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싼 즐거움, 값비싼 대가
술을 마시는 나에게 몸이 보내는 신호를 너무 간과하고 살고 있다. 속쓰림, 위·장 트러블, 두통, 무기력, 손끝 저림 등등 모든 증상은 고작 한 캔의 술을 마신 다음 날 나타나는 현상들이다. 편의점에서 파는 근본도 모를 4천 원짜리 하이볼 한 캔이 준 즐거움은 아주 잠깐이었는데, 내 건강과 하루의 컨디션이 나빠진 걸 계산하면 몇 십만 원 이상은 손해 본 기분이다. 지금 이 시간이 오전 8시 30분인데 벌써 화장실을 세 번 다녀왔다. 하이볼 제조업자가 싸구려 재료로만 조합한 것이 아닐까 하는 심각하면서도 합리적인 의심을 해본다. 내 몸이 증거라면 증거다.
아침 알람에 눈이 잘 떠지지 않는다. 몸이 무겁다. 이미 몸이 무겁다고 느끼는 건 온몸의 세포들 또한 평소와 달리 힘들다는 뜻이다. 알코올과 정체 모를 재료의 조합으로 세포와 조직들이 공격당했을 것이다. 뇌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뇌가 ‘썩는다, 녹는다’는 공포스럽고 끔찍한 이야기를 흔히 한다. 뇌가 수행하는 고차원적이고 종합적이며 중대한 작업들에 영향을 주는 것은 결국 우리 몸이 받아들이는 신호들이다. 시각적 자극이나 후각적 충격도 있겠지만, 나쁜 음식과 각종 화합물질(약물, 알코올 포함)이 주는 영향이 가장 클 것이다. 기억력이 손상되고 나빠지는 것은 이미 한참 전에 시작됐다. 내 몸과의 캠페인을 지속해야 하는 이유다. 요즘은 공부를 해도 퇴화가 점점 진행된다는 게 느껴진다. 단시간 암기는 어떻게든 되지만 책을 덮고 나면 금세 휘발된다. 잠을 자더라도 숙면하지 못했음을 분명히 느낀다. 뇌는 알코올 침범에 어지러워져 지휘계통에 오류가 생기고 사고 예방에도 취약해진다.
최근 국회와 정부 등 우리 사회에서 술이 가진 알코올의 문제점을 깊이 논의하고 있다는 점은 대단히 반가운 소식이다. 알코올은 발암물질을 만들고, 이 발암물질은 인체 점막이나 조직에 쉽게 침투해 암을 초래한다고 한다. 게다가 간이 알코올을 분해하며 생성하는 독성 물질인 아세트알데하이드 역시 암을 일으키는 또 다른 원인이다. 그래서 정부는 국회의 지적과 사회적 요구에 따라 술병이나 광고 경고 문구부터 문제의식을 담으려는 듯하다. 현재 고지되는 ‘지나친 음주는…’ 혹은 ‘과도한 음주는…’으로 시작하는 문구만으로는 술 그 자체의 위험성이 제대로 인식되기 어렵다. 머지않아 이렇게 바뀔 거라는 뉴스가 들리리라 믿는다.
‘음주는 뇌졸중, 기억력 손상 및 치매를 유발합니다. 임신 중 음주는 기형아 출생 위험을 높입니다. 또한 알코올 중독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나 역시 내 안에서 싸움을 이어가야 한다. 몸과의 대화에서도 솔직해지자. 술 한잔이 주는 즐거움은 가짜 위안이다. 결국 스스로에게 계속 캠페인을 해야 한다.
이건 기호식품이 아니라 발암물질이라고. 담배를 끊듯 술도 끊어야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