교/경쟁하기, 편한 자세 찾기 등)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비로소 '나' 자신에게 집중하여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26구역. 나의 육체가 비명을 지르고 있지만 내 마음은 어느 때 보다도 평온했다.
30구역. 블레이크가 어느새 37구역까지 완주하고, 제일 마지막에 뒤쳐져 있는 도전자를 향해 달려가는 것이 보였다. 또한 내 뒤를 쫓아오던 앤디와 미클은 매 구역을 완주할 때 마다 팔굽혀펴기 10개씩 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들은 뒤쫓아온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있는 그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보고싶은 대로 세상을 보았다. 이 장면은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보여지는 대로 세상을 본 찰나의 순간이었다.
37구역. 완주의 순간, 몸의 긴장이 풀렸다. 기록은 31분이었다. 성공이다! 나는 내가 이룩한 성취가 대견스러워 하버드 스타디움의 웅장한 계단들을 쭉 둘러보았다. 그러다가 반대편에 타인의 도전이 끝날 때까지 함께 옆에서 달려주고 있는 블레이크를 발견했다. 그에게는 37구역이 끝이 아니었다. 그보다 끝이 없는 무한한 곳을 향해 계속해서 나아가고 있었다. 그는 애초에 37구역을 자신의 목표로 정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나는 그를 보며 머리를 망치로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어떤 목표, 결과, 뜻, 이상, 기준은 그것을 성취한 순간 거기서 끝나버린다. 결국 그런 목표 지향적인 것들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오히려 외부의 목표, 기준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에게 몰입하여 살아있는 모든 순간에 최선을 다할 때 영원성, 무한함을 지닌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성공'이라는 유혹을 뿌리치고 37구역에서 벗어나 아직 계단을 오르고 있는 도전자들에게 달려갔다. 그동안 집, 학교, 어른들에게서 배웠던 타인을 도와주는 마음, 타인과 상생하고 협력하여 서로가 함께 성장하고자 하는 '이타주의' 정신은 조금 불편하더라도 자신의 것을 남을 위해 양보하고, 내어주고, 희생하는 것인 줄 알았다. 그러나 하버드 스타디움이 나에게 이타주의는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이타주의는 오히려 내 자신을 더 큰 그릇으로 확장시키고, 더 강인해질 수 있게 도와주는 원동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타주의는 내가 스스로 정했던 한계, 목표를 성취하더라도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을 도와주고 생각함으로써 무한의 영역으로 내 자신을 이끌어 준다. 결국 경쟁하여 타인보다 비교우위를 얻는 것은 기준, 시스템 속에서 1등이 될 뿐이지만 이타주의를 실천하면 기준, 시스템 밖의 무한의 영역에서 내 자신에게 '최초'가 될 수 있다. 1등은 순간의 성취감을 줄 뿐 그것이 삶에 지속되지는 못한다. 그래서 또 다른 성취를 느낄만한 다른 무언가를 끊임없이 찾아 헤맨다. 1등은 '순간 부처'가 될 뿐이다.
호주머니에 송곳을 숨기고 나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잘못된 방향으로 향할 때, 송곳이 내 허벅지를 찌르듯. 이 글이 내 자신을 바로 설 수 있게 도와주는 장치가 되었으면 한다. 결국은 나에게 묻는다.
나는 아직도 37구역에 머물러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