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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딩 Jan 17. 2024

이토록 미련한 진정성

나를 다시 웃게 해준 아날로그적 위로

“나 방금 세브란스 진료 마쳤어. 곧 병원 나설 것 같아. 조금 이따 만나.”


지난 6월, 똘이의 장애 등록에 필요한 진단서를 받기 위해 서울을 방문했었다. 세브란스 병원 초진이 다가온 김에 세브란스에서 장애 진단서를 받기로 했다. 연금공단에서 장애 등급을 심사할 때 로컬 정신과의 진단서보다는 탑 3 대학병원의 진단서가 더 공신력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똘이를 데리고 집에서 부산역으로 부산역에서 서울역으로, 서울역에서 세브란스로, 그리고 세브란스에서 긴 대기시간을 감내하며 진료를 보고 진단서를 받는 일은 참으로 고된 일이었다. 낯설고 불안하고 지겹고 피곤했던 똘이는 빽빽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철퍼덕 주저앉기도 하고 양 팔로 주변을 휘휘 휘젓고 다니기도 했다. 집에서 잔뜩 챙겨 온 젤리를 먹이고 유튜브를 틀어주며 겨우 겨우 버텼다.


집에서 부산역까지 40분, 기차에서 2시간 40분, 서울역에서 세브란스까지 20분, 병원 대기실에서 1시간 30분, 소아 정신과 교수와의 초진 20분, 서류 발급 대기시간 20분... 새벽에 시작된 일정은 오후가 되어서야 마무리되었다.



드디어 내 손에 장애 진단서가 떨어졌다. 똘이의 이름 아래 ‘자폐스펙트럼장애’라는 글자가 적혀있고, 그 아래 ‘장애인복지법 제32조 및 같은 법 시행규칙 제3조 제3장에 따라 장애진단결과를 통보합니다.’라는 말과 함께 세브란스 병원의 직인이 찍혀있었다.


내 아이가 장애를 가졌다는 인정을 받기 위해 오늘 하루 이 고생을 감내하며 지금껏 기다렸구나. 아니, 오늘은 아무것도 아니지. 몇 년을 그렇게 달려왔는데 결국은 여기구나...... 마음이 착잡했다. 눈물은 나지 않았다. 만감이 교차했지만 그 마음은 꼭꼭 접어 서류봉투와 함께 가방에 넣었다. 주먹을 불끈 쥐고, 이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똘이야, 이제 가자. 엄마 친구 만날 시간이야."


서울에서 인생의 반을 살았으니 서울은 또 하나의 고향이나 마찬가지다. 2년 만에 찾아온 두 번째 고향에서 떠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부산으로 다시 내려가기 전에 서울에 살 때 가장 친하게 지냈던 대학 친구 2명을 만나기로 했다. 기차 시간이 촉박하여 만날 수 있는 시간이 매우 짧았다.

친구들은 나와 똘이를 배려하여 만남 장소를 키즈카페로 정해주었다.


“OO야!”

“와~ 이게 얼마만이야~ 아이고 똘이 많이 컸네!”

“똘이야, 이모들한테 인사해야지..”

“안녕하세요.”


친구들은 똘이가 듣던 것보다 똑똑하고 말귀도 잘 알아듣고 야무지다며 칭찬해 주었다. 나를 배려한 말임을 안다.


키즈카페에서 조금이라도 대화를 할 수 있길 기대했지만 똘이의 컨디션이 엉망이라 엉덩이를 붙이고 있을 수가 없었다. 이야기를 좀 나눠보려고 하면 똘이가 어디선가 말썽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30분을 채 버티지 못하고 우리 일행은 거리로 나왔다.


똘이가 컨디션이 다운되어 히스테릭한 짜증을 내기 시작하자 친구 A가 얼른 편의점으로 뛰어가 고래밥을 사다 주었다.


우리는 근처 아파트 놀이터를 배회해야 했다. 친구들은 묵묵히 내 발걸음을 함께 해 주었다. 쪽팔리진 않았다. 나의 아픔을 일말이라도 비웃을 친구들이 아닌 걸 알기 때문이다.


다만, 그날 하루의 일과가 나에겐 너무나 서러웠고 버거웠다. 새로운 시작을 할 거라고 결심하고 장애 진단서를 받았지만 여전히 그 시작은 망설여지고 두려웠다. 하고 싶던 이야기가 많았는데 하나도 하지 못했다.

헤어지기 직전, A에게 물었다. 나보다 두 살 많은 언니인 A는 몇 년 전 큰 슬럼프를 겪었고 그 힘든 시기를 참 단단하고 꿋꿋하게 이겨낸 친구다.


