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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결 Nov 19. 2023

생강차는 자신의 몫을 다했습니다

감사한다는 것의 의미


그것으로 되었어요. 그것으로 되었습니다. 아침 기차 안에서 모두 마셔버린 생강차가 당신을 걱정스럽게 한다고요? 아닙니다. 생강차는 자신의 몫을 다했습니다. 보온병에 든 그것은 오늘 하루를 위해 마련된 것이지만 이른 아침 당신의 육체와 정신을 촉촉하게 채워주지 않았나요? 당신은 그 차를 마시지 않고 세 시간이라는 긴 여정을 편히 갈 수 있었을까요?


새벽 늦게 잠들어 해가 뜨지도 않은 이른 새벽에 집 밖을 나온 당신에게는 심한 두통과 구역질이 찾아왔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어제 오후 삼킨 변비약 세알 때문인지도 모르지요. 어찌 되었든 당신은 담배 한 가치 피우는 것조차 어려워했고 커피 한잔 사기 위해 잠시 발걸음을 멈추는 것조차 포기했습니다. 그만큼 당신의 영혼은 지상에 존재한다고 보기 어려울 만큼 위태로웠습니다. 그 순간 당신은 생각했지요. 심한 두통이나 감기 같은 것보다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이 이 울렁거림이라는 것을. 이전에도 알고는 있었으나 이것은 하늘에 대고 되돌릴 수 없는 약속을 하게 만들 만큼 고통스럽고 벗어나고 싶은 아픔입니다. 뱃속의 모든 장기 안에 아주 딱딱하고 맛이 없는 아몬드 조각들이 흔들려 상처를 내고 있는 것만 같았지요.


어찌 되었든 당신은 운이 좋게도 미리 도착한 기차에 올라타 곧바로 볼일을 보았습니다.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복통과 어지럼증으로 고통받았지만 한 모금의 생강차로 약간의 활기를 찾습니다. 편하게 독서를 이어가나 싶었는데 또다시 찾아온 불쾌한 울렁거림이 당신을 괴롭힙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모든 것을 비워냅니다. 누군가 정성으로 청소를 해둔 깨끗한 새벽기차를 탄 것에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비로소 주변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당신은 따뜻한 카푸치노 한잔을 주문하고 읽다만 싯다르타를 계속해서 읽어 내려갑니다. 빠져드는 문장들이 심장을 뛰게 합니다. 하지만 허기는 어쩔 수가 없네요. 생강차 두 모금을 마십니다. 적당한 온도와 담백한 그 맛이 일품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따뜻하게 데워지는 머리와 배는 당신께 감사하다 말하는 듯합니다. 그렇게 몇 모금 더 마십니다. 그러다 보온병이 비어 가는 것을 깨닫고는 잠시 불안해집니다. ’ 오늘 하루 마실 양을 한 번에 마셔버렸잖아.‘ 하지만 당신의 또 다른 자아는 당신께  말합니다. ‘이것으로 되었다. 오늘 하루 차가운 물을 마시게 되더라도 이 기막힌 따스함이 나를 살려주었으니 이 차는 최고의 역할을 했다.’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적절한 매콤함과 허기를 채우는 특유의 맛 그리고 온몸의 긴장을 풀어준 그 따스함. 환상적인 아침을 이끌어준 그것에 대해 생각하다 보다 당신은 어느덧 목적지 부근에 다 달았습니다. 남쪽 풍경과는 사뭇 다른 이곳은 구름이 가득합니다. 여전히 새벽녘과 같은 어스름한 공기로 당신을 맞아주지만 왠지 이곳이 좋아집니다. 시작이 좋네요. 결국 생강차 덕분이 아니겠습니까. 당신의 육체를 따스히 채워 기운을 더해준 명약에 감사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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