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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ane Lee Jun 03. 2021

어느 날, 빵을 팔게 되었습니다 ep04

추운데 더웠던 겨울

드디어 계약을 완료하고 인테리어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인테리어 공사는 다행히도 예전에 알고 계시던 분이 있어서 

콘셉트에 대한 설명과 예산을 바탕으로 구현할 수 있는 범위 내애서 

최대한 유사하게 그림을 그릴 수 있었습니다.


물론 겨울에 인테리어 공사를 하다 보니 바닥이 잘 굳지 않아 생각보다 시간이 지체되기도 하고,

밤새 틀어 놓은 열풍기도 중간중간 확인하러 나가고, 자재도 함께 나르고 하다 보니

초보 사업자에게 겨울은 참 덥게 느껴졌습니다. 


누군가 계획을 짜는 건 계획대로 안되긴 때문이라고 얘기를 하더군요.

저도 타임라인을 짜서 간판 제작, 제품 포장용지 구입, 각종 소모품 구입 등을 진행했는데 

이 전까지 방산시장이란 곳이 있는 줄도 몰랐지만, 

이제는 방산시장에 어디서 멀 사야 되는지 알 정도가 되었네요. 

그렇게 하나씩 모르는 것을 찾아가면서, 배우면서 하다 보니 정말 계획된 시간에 무언가를 

끝낸다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구나 새삼 느꼈습니다.

손으로 작업했던 안내문과 빵 나오는 시간 안내판

매장을 오픈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자잘하게 할 일도 참 많습니다. 

요즘은 창업에 관련된 책들이 워낙 많이 나와서 순차적으로 잘 설명되어 있긴 하지만,

개인 매장을 오픈하려면 크게는 브랜드 콘셉트를 정하고 

네이밍, 인테리어 콘셉트, 제품 레시피, 재료 사입처 확보, 판매 단가, 포장 방식, 판매 방식, 

컵, 포장 용기, 포스기 설치 (카드사 신고), 오븐, 냉장고, 핫 디스펜서 등 각종 기기 구입 등 

글로 적혀 있는 것들이 실제로 하다 보면 어느덧 체력은 방전되고 집에 와서 쓰러질 시간이 되더군요.


제품 개발은 별도의 작업장을 통해서 수시로 제빵사님과 진행상황을 확인하는 정도만 진행했습니다. 

실력이 좋으신 분이다 보니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아도 정말 금방금방 제품을 만드시더군요. 

만약 제품 개발에서 막혔으면 멘붕에 빠졌을 텐데 그래도 쉽게 풀려서 다행이었습니다. 

나중에 다른 분과 제품 개발을 진행했었는데 참.... 아직도.... 할말하않입니다. 


공사를 시작하고 근 한 달 만에 드디어 주방집기들이 들어왔습니다. 

2매 3단짜리 오븐과 발효기, 테이블 냉장고 등이 들어오니 이제 꽤나 빵 만드는 곳 같았고,

매장 장식 및 디피를 위해 주문했던 나무 서랍들과 유리들이 채워지면서 이제 진짜 매장이 되어갔죠.

하나하나씩 공간이 채워지는 기쁨은 아직도 매장을 오픈할 때마다 즐거움을 느끼는 부분 중의 하나입니다.


이제 하드웨어는 다 채워졌고, 제빵사님과 기계 작동 테스트 겸 메뉴 샘플 테스트를 진행했습니다.

일주일의 테스트 기간 동안 기계를 최대로 돌려보니 역시나 문제가 나오더군요.

중고 오븐을 구입하여서 오븐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발효기 역시 일정한 온도가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팬 위치도 다시 고쳐야 했고, 에어컨도 말썽이고, 

수리업체를 찾아 고치고, 다시 테스트하고 역시 쉽게 지나가는 게 없더군요.



기계도 고치고 계속 테스트도 진행하다 보니 일주일이 금세 지나갔습니다.

일단 오픈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제품 수리들은 끝냈고, 

부모님과 가까운 지인들을 불러 제품 시연 및 판매 테스트를 진행하였습니다.

테스트이긴 했지만 그래도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제 매장에서 제 제품을 주는 가장 근사한 날이었죠.


가족이고 지인이었지만, 그래도 제품에 대한 만족도는 높았습니다.

지금까지 먹었던 빵들과 비교해 뒤처지지 않는 맛, 그리고 특이한 사이즈.

제가 의도했던 것들을 설명하지 않아도 제품만으로도 충분한 설명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2012년 2월 한 직장인의 느닷없는 첫 번째 베이커리 매장이 오픈하게 되었습니다.

돌이켜보면 무모할 정도로 빠르게 진행하기도 했지만, 

또 지금 생각해보면 일이 될 때는 큰 고민 없이 빠르게 진행될 때 일이 더 잘 진행되는 것 같습니다.


그때는 매장 오픈만 하면 일이 다 끝나는 줄 알았지 오픈하기 전까지가 가장 행복하고,

진짜 일은 매장을 오픈하고 나서부터인걸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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