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쿠르하면서 자주 겪는 일은 사람들로부터 보여달라고 요청받는 일이다.
“너 파쿠르 한다면서? 한 번 보여줘봐.”
학창시절, 자아가 약했던 나는 타인의 요청을 거절할 줄 몰랐고, 보여달라 요청할 때마다 서커스 원숭이 단원처럼 담벼락을 뛰어넘었다. 그렇게 파쿠르를 보여주고나면 대다수의 반응은 화성인바이러스 방송에 출연한 기상천외한 사람처럼 이상한 녀석으로 취급하면서 낄낄거리며 웃거나 ‘그게 뭐야? 나도 할 수 있겠는데’ 하며 놀리기 일쑤였다.
그 중에서도 극소수의 몇몇만 “와! 그거 멋있다! 나도 하고싶어. 가르쳐줘.”라며 순수하게 파쿠르를 해보고 싶어했다. 대개 “한 번 보여줘”라는 사람들의 요청은 내게 상처로 남았다. 김지호라는 한 개인, 인간에 대한 존중보다는 그저 눈요깃 거리로 취급하는 것에 대해서 감정이 상했던 것이다.
중심에서 배제된 이상한 것들, 특이한 별종들, 소수자들은 때때로 박물관, 동물원, 전시장이라는 곳(지금은 유튜브와 틱톡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에서 진열되고 사람들을 즐겁게 한다. 그 즐거움은 동등한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위아래가 분명한 수직적 관계에서의 우월감, 그리고 열등감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얻어지는 즐거움이다.
그러나 내가 좋아하는 일이 절대 다수가 이해할 수 없다해도 먼저 고개를 숙여서는 안된다. 파쿠르를 하는 것에 대해 부끄러운 죄의식을 가져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사랑한다면, 나의 진정성, 당당한 모습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은 감화될 수 있다. 그런 나만의 공간은 야탑중앙도서관이었다.
태어나고 자란 곳은 내가 선택할 수 없었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은 내가 선택할 수 있다. 야탑은 내게 해석의 고향이다. 온통 빨간 벽으로 지어진 야탑중앙도서관(성남시 평생학습관)은 삶의 절반을 연습하고 커뮤니티를 일궈온 곳이다.
빨간 벽은 거칠다. 굳은살 하나 없던 손을 굳건하게 만든 빨간 벽은 다시 굳은살을 벗겨냈다. 지킴이는 빨간 벽을 가만히 내버려 두기를 바랐지만 나는 빨간 벽의 감촉과 변덕이 좋았다. 봄에는 빨간 진드기가 봉숭아 물들이듯 손바닥을 수놓고, 연녹색 송홧가루가 신발 밑창을 메웠다. 여름에는 영장산 자락 따라 내려온 모기와 장마 기간 동안 물을 머금은 이끼, 달궈진 벽이 몸짓의 열기를 더한다. 붉게 물든 단풍이 빨간 벽에 덧입혀질 때 몸을 뉘어 시선을 옮기면 구름 하나 없는 파란 융단이 펼쳐진다. 몸이 시릴 때쯤 하얀 눈덩이들은 헐벗은 나뭇가지를 덮고 그늘진 빨간 벽으로 최대한 숨는다.
파쿠르는 세상과 나, 가족 사이의 균열을 일으켰다. 시작은 가족이었다. 방문을 닫고 게임에만 몰두하던 아들이 갑자기 집 밖으로 나가 매일 상처투성이가 된 모습으로 들어오니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부모님과의 갈등조차 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내 마음은 이미 오늘 해낸 동작에 들떠있었고, 내일 해내고 싶은 동작에 가슴이 뛰었다. 어디에서, 어떻게 파쿠르를 배울 수 있을까? 파쿠르 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더 나은 파쿠르를 위해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그렇게, 파쿠르라는 눈으로 세상을 봤고, 세상을 알고 싶어졌다.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기 시작했다. 영화 야마카시 개봉 이후, Daum 카페 ‘야마카시 코리아’가 회원수 5만여명에 이를 정도로 가장 큰 동호회였다. 전국 각지에서 활동하는 회원들이 주말마다 지역에서 파쿠르 모임을 열고, 모임에서 성취해낸 동작들을 카페에 올려 자랑도 하고 피드백도 주고받았다. 새로운 장소를 찾아 탐방을 나서는 이들도 있었는데 종종 카페에 있는 파쿠르 장소 게시판에 위치와 사진들을 공유했다. 똑같은 장소에서만 연습하던 회원들에게 있어서 새로운 장소의 발견은 흥분을 감출 수 없는 단비같은 소식이었다.
내가 모임을 주도한 날도 있었다. 토요일 오후 1시, 야탑역 4번 출구 앞. 게시판에 글을 올린 후 오겠다는 댓글을 수없이 반복해서 읽었지만 정말 사람들이 모일까? 걱정이 많았다. 일기예보를 보고 또 봤다. 혹시 아무도 오지않더라도 나혼자 파쿠르를 하면 된다고 생각하며 약속 장소에 나갔다.
이게 무슨 일인가? 서울, 경기도뿐만 아니라 부산, 대전, 대구 등 전국에서 청소년 100여명이 모였다. 당시에는 점프할 때 무릎과 골반 등 동작제한이 없는 통큰바지가 유행했다. 야탑역 4번 출구 앞에서 운동화에 백팩, 통큰바지를 입고 주변에 넘어볼 장애물이 없나 어슬렁 거리는 사람이 있으면 백이면 백 파쿠르하는 사람이었다. 초면에도 불구하고 카페에서 동영상을 공유하고 댓글을 주고받은 사이라 본명은 몰라도 서로 닉네임으로 알아보았다.
야탑역 4번 출구 앞에 소속이 불분명한 사람들이 뗴거지로 모여들자 인근 주민들이 두려운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봤다. 몸이 근질거리는 트레이서들은 야탑역 앞 광장에 있는 화단과 벽, 장애물들을 활용하여 파쿠르 연습을 했다. 몇 분 뒤, 경찰차 2대가 왔다. 경찰들이 다가와 무슨 집회냐며 물어봤다. 파쿠르 모임이라 해명했지만 경찰은 내 이름과 주민번호, 연락처를 적어갔다. 이때가 파쿠르하면서 앞으로도 자주 겪을, 첫 신원조회의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