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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수호 Aug 06. 2021

36. 언제 칼 맞을지 모른다-1편 건물주의 황산 테러

(근간)사건 에세이 '사람이 싫다' 초고  3부 36번 에피소드 1편

변호사는 갈등과 분쟁의 한 복판에 서 있다. 당사자도 아니면서 가장 앞에서 용맹스럽게 싸운다. 그래서 원한을 사고 그래서 위험에 처한다.


불안하다. 막연한 두려움이 아니다. 악플이나 협박 전화 정도가 아니다. 물리적 위험이다.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떤 공격을 가해올지 모른다.


망상이 아니다. 경험이다.


1편 건물주의 황산 테러


상대방은 할아버지다. 할아버지‘였다’가 아니다. 지금도 소송 중이기 때문이다. MB 시절 시작된 소송이 8년째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도 끝날 기미가 안 보인다.


8년 전 할아버지가 의뢰인을 고소했다. 손해를 배상하라며 민사 소송도 제기했다. 사기당해 돈 뜯겼으니 물어내라는 거였다.


하지만 지난 그동안 열 건 넘는 민사 소송에서 우리가 모두 이겼다. 그만큼의 고소 건도 다 방어했다. 앞으로도 지는 일 없을 거다. 확실하게 마무리해서 질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 놨다.


그런데도 할아버지는 포기하지 않는다. 고소장과 소장을 끊임없이 날린다. 왜냐고?


할아버지가 사기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로부터 말도 안 되는 외국 투자 유혹을 받고 큰돈을 날렸다.


잠깐. 그런데 이게 무슨 말이지? 그 할아버지가 실제 피해자라고? 그런데 왜 계속 지는 거지?


간단하다. 할아버지는 상대를 잘못 골랐다. 가해자는 당연히 손해배상이든 교도소든 법적 책임을 진다. 하지만 가해자의 가족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공범이 아닌 이상 가해자가 아니다. 도의적 책임은 몰라도 법적 책임은 없다. 그럼에도 할아버지는 사기범이 아니라 그 가족을 상대로 8년째 싸우고 있다. 도대체 왜?     


가해자 본인을 상대로는 더 이상 얻을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이다. 가해자는 오래전 처벌받고 죗값을 치렀다. 일사부재리(一事不再理). 같은 일로 다시 처벌할 수 없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가진 돈도 없다. 그러니 돈을 받을 수도 없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가해자 대신 아내와 자녀를 노렸다. 이길 수 없는 소송이지만 눈 감고 덤벼든다.


어떤 할아버지 일지 한번 상상해보시라. 사기당해 전 재산 탕진하고 길거리로 내몰려서 노숙인 생활하는 궁핍하고 불쌍한 할아버지 모습이 떠오르지 않는가.


하지만 아니다. 전혀 아니다. 큰 부자다. 서울 한복판에 건물 몇 채 가지고 있다. 임대 수익이 엄청나다. 그런데도 그 사건을 잊지 못한다. 잊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이가 무기다.


할아버지는 한국 사회의 특성을 완벽하게 활용할 줄 안다. 아흔 살 가까운 노인이 법정에서 소리 지르며 욕설에 삿대질에 온갖 난동을 다 부린다. 이미 그 법원 사람들이 다 알 정도로 유명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국은 유교의 나라다. 아무도 그 할아버지를 저지하지 못한다. 판사들도 어찌할 줄 몰라한다.


재판 중 상대 변호사에게 막말은 기본이다. 재판 끝나면 따라오며 욕한다. 심지어 얼굴에 황산 뿌리겠다고 협박한다.


황산 협박 이후 그 재판에 변호사 여럿이 돌아가며 출석했는데, 위험에 처할 수 있으니 항상 조심하라고 당부한다. 황산 협박을 잊지 않도록 상기시킨다. 알아야 조금이라도 피할 수 있다.


황산을 맞더라도 얼굴은 피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상 사진과 그림은 본문 내용과 직접 관련 없습니다.

2편 목사님이십니까?


승소했다. 억대 손해배상 소송이었다. (이후 생략. 36번 2편 "목사님이십니까?"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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