“언니... 언니는 그 시기를 어떻게 넘겼어? 언니 그때 정말 힘들었을 텐데... 남을 원망하지 않고 자신을 몰아세우지도 않고... 어쩌면 그렇게 성숙하고 꿋꿋하게 그 시기를 이겨냈어?”

내 질문이 당황스러웠는지 A는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버퍼링에 걸린 친구 모습을 보며 내가 너무 갑작스러운 질문을 했나 싶었다.


친구들과 헤어질 시간이 되었을 때 결국 난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아무것도 못했는데... 다시 몇 년 후에 볼지도 모르는데 이렇게 내려가야 하다니 너무 속상하다...”

A는 말했다.

“방학하면 너 보러 부산 한번 갈게. 그동안 잘 지내고 있어.”

“... 그래, 언제든 놀러 와.”


언제든 놀러 오라고 했지만 그 말을 진담으로 듣진 않았다. 헤어질 때면 으레 하는 인사니까.



그런데 두어 달 뒤, 그녀는 정말로 부산으로 여행을 오겠다고 연락이 왔다.


“OO야~ 엄마랑 같이 부산 여행 할 것 같은데 이왕이면 네 얼굴이 보고 싶어서... 이번 달에 가능한 요일과 시간이 언제야?”


가능한 요일과 시간이라... 평일은 똘이 센터 라이딩 때문에 바쁘고, 주말엔 세 아이를 돌봐야 하기 때문에 더 바쁘다. 그래도 멀리서 놀러 온다는 친구에게 밥이라도 사주고 싶어서 가능한 날짜와 시간을 몇 개 추려서 답장을 보냈다.


친구는 며칠 뒤, 수요일 오전에 KTX를 타고 부산으로 가게 되었다고, 부산역 앞에서 볼 수 있냐고 말했다.


“나 똘이 치료 때문에 시간 많이 못 내는데 괜찮을까? 자리를 오래 비우기가 어려워서..... 만나도 오래 못 보는데 괜찮아?”

“괜찮아~ 나도 엄마랑 여행 가는 김에 네 얼굴 보려는 거니 부담 갖지 마. 잠깐 얼굴만 보면 돼. 커피 한잔 하자.”

“어머니랑 같이 온다면서... 시간 빼도 돼? 어머니는 그때 뭐 하시고?”

“음... 엄마는 그때 잠깐 근처에서 쇼핑하고 계실 거 같아. 신경 안 써도 돼.”


부산역 앞엔 쇼핑을 할 만한 곳이 없을 텐데....

그래도 쇼핑을 하고 계실 거라니... 어딘가에서 볼일이 있으신가 보다 했다.


“수요일 열 시 반쯤 부산역에 도착할 것 같아. 괜찮아?”


열 시 반이라.... 1시에 똘이를 어린이집에서 픽업해야 하니 그전에 집에 가려면 12시 조금 넘어서 일어서야 한다. 친구와 만날 수 있는 시간은 두 시간 조금 못된다. 그 정도면 괜찮겠지. 어차피 어머니도 오래 기다리실 수 없을 테니 그 정도면 괜찮을 거야.


“응. 나 맥시멈 두 시간 정도 시간 될 것 같아.”

“그래 그래. 짧고 굵게 압축적으로 만나자.ㅋㅋ”


약속 당일 아침, 첫째를 등원시키고 똘이의 오전 라이딩은 친정엄마께 부탁드리고 셋째는 시간제 돌봄 선생님께 맡기기로 했다. 출발하려던 찰나, A에게 다급한 연락이 왔다.


“오 마이 갓... 영등포역에서 사고가 나서... 기차가 1시간 30분 지연된대... 어쩌지? 12시는 돼야 도착할 것 같아. 괜찮겠어?”


맙소사... 12시에 도착한다니. 아무리 늦어도 12시 15분에는 자리를 파하고 일어나야 하는데. 왕복 1시간 30분을 걸려서 약속 장소에 가도 15분 만에 헤어져야 하는 상황인 거다. 행여라도 기차의 연착 시간이 길어지면 부산역까지 가서도 얼굴도 못 보고 발길을 돌려야 한다.


“헉.... 그 시간엔 안 될 것 같아ㅠㅠ 나 늦어도 12시 15분에는 일어나야 해... 만나도 15분 밖에 시간이 안 돼...ㅠㅠ”


그녀는 카톡을 읽었음에도 한동안 답장이 없었다. 한참 뒤, 문자로만 봐도 아쉬움이 한가득 담겨있음을 알 수 있는 짧은 답장이 왔다.


“너무 속상하다. 꼭 보고 싶었는데.....”

