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글이 쓰고 싶어졌다. 써보려니 자신이 없었다. 문학소년도 아니었고 국어를 잘하던 학생도 아니었다. 그래도 다른 사람이 쓰면 나도 쓸 수 있겠지 하는 무식한 자신감 하나는 있었다. 단순하게 생각했다. '한글을 쓸 수 있으니 단어 조합만 잘하면 되겠지라고...'
부족한 실력을 메꾸기 위해 글쓰기 책도 읽었다. 좋아하는 책을 필사도 했다. 그러면서 브런치 작가가 되었고 내가 일하는 곳의 사실을 소재로 연재해 전자책도 나왔다. 한 편의 글을 올리기 위해 수십 번 퇴고를 했다.
가끔은 없는 감수성을 끓어 올려 시도 쓴다. 여전히 어렵고 또 어렵다.
그럴 때 체계적으로 국문학 공부를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직장생활을 하는 나로서는 공부에 시간적 한계가 있었다. 그렇다 보니 사이버 대학이나 방송통신대를 고민했다. 사이버 대학은 왠지 낯설었고 방통대는 낯익었다. 방통대에 관해 아는 건 없지만 주변에서 자주 들었다. 그래서 한국방송통신대 국어국문학과에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4년제 대학을 졸업하면 신입이 아니라 편입으로 공부를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한국방송통신대 국어국문학과 3학년 편입생이 되었다. 내 나이 마흔여덟에 대학생이 되었다. 조금은 신기하기도 했다.
3월 1일에 광주전남지역 본부에서 오리엔테이션이 있었다. 대다수가 사회생활 하는 점을 고려해 학교 관련 행사는 휴일에 했다. 방통대에 관해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기에 당연히 참석을 했다. 한 시간 운전을 해 도착하니 강의실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다. 집행부 선배님들과 신입생 그리고 나 같은 편입생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정말 다양했다. 교도관을 하고 있는 나는 강제적으로 모인 다양한 사람들은 많이 봐왔지만 공부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모인 다양한 사람들은 거의 처음 봤다.
스무 살의 파릇파릇한 청년부터 팔십 살의 머리 희끗희끗한 어르신까지 있었다. 간단하게 자기소개 시간이 되었다. 회사에서 건배사를 많이 해본 나는 긴장감보다 흥미로움이 앞섰다.
'저들은 어떤 이유에서 돈도 되지 않을 이 공부를 하러 왔을까?'
스물한 살의 앳된 여자 신입생은 몸이 안 좋아 수능을 잘 치르지 못해 점수에 맞춰 정규 대학을 들어갔지만 적응을 하지 못하고 자퇴한 후 자기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기 위해 왔다고 했다. 부끄러움을 너무 많이 타 힘들게 몇 마디 하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했다. 다행히 엄마 같은 선배들의 따뜻한 포옹을 받으며 마무리했다. 창밖의 따스한 햇살 보다 내 마음을 더 포근하게 만들었다.
어떤 중년의 아저씨는 고등학교 때 공부를 너무 안 해 대학 문턱도 못 가봐 이렇게라도 대학교를 졸업해 보고 싶다고 했다. 연신 자신의 뒷머리를 긁적이며 졸업을 할지 모르겠다고 애써 웃음 지었다. 방통대 다른 과를 졸업하고 국문학 공부를 하기 위해 또 오신 분도 있었다. 마지막 백발의 최고령 할머니 차례가 되었다.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아버지가 학교를 보내주지 않아 초등학교 밖에 나오지 못했다고 했다. 이런저런 일을 하며 힘들게 살아왔지만 하지 못해 한이 맺힌 공부는 꼭 해보 싶어 꾸준히 공부해 여기까지 왔다고 말씀하셨다. 가슴 한편이 뭉클해졌다. 웃으시면서 한 마디 더 하셨다.
"지금 1학년인데 나이가 많아 죽기 전에 졸업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같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순간 고민이 되었다. 하지만 방정맞은 내 입에서는 '흐흠~ 풉!'이 나와버렸다. 다행히 유머러스하고 멋진 할머니의 재치로 내 웃음은 비웃음이 아니라 애교로 넘겨졌다.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참 존경스럽고 멋진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았다. 이들과 함께라면 더 열심히 공부할 수 있겠구나라는 열정이 가슴에 불을 지폈다.
그렇게 오리엔테이션은 끝나고 한 달 후 3월 31일에는 출석 수업이 있었다. 방송통신대학이라 대부분의 수업은 동영상 강의로 이루어지지만 매 학기에 한 번은 출석 수업이 있었다. 중간고사를 대체하는 의미도 있으면서 대면 공부를 하고 과제물(리포트)을 내주었다. 출석 수업도 휴일에 했다. 아침 9시부터 저녁 7시까지 했다. 완전 강행군이었다. 운동으로 다져진 체력을 가진 나도 긴 시간이 쉽지 않았다.
하루 종일 수업을 하면서 가장 놀랬던 점이 있었다. 대부분 연령이 많으셨는데 누구 하나 졸거나 딴청 피우지 않았다. 뒷자리에 앉아있던 나는 교수님들의 국문학 강의보다 학생들의 열정이 더 깊게 내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무엇이 저들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국문학이 돈이 되는 자격증을 따는 학문도 아니고, 취업을 위한 공부도 아닐 텐데 무엇이 저들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그들을 보면서 '존경'이란 말은 이럴 때 사용 한다는 걸 알았다. 마지막 수업을 끝내며 교수님도 한 말씀하셨다.
'여러분 같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인류가 발전을 합니다. 살면서 굳이 필요하지도 않은 공부를 한다고 이 좋은 봄날 이곳에서 졸음과 싸우고, 딱딱해진 엉덩이를 비비며 공부를 하시는 여러분들의 열정 때문에 인류가 발전을 합니다.'
그 말이 다른 일로도 바쁜데 괜히 방통대 공부를 시작했나 하며 흔들리는 내 마음을 다시 잡아 주었다.
출석 수업 때 받은 리포트를 어제 마무리하고 학교 홈페이지에 등록했다. 대략 10일 동안 단편소설 쓰랴, 향가에 대해 조사하랴, 고전소설을 읽고 감상문 쓰랴 정신없었지만 한편으론 후련하고 한편으론 뿌듯하다.
이제 다시 동영상 강의를 듣고 6월 기말고사 준비를 해야겠지만 방통대 강의실에서 열정 넘치던 학우들을 생각하면 힘이 불끈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