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쿠르 코치 김지호 Oct 13. 2023

7. 파쿠르하러 대학에 가다

수능이 끝나고 내 인생에 큰 사건이 생겼다. 아버지가 내가 갈 대학을 마음대로 지원해 버렸다. 결국 한군데에 붙었는데, 입학이냐 재수냐는 학교에 한번 가보고 결정하자는 생각으로 답사를 갔다. 


학교 정문을 들어선 순간, 나의 입은 다물어지지 않았다. 여태껏 내가 보아온 파쿠르 장소 중 이보다 더 좋은 곳은 없었다. 숭실대학교는 정문에 들어서자마자 휠체어 및 유모차, 자전거 등을 이동시킬 수 있는 ‘ㄹ’자형 보행자 시설이 기하학적 도형처럼 계단 옆에 지어져 있다. 어떤 도색도 없이 거친 콘크리트를 그대로 노출하는 20세기 후반에 유행한 ‘브루탈리즘’ 양식을 반영했다. 브루탈리즘 건축은 신발과 접지력이 좋아 파쿠르 기술을 연마하기에 안성맞춤이다. 대리석, 코팅된 콘크리트 건축이 많은 한국에서 벽을 올라가는 월런(Wall run), 클라임업(Climb up) 등을 연습하기 좋은 미끄럽지 않은 벽을 찾기가 쉽지 않다.


숭실대학교

 

또한 숭실대학교의 건축은 독특하게도 난간 역할을 하는 허리높이 벽을 철제 펜스가 아니라 콘크리트로 구축했고, 손잡이만 쇠 난간으로 제작했다. 이러한 구조는 더욱더 클라임업, 캣리프(Cat leap), 턴볼트(Turn Vault) 같은 기술을 연습하기에 더 좋은 환경이다. 벽 모서리를 손으로 잡으면 악력을 발휘하기 쉽지 않은데 철봉처럼 손 전체를 말아쥐어 잡을 수 있어 상체를 끌어올리기 더 수월해지기 때문이다. 올라가는 움직임뿐만 아니라 낮은 높이의 쇠 난간은 균형 기술 연습에도 좋은 환경을 제공한다. 일자로 쭉 나열된 난간을 줄타기하듯 균형잡아 걸어가는 레일 웍(Rail walk)도 연습할 수 있고, 난간과 난간 사이에 앞꿈치로 정확히 착지하는 프리시전 점프(Precision Jump) 연습하기도 좋다. 서울에서 파쿠르의 정확성과 균형감각, 기본기를 갈고닦는데 이만한 환경이 없다. 극복하고 싶은 장애물이 많다보니 수많은 가능성과 움직임의 동선들이 머리 속을 장악했다. 나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입학을 결정했다. 

 

돌이켜보면 이 결정은 내 인생에 있어서 신의 한 수였다. 내가 입학한 곳. 정확히는 아버지가 마음대로 지원한 바람에 어떤 분야를 공부하는 곳인지도 모르고 입학한 곳은 숭실대학교 벤처중소기업학과였다. 후에 파쿠르 회사를 창업하는 과정에 큰 도움을 받았다. 

07학번 새내기로서 나의 대학생활은 간단했다. 공강 시간에도, 수업이 끝나도, 주말에도 파쿠르를 했다. 많은 것들이 제한되었던 고등학교 시절과 달리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신이 나서 파쿠르에 온 힘을 쏟아부었다. 그 흔한 소개팅이나 클럽마저 파쿠르에 비하면 내 눈에는 부질없어 보였다. 


파쿠르는 어느새 학과를 넘어 학교에도 소문이 났다. 파쿠르에 대해 잘 모르던 대학교 경비아저씨들도 내가 매일같이 와서 연습하니 별다른 간섭없이 묵인해 주었다. 나중에는 주말에 파쿠르 모임까지 대학교 캠퍼스에서 대놓고 열었는데 학생증만 보여주면 별다른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이제 성인이니까 나의 행동과 선택을 존중해주는 것일까? 학교 학생이니까 봐주는 것일까? 내가 예의 바르고 착해 보여서? 파쿠르에 대한 열정이 남달라보여서 허락해준 걸까? 어떤 이유가 되었든지 간에 난생처음으로 비공식적(?)으로 파쿠르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긴 셈이다. 


학교 안에서 동아리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취업난으로 자기계발과 스펙 쌓기, 자격증 동아리가 우후죽순으로 생기고 취미 동아리는 사라지는 추세였다. 파쿠르가 위험하다는 편견도 크게 작용한 것 같다. 결국 동아리를 만들어 모르는 사람들에게 파쿠르를 알리는 것보다, 파쿠르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 판단했다. 


뜻이 있는 동료들과 파쿠르팀 ‘리얼’을 만들었다. 상상을 현실로, 말보다는 실력으로 활동하자는 취지에서 팀이름을 ‘리얼’로 정했다. 멤버는 동갑내기이자 나중에 나와 동반입대한 황유현, 야마카시코리아의 초창기부터 운영진으로 활동했던 작은형 최재옥, 본래 우슈를 오랫동안 전공한 큰형 심상민, 그리고 나. 이렇게 총 넷이 모였다. 팀 ’리얼’ 활동 목표는 함께 힘을 합쳐 좋아하는 파쿠르를 하면서 먹고살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었다. 07학번 새내기 1년 동안 파쿠르에 푹 빠져 살았지만 생각은 항상 취업과 파쿠르 사이에서 갈등했다. 좌우충돌이 지속됐다. 


결국 1년만에 학교를 휴학했다. 파쿠르를 진로의 한 방향으로 살아본 적은 없었으니 도전해보고 싶었다. 낮에는 블로그에 해외 파쿠르 소식과 자료를 번역하고 저녁에는 신천역에 위치한 K-마샬아츠 체육관에가서 팀리얼 멤버들과 아크로바틱 기술을 연마했다. 네이버에 파쿠르를 검색하면 노출되기 쉽게 홈페이지도 만들고 키워드도 노출시켰다. 파쿠르를 하는 사람조차 '파쿠르'라는 단어는 잘 안쓰고 '야마카시'라 부르던 시절이었다. 검색포털에 파쿠르 혹은 야마카시를 검색하면 야마카시코리아 하나만 뜨던 시절이었다. 

집에서 지원은 일절 없었으므로 금방 용돈이 바닥났다. 성남중앙도서관으로 파쿠르모임이 있어서 버스를 타려 했는데 교통카드를 찍자 ‘잔액이 부족합니다’라는 메시지가 떴다. 결국 집에서 중앙도서관까지 뛰어갔다. 낮에는 인터넷을 떠돌아다니며 파쿠르 정보탐색을, 저녁에는 마샬아츠 체육관에서 운동을, 야간과 주말에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런 생활 4개월만에 나는 본래의 목표에서 멀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몸과 마음이 지쳤다. 팀을 만들고 인터넷에 영상을 올리면 여기저기서 공연도 오고, 광고촬영 문의도 올줄 알았다. 하지만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팀리얼은 파쿠르 팀인데 실제로 연습하고 활동하는 분야는 마샬아츠 트릭킹 공연을 하거나 영화, 드라마에 나가서 스턴트를 하는 것이었다. 팀리얼이 파쿠르 팀인지 스턴트팀인지 정체성의 혼란이 왔다. 나는 공연도 아니고, 스턴트도 아니고, 파쿠르가 하고싶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성공하고 싶었고 다른 것과 타협하거나 좋아하는 것을 현실이라는 장벽 뒤로 미루고 싶지 않았다. 

 

이전 07화 6. 야탑역 4번 출구 앞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