"지금 오는 길이야?"

"응, 기차 안이야..."

“어떡하지... 기차 연착은 생각도 못했네. 그 시간엔 도저히 안 될 것 같아.”


그때만 해도, 안타까웠지만 어쩔 수 없이 못 만난다고 생각했다. 어머니랑 같이 온다고 했으니까 괜찮겠지. 언니도 언니의 일정이 있겠지. 꼭 내가 아니어도 어머니랑 좋은 추억 만들고 가겠지.


“할 수 없지.. 잘 놀다 올라갈게. 마음 쓰지 마.”


그래도 부산까지 내려오는데... 최소한 1박은 하고 가지 않을까? 내일 다시 짬을 내어 언니의 숙소 근처에서 잠깐 조우하면 어떨까 싶었다.


“며칠이나 있다가 가? 오늘 말고 다른 날 보면 안 되나?"

"나 내일 다른 일정이 있어서.. 당일치기로 올라가."


무엇 때문이었을까. 저 문장을 읽었을 때 정신이 번쩍 들었다.


두 달 전, 너를 보러 부산에 한번 가겠노라고 약속했던 나의 친구. 그녀는 부산 여행 날짜를 정하기도 전에 나에게 시간 되는 날이 언제냐고 먼저 물었었다. 내가 되는 시간에 맞춰서 여행일정을 잡은 거다. 그것도 당일치기로. 엄마를 모시고 하는 여행이라지만 장소를 굳이 부산으로 정한 이유 안에 내가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없다. 분명, 그녀가 부산행을 결심한 이유에는 ‘나를 만나기 위함’이 있을 것이다. 오늘 못 보면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기약하기 어렵다. 이대로 얼굴도 보지 않고 그녀를 돌려보내도 괜찮을까?


안 될 것 같았다.


“언니, 12시까지 갈게. 여기까지 왔는데, 서로 얼굴 도장이라도 찍자.”


“정말? 정말 나올 수 있겠어? 12시 15분에 일어나야 한다며. 너무 무리하지 마.”


“언니가 다른 곳도 아니고 부산으로, 그것도 당일치기 여행을 오기로 한 이유 중에 분명 나도 있을 거 아냐. 이대로 보내면 내가 너무 마음이 안 편할 것 같아. 잠깐이라도 얼굴 보자.”


“그래, 고마워.”


“고맙긴... 시간 얼마 없으니 늦지 않게 만나자. 얼른 준비하고 출발할게!”


“응! 좋아. 짧게라도 얼굴 보자!”


조금이라도, 5분이라도 시간을 벌어보려 난 일찌감치 집을 나섰다. 기차가 혹시라도 조금이라도 일찍 도착할 수도 있으니까. 약속 장소인 부산역 앞 스타벅스 라마다점 앞에서 초조하게 시계를 보며 친구를 기다렸다.

12시 2분에서 3분으로 넘어가던 시각...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나 기차에서 내려서 가고 있어.”


마음이 초조해 카페에 앉아있지 못하고 스타벅스 입구에서 미어캣처럼 목을 쭉 빼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기차역 쪽에서 파란색 상의에 가벼운 숄더백을 멘 반가운 얼굴이 나를 찾아 두리번거리며 뚜벅뚜벅 걸어왔다.


“언니!”


갑자기 눈에 눈물이 그렁, 하고 맺혔다. 그 순간 깨달았다. 나는 여기에 꼭 왔어야 했다. 오길 잘했다. 정말로 오길 잘했다.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짧다는 이유로 얼굴도 보지 않고 친구를 다시 서울로 올려 보냈다면 두고두고 마음의 짐으로 남았을 것이다.


“언니, 못 만나는 줄 알았어. 이렇게라도 얼굴 보니 너무 좋다.”

“그러게.... 이게 무슨 일이야. 열차 사고가 날 줄 누가 알았겠어.”

“기차가 지연되어서 너무 지루하고 힘들었겠다. 시간 아까우니 얼른 커피 주문하자.”

“난 아이스 아메리카노.”


“언니 어머니 드시게 케이크라도 포장하자. 골라봐. 여기 마땅히 기다리실만한 곳도 없을 텐데... 어디에 가 계시는 거야?”


“ㅇㅇ야... 사실 나 엄마랑 같이 안 왔어. 혼자 왔어.”


“뭐? 엄마랑 여행 온다며? 혼자 여길 왜 왔어?”


“왜겠어ㅠㅠ 너 보러 왔지....”


“뭐? 서울에서 여기까지 나를 보러 왔다고?”


“그래ㅠㅠ”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올라왔다. 난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얼굴로 친구의 손을 꼭 잡았다.


