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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쿠르 코치 김지호 Oct 13. 2023

8. 파쿠르의 탄생지, 프랑스에 가다

군에 입대할 시기가 가까워지자 덜컥 겁이 났다. 아무것도 이룬 것 없이 군입대를 했다가는 제대하고 나서는 현실의 장벽에 가로막혀 취업전선에 뛰어들고, 파쿠르를 그만둘 것 같았다. 파쿠르에 대한 열정을 잃어버릴까 봐 두려웠다. 그무렵 창시자 데이비드벨의 'On Avance Toujours' 이라는 제목의 유튜브 영상을 자주 봤다. 에미넴의 ‘Lose yourself’ 곡에 맞춰 펼쳐지는 놀라운 움직임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뛰고 당장 밖으로 나가서 파쿠르를 하고싶게 만들었다. 

 

무엇보다도 1분 44초 장면에 등장하는 ‘맨파워 갭(Manpower Gap) 점프’에 가슴이 뛰었다. 이 점프는 영화 <13구역>에도 등장할 정도로 유명한 도전으로, 프랑스 에브리(Evry)에 있는 한 건물 사이를 점프하는 도전을 일컫는다. 건물 1층에 Manpower 세탁소가 있어서 맨파워갭이라 부른다. 일반인들에게는 파쿠르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처럼 느껴지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지만, 창시자 데이비드 벨만 가능한 도전이었기에 파쿠르 수련의 끝에 도달했음을 증명하는 상징적인 점프였다. 2008년까지만 해도 맨파워갭을 성공해낸 사람이 전 세계에 20명도 채 안 될 정도로 손에 꼽았다. 유럽과 미국 등 서양인들의 전유물이었던 맨파워갭은 아시아인은 도전한 사례가 없었다. 

 

군 입대를 앞둔 2008년 8월, 프랑스행 비행기에 올랐다. 목표는 하나였다. 맨파워 갭에 도전하는 것이다. 

 

파리 13구에서 좀 더 아래로 내려가면 위성도시 에브리(Evry)가 있다. 그곳에 작은 마을 리스(Lisses)는 조용하고 인적이 드문 곳이다. 거주자 또한 노년층이 많다. 대부분이 풀과 나무, 호수 등 훼손되지 않은 자연환경으로 이루어져있다. 이른 아침의 리스는 고요했다. 인프라가 잘 갖추어진 대도시가 아닌데 어떻게 작은 마을에서 파쿠르가 시작될 수 있었을까? 전문가도 아닌 10대 청소년들이 어떻게 파쿠르를 창시할 수 있었을까? 사람들은 어른이 되면 밖에서 뛰어노는 것을 그만두는데, 어떻게 창시자들은 나이가 들어도 놀이를 지속할 수 있었을까? 파쿠르 창시자들은 어떻게 위험과 부상을 관리할까? 파쿠르 창시자들은 사람들의 시선과 왜곡된 편견을 어떻게 극복했을까? 파쿠르의 움직임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파쿠르는 어떤 정신과 사상, 철학을 가지고 있을까? 파쿠르는 무엇인가? 

 

에브리에 있는 대성당에 도착하자 많은 외국인들이 파쿠르 훈련을 하고 있었다. 영국,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아이슬란드, 프랑스, 독일, 미국 등 국적이 다양했다. 이들 중 가장 뛰어난 실력을 가진 네덜란드인 피터(Peter)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파쿠르의 목적은 위험한 상황을 극복해 내기 위함이다. 만약 너가 적과 마주한다면, 너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도망치거나 아니면 싸워야 한다. 무술은 적과 싸우는 방법을 훈련하지만, 파쿠르는 적으로부터 빠르게 벗어나는 것을 훈련한다. 때문에 파쿠르는 어떠한 환경에서라도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법을 훈련한다. 건물이 많은 지역, 나무가 많은 숲, 넓은 공터 등 모든 환경에 자신을 적응시켜야 한다. 때문에 파쿠르에 있어서 ‘달리기’가 기초가 되고 가장 중요하다. 물에서도 위급한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에 수영까지 할 줄 안다면 더할나위없다. 이 모든 것을 극복해내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이 강해져야 한다. 한마디로 ‘철인’이 되어야 한다."

 

파쿠르를 훈련하는 나의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강해지기위해서다. 하지만 그 강함의 목적이 남과 다르고 특별해지고 싶기 때문이다. 남에게 보여주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마음이다. 그러나 이런 마음은 파쿠르를 지속적으로 훈련할 수 없다. 그러한 마음은 파쿠르를 오직 도파민을 자극하기 위해 연습하게 되고 진실된 움직임이 아닌, 잡다한 기술을 연마하게 된다.


내가 맨파워갭을 시도하겠다고 하자, 주변에 있던 트레이서들이 말리기 시작했다. 저곳은 최소 5~6년이상 꾸준한 파쿠르 훈련을 해야 안전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지난 3년간 꾸준히 착지와 낙법을 훈련해 왔기 때문에 자신있었다. 또한 한국에서 맨파워갭과 비슷한 곳을 성공해낸 적 있었고, 맨파워갭 건너편 착지지점은 자갈로 이루어져 푹신푹신했다. 트레이서들에게 10초 카운트 다운을 부탁했다. 


맨파워 갭 위에 섰을 때, 처음 내 머릿속을 강타했던 생각은 내 신체 능력으로 충분히 저 건너편으로 점프를 해낼 수 있겠다는 직관이었다. 그래도 정말 두려웠던 것은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다는 것. 실수 한 번은 바로 죽음이라는 것. 건물 옥상에서 1시간 넘게 두려움에 휩싸여 건너편 착지 지점을 바라보기만 했다.  


가장 위험하고, 어려운 순간은 언제나 점프하기 직전이다. 결심이 흔들리는 구간이기 때문이다. 몸이 움직이고 있는 도중에 결심이 흔들리면 실패는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다. 이 점프를 위해 수 년간 수백 수천 번 점프를 하고 낙법을 연습했으면서도, 정작 진짜 점프를 앞두고 자신을 의심했다. 


죽음의 공포 앞에서 자신의 한계를 느꼈다. 자존감은 완벽하게 무너졌고, 기댈 곳이 없어 결국 신을 찾았다. 용기를 달라 간청했지만 아무것도 들려오지 않았다. 오랜 고심 끝에 든 마지막 생각은 가족, 친구 그리고 신 조차도 이 점프를 ‘나’ 대신 해주지 못한다는 것. 결국 이 도전은 ‘내가 스스로 해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현실 인지하게 되었을 때, 무척이나 고독했다.


점프를 위한 첫발을 내딛는 그 순간. 모든 시야가 건너편 건물 옥상 착지 지점으로 좁혀졌다. 마치 한 공간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모든 집중이 한 곳에 몰렸다. 이전에는 경험해 볼 수 없었던 완전한 몰입이었다. 반복된 연습으로 습관이 된 착지와 낙법을 온전하게 해내고, 마침내 살았다.


 프랑스에서 만난 친구들은 내가 도전을 할 수 있도록 격려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위험한 상황을 대비해서 도약지점과 착지지점에 매달려 보조까지 해주었다.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려고 할 때, 그 위험을 함께 감수하는 동료들이 있다는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큰 힘이 된다. 그 관계 속에서 언어, 인종, 생각, 편견을 넘어 고유한 존재들이 강하게 연결되는 ‘하나 됨’을 느꼈다. 경쟁심을 버리고 개인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도록 서로 격려하고 돕는다면, 단 한 명의 1등만 남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자기 스스로에게 ‘최초’의 순간을 만들게 된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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