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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우 Apr 29. 2022

무엇을 위한 것인가

"수레바퀴 아래서,헤르만 헤세,민음사"를 읽고

한 생명이 태어나 스스로 무엇인가를 결정할 수 있는 어른이 되기까지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들은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주고받으며 산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별 탈 없이 건너온 누군가가 있다면 우리는 그가 성공한 것이라고 해야 할까. 여기서 '별 탈 없이'라는 말은 죽지 않고 살아 있음을 말한다. 친구들과의 문제로 혹은 부모와 생기는 갈등 때문에 너무나도 많은 청소년들이 스스로 목숨을 버렸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를 읽으며 예나 지금이나 한 아이가 성장해 가는 모습은 왜 조금도 달라지지 않고 여전한 것인가, 라는 생각에 한숨이 나왔다.


유능한 아이를 바라보는 어른들의 시선은 한결같다. 어떻게 하면 그 아이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까 보다는 어떻게 하면 그 아이를 더 빛나게 하고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직업을 갖게 할까, 하는 것들이다.


이 작품에 나오는 주인공 기벤라트 또한 다르지 않았다. 온순하고 순종적이고 공명심이 강한 그 아이를 어른들은 자신들의 기대에 부흥하도록 만드는데 열심이었다. 기벤라트가 자신들의 기대에 부흥하는 동안에는 너그럽고 사랑스럽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막상 그 기대에 어긋나자 무관심해졌으며 증오하기까지 했다.


어른의 기대에 미칠만한 역량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기벤라트는 그 심리적 압박을 이겨내지 못했다. 결국 신경 쇠약에 걸리고 만다. 교장은 요양하라는 명목으로 기벤라트를 휴학시켰지만 결국 그것 학교 생활에 종지부를 찍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고향으로 돌아갔을 때 아버지나 그동안 큰 기대를 걸고 아꼈던 중등학교 선생들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 기벤라트는 낙오자가 된 슬픔에 빠져 죽음을 생각한다.


살면서 진정으로 나를 이해하고 내 마음을 위로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삶의 희망을 놓지 않을 것이다. 자살하는 사람들의 심정이 어떤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세상 누구에게도 안착하지 못하고 겉돌기만 하는 존재라고 느낀다면 버티기가 힘들 것 같다. 기벤라트가 느꼈을 쓰라린 절망감과 패배감만으로도 무척 마음아팠다.


삶과 죽음은 늘 하나라고 한다. 삶의 옆에 죽음이 따라다닌다면 굳이 왜 이렇게 발버둥 치며 나중을 위해 현재의 행복을 미뤄야 하는 것일까.


헤르만 헤세는 자신이 청소년기에 우울증을 앓았고 자살을 시도했던 경험이 있었으며 이 작품에 나오는 한스 기벤라트는 헤세 자신의 분신이기도 하다고 스스로 말한다. 그렇다면 헤세가 기벤라트를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인생이라는 수레는 무거운 짐을 싣고 갈 때도 있고 비어 가벼울 때도 있을 것이다. 수레에 실은 짐의 무게는 우리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 무엇을 보고 어디로 가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짐의 양과 짐의 종류를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왜 감당할 수 없는 짐을 싣고 쉽게 도착할 수 없는 먼 길을 돌고 돌아 힘겨운 걸음을 옮기게 하는 것인가. 왜 아이들에게 그런 삶을 강요하는 것인가.


아이들의 보호자로서 아이들의 조력자로서 우리는 그들이 진정으로 느끼고 누려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수레를 끌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자신을 압사시킬 만한 거대한 바퀴를 굴리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인생의 수레바퀴는 자신이 감당할 크기일 때만 탈 없이 굴러간다. 그 진리를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런 말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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