“왜 미리 말 안 했어...”


“말했으면 네가 ‘그래, 내려와.’ 이랬겠어? 당연히 오지 말라고 했겠지.”


“그럼 오늘 내가 못 나간다고 말했을 때라도 말하지 그랬어... 나는 언니가 나보고 혼자 내려왔는지도 모르고 언니 얼굴도 안 보고 보낼 뻔했잖아..”


“네가 여건이 안 된다는데.. 혼자 왔다고 말해봤자 네 마음만 불편하잖아. 다른 이유도 아니고 기차가 연착되어서 약속 시간이 틀어진 걸 어쩌겠어. 애 셋이고, 막내는 돌도 안 지난 아기고 똘이 치료로 정신없는 거 뻔히 아는데 어떻게 그래.”


“언니, 언니 그냥 보냈으면 내가 정말 두고두고 후회했을 뻔했어. 나중에 언니가 나 보러 당일치기로 혼자 왔다가 혼자 올라간 거 알았으면 미안해서 언니 얼굴 다신 못 봤을 거야..”


“그랬으면 영원히 비밀이 되었겠지...”


“내가 못 보겠다고 했을 때 안 섭섭했어? 아무리 머리로는 이해해도 사람 마음이 안 그렇잖아.”


“나 T잖아. 계속 나 자신을 납득시키고 있었어. 어쩔 수 없다. 기차가 연착된 건 예측 불가한 상황이었고 너는 내가 혼자 온 걸 모른다. 네 잘못이 아니다. 서운함을 가지지 말자... 이러면서.. 부산 온 김에 광안리 가서 바다나 봐야겠다, 했지.”


눈물이 왈칵 났다.


얼마나 너르고 단단한 마음을 가졌기에 그럴 수 있었을까.

두 시간밖에 짬이 안 난다는 친구를 만나기 위해 서울에서 부산까지 오기로 결정하려면. 혹시라도 내게 마음의 짐이 될까 봐 가족 여행이라고 둘러대는 것에 까지 마음이 미치려면.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다 해도, 그렇게 만나러 온 친구가 ‘시간이 안 되어 너와의 약속 장소에 나갈 수 없노라’ 했음에도 서운한 기색 없이 ‘잘 놀다 올라갈 테니 걱정 말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왜 나를 보러 와야겠다고 생각한 거야?”


“그냥, 요전 앞에 너 만났을 때 네가 너무 힘들고 아파 보여서 걱정도 됐고, 그때 니 질문에 제대로 대답을 못 해준 게 마음에 걸리기도 했고... 내가 원래 말주변이 그렇게 좋진 않잖아. 그래서 위로는 잘 못해줄 것 같지만 그래도 니 이야기나 들어줘야겠다 생각했지 뭐.”


“언니, 너무 고마워. 너무 감동해서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 정말 큰 위로가 된다.”


"히히 위로가 되었다니 나도 좋다."


나는 알았다. 오늘 받은 고마운 마음은, 이 기억은 앞으로 삶이 힘든 여러 날 여러 순간마다 나 지켜줄 것임을.


친구는 아마도 ‘너는 혼자가 아니며, 너를 걱정하고 사랑하는 내가 여기 있노라’는 것을 내게 증명해 보여주기 위해 먼 길을 왔을 것이다. 두 달 전의 만남에서 토끼눈이 되어 울었던 내가 마음에 밟혀, ‘말주변이 없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위로를 해주러 나를 찾아온 것이다.


그녀는 미련한 사람이 아니다. 충동적인 사람도 아니다. 이성적이고 현실적이며 똑똑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시간적, 경제적, 체력적 효율을 따지지 않고 내게 보여준 미련한 진정성이 내 마음을 크게 울렸다.


“언니 다음 일정은 어떻게 돼?”

“없어. 나 무계획이야.”

“그럼 나 못 만나면 뭐 하려고 했어?”

“부산 이미 여러 번 와서 볼 건 다 봤지만.. 그래도 온 김에 바다나 보러 가야겠다 했지.”

“언니 고향 강릉이잖아.ㅋㅋㅋ”

“얘는, 강릉바다랑 부산바다는 또 달라.”

“뭐래... 왜 이렇게 사람이 미련해.”

“내가 그렇지 뭘.”


“언니.. 그럼 오늘 나랑 같이 똘이 라이딩 다닐래?”

“어떻게?”

