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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쿠르 코치 김지호 Oct 13. 2023

11. '나'의 파쿠르가 되어야 한다

국제적인 파쿠르 모임 '랑데부 2018' 워크숍 2일차. 오전 10시 워크숍의 시작을 여는 워밍업 세션은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온 '고스트'(본명 : Danilo Di Gregorio)가 진행했다. 그는 파쿠르 창시자 중의 한 명인 '로랭 피에몬테시(Laurent Piemontesi)'와 오래 훈련해 온 올드스쿨 파쿠르 수련자이다.  


 주변 지형지물들을 이용하여 쉴틈없이 팔굽혀펴기, 스쿼트, 뛰고, 버티고... 워밍업 세션은 전형적인 야막(Yamak - 1997년, 9명의 파쿠르 창시자들이 모인 최초의 파쿠르 집단 '야마카시'에서 따왔으며, 움직임의 예술 L'art du deplacement 수련자를 지칭한다) 스타일의 준비운동이었다. 


 다음 날도 고스트가 진행한 '올드스쿨 파쿠르(Old School Parkour)' 세션에 참여하였는데 코치 중심의 도전과 가르침이 내가 만났던 파쿠르 창시자들의 세션과 다르지 않았다.  고스트는 파쿠르 세계에서 매우 성실하고, 정직한, 정통 트레이닝 방식을 따르는 수련자로 널리 알려져 있고, 그의 수년간의 경험과 노하우는 매우 값지며, 이탈리아 파쿠르 커뮤니티를 이끄는 리더들 중 한명으로서 역할도 훌륭하다.  그러나 나는 그의 수업에서, 움직임에서, 코칭에서 그의 색깔을 찾을 수 없었다.  왜 그런 것일까?  


 그는 수업 현장에서 오랫동안 갈고 닦으며 경험해온 자기 자신의 모습을 전하는 대신 창시자들의 철학, 방법을 전했다. 그는 파쿠르 창시자들의 메세지를 전하는 전달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했다.  사람들은 자신이 수련해온 스타일과 전달하고자 하는 수업 주제가 '올드스쿨 파쿠르' 이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자기 자신의 색깔이 드러났어야 했다.  


 올드스쿨이란, 옛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전통을 고수하는 것이 아니라 지난한 세월 동안 갈고닦은 자기자신의 고유한 주름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도덕경 2장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天下皆知美之爲美, 

세상 사람들이 모두 아름답다고 하는 것을 아름다운 것으로 알면, 

斯惡已. 

이는 추하다. 

皆知善之爲善, 

세상 사람들이 모두 좋다고 하는 것을 좋은 것으로 알면, 

斯不善已. 

이는 좋지 않다.  

- <노자의 목소리로 듣는 도덕경>, 최진석 저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명언처럼 누군가의 말, 행동, 지식, 생각, 철학, 기준, 방법, 길을 따라하는 것은 처음에는 그것이 배움이 될 수 있지만, 그렇게 살아가는 방식이 습관이 되었을 때, 되려 자신의 색은 옅어질 뿐이다. 색이 옅어지면 옅어질 수록 남이 좋다는 것, 옳다는 것, 아름답다는 것을 쫒기 쉽고, 그러다 보면 매 순간 이리저리 정처없이 이도저도 아닌 미지근한 존재가 된다.  


 이와는 정반대로 극단적인 결과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맹목적인 가치관, 이념, 신념, 철학, 종교, 지식, 사상, 윤리, 기준에 매몰되어 근본주의자가 된다. 이러한 경우, 자신에게 부합하는 자들은 확장, 성장, 지지할 '선'이 되고, 그렇지 않은 경우 폭력, 배제, 억압해야할 '악'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오직 빠르고 효율적인 이동기술만을 고집하는 '순수 파쿠르 열혈신자'들, 그리고 이와는 정반대로 공중기, 화려함, 표현만을 고집하는 '프리스타일 신봉자'들이다. 마찬가지로 '경쟁, 대회'를 열망하는 트레이서와 '상업화 반대와 이타주의'를 굳게 믿는 트레이서들. 이들은 서로를 못 잡아먹어 안달이지만 사실은 서로 격이 같다. 그러므로 어느 한편에 매몰되기 보다는 양편을 아우를 수 있는 경계에 설 수 있어야 한다. 


Philippe Petit


 얇은 밧줄 위에 아슬아슬하게 왼편, 오른편 사이를 걸어가는 외줄타기, 하늘위를 걷는 남자 '필리페 페티(Philippe Petit)' 처럼 경계는 조화롭고 균형잡힌 상태다. 그 경계에 서기 위해서는 독립적인 존재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수련해야 한다. 누군가의 파쿠르가 아니라 '나'의 파쿠르가 되어야 한다. 파쿠르를 위한 인간이 아니라 인간을 위한 파쿠르가 되어야 한다. 파쿠르를 위한 커뮤니티가 아니라 커뮤니티를 위한 파쿠르가 되어야 한다. 파쿠르의 대한민국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파쿠르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코치가 그려온 무늬가 중요하다. 매 순간 스스로에게 자문해야 한다. 


"나는 지금 나만의 고유한 색을 추구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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