“지금 지하철 타고 40분 정도 가면 우리 집이거든.. 우리 집 가서 차 갖고 똘이 픽업 가서 똘이 센터에 들여보내고 40분 정도 수업하고, 또 다른데 데려가고... 그냥 그런 일정이야. 언니한테 맛있는 것도 사주고 싶고 부산 구경도 같이 하면 좋겠지만.. 그럴 여건이 안되니... 대신 오고 가고 기다리는 시간에 실컷 수다는 떨 수 있을 거야.”

“너무 좋은데?”

“정말? 부산까지 내려와서 이따위로 시간을 써도 되겠어?”


“야, 나 진심 200% 만족스러운 일정이야. 너 못 나온다고 해서 진짜 속상했는데.. 이렇게 수다 떨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났으니 얼마나 좋아? 처음 계획보다 더 좋은 것 같아.”

“고마워, 언니”

“내가 고맙지”


우리는 부산역에서 집으로 가는 지하철에서, 똘이를 데리고 치료 센터로 이동하는 길 위에서, 똘이의 치료 센터 대기실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요즘 나의 근황과 똘이의 치료 진행 상황이라던가, 친구의 직장생활 이야기, 우리가 함께 아는 주변 친구들 이야기라던가... 별 것 아닌 수다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조금씩 숨통이 뚫리는 기분이었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언제든 할 수 있는 ‘별 것 아닌 대화’를 나와 함께 해주기 위해 굳이 먼 길을 달려온 사람의 존재가 중요한 것이다. 그녀가 뚫어준 바늘구멍만 한 숨구멍이 나에겐 산소호흡기 같았음을 알까. 그것이 어찌나 큰 위안이 되었는지.



미세먼지 없이 하늘은 맑고 햇볕은 뜨겁고 주변이 매미 소리로 가득한 날이었다. 새삼 지금이 여름의 한복판이라는 것을 알았다. 계절이 흐르고 있구나. 1년의 반이 지나고 있구나. 나의 시계는 멈춘 것 같았는데 여전히 시간은 흘러 흘러가고 있구나. 지금 이 더위가 절정에 다다를 때쯤 태풍이 오고, 태풍이 지나고 더위가 한 김 식고 나면, 찬바람이 불겠구나. 그러고는 세상이 꽁꽁 얼겠지. 다시 날이 따뜻해지고 뜨거워지고 다음 해의 매미가 허물을 벗고 땅 위로 올라올 때쯤엔 나도 똘이도 한 뼘 성장해 있을 것이다. 지금 나의 갈등과 고뇌도 그때쯤엔 과거가 되어있을 것이다.



뙤약볕 사이 그늘에서 내 팔에 내려앉은 나뭇잎 그림자가 우리 셋째의 손바닥 모양을 닮았다던가, 시답잖은 나의 농담에 “푸핫!”하고 웃음을 터뜨린 친구의 입과 볼 사이 주름에서 우리의 20년 세월이 보였다던가, 시간을 아끼려 종종걸음으로 걷는 친구의 뒷모습에서 그동안 나의 실수로 잃어버린 많은 인연들이 스쳐갔다던가...


그런 사소한 일상의 조각들과 세월의 흔적들, 내가 잊고 지내던 많은 것들이 돌고 돌아 다시 나에게로 돌아온 느낌이었다.


지구 반대편에서도 얼굴 보며 대화가 가능한 시대에 살고 있다. “좀 어떠냐?”는 메시지로도, 안부전화로도 친구의 도리는 충분했다. 나는 그녀에게 ‘미련하다’고 했지만, 그녀가 왜 나에게 와 주었는지 안다. 때로는 가장 비효율적이고 미련해 보이는 방법이 진심을 전달하는데 가장 효과적일 수 있기 때문이리라. 시간, 비용, 체력을 써가며 오직 나를 만나러 먼 길을 와주었다는 그 행위 자체가, 그 어떤 미사여구보다 ‘너는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고 나는 너를 걱정하고 있으며 네가 행복해지길 바란다.’는 메시지를 가장 온전하고 정확하게 전달해 줄 수 있기에.


이렇게 아날로그적이고 비효율적인 방법의 위로는 내 인생에 깊이 남을 선물이 되었다. 나는 평생 그녀의 아군이 될 것임을, 그녀가 그래주었던 것처럼 네가 힘들 때 결코 너를 혼자 두지 않는 친구가 될 것이라 다짐했다.


사람과의 인연은 우연을 통해 생겨나지만 관계를 지속시키는 힘, 관계를 굳건하게 다지는 힘은 정성과 노력에서 온다.


언젠가 나도 누군가에게 다시 웃을 수 있는 여유를, 다시 두 발을 굳건히 디디고 일어설 용기를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누군가에게 다시 한번 삶을 긍정할 수 있는 이유가 되고 싶다. 그날 그녀가 내게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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