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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딕 당구장[4]

ep_4

by 섭이씨 Jan 11.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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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구장은 2층이고 화장실은 베란다 쪽 문을 열면 있다.
참 다행한 일이다. 현석이의 말을 빌자면 화장실이 밖에 있으면 화장실 가는 척하고 도망가는 놈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러하니 화장실이 밖에 있는 경쟁당구장보다는 적어도 나는 도망가는 놈들 숫자만큼 벌고 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라고 생각했지만,

뒤쪽으로 산비탈에 있는 이 건물은 당구장 2층 베란다와 산동네에서 내려오는 골목길이 짧은 철제다리로 바로 연결이 되어 있어서,

산동네에서 골목길을 내려오는 당구장 손님은 비탈을 돌아 내려갔다 건물 1층부터 계단을 올라오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었지만,

화장실 갔다가 카운터를 안 거치고 인근 야산으로 도주하려는 공짜 손님들에게도 유용한 역할을 해줄 것 같았다.

그래도 운치 있게 그 철제다리를 구름다리라 부르기로 했다.


  당구대는 총 여섯 개다.

어느 것이 낫다 할 것도 없었지만 세 개는 정도가 심해서 공을 굴리면 손질 안 한 잔디밭을 구르는 골프공처럼 갈지자를 그렸다. 특히 화장실 쪽의 당구대는 통째로 대형 재떨이로 사용했는지 담배빵에다가 찢어진 곳도 많아 고물상에서 막 주워다 놓은 것 같았다.

당구 큐대는 태반이 머리 부분이 떨어져 나갔거나 다 닳아 있었고, 허리를 검정테이프로 동여맨 큐대도 더러 있었다. 검정테이프를 떼니 휘청하면서 힘없이 두 개로 나뉘었다. 어쩌면 당구장 전체가 고물상에서 한 세트 맞춰놓은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카운터에 있는 컴퓨터를 켜보니 웨엥~ 하고 하이새시를 전기톱으로 자르는 소리가 났다.
 
  당구 재료상을 불러 당구대 세 개 천갈이를 하고 큐대도 십수 개를 중고로 들였다. 컴퓨터는 두호가 인근 컴퓨터 부품상에서 쿨링팬을 사 와서 갈아놓으니 아기 숨소리처럼 조용해졌다. 오! 유능한 전직 A/S 맨.
좋게 말해서 엔틱스러운 전축 장식장안에 전축이 있었다. LP판을 올리는 구형인데 바늘이 없다. 해바라기, 들국화 LP판이 몇 장 있었지만, 그냥 라디오로 쓰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예전 가수 그룹은 꽃 이름이 많다.


  출입문에는 조그만 종을 하나 달아놓았다. 이제 손님이 문을 열면 ‘째랭째랭’ 하는 경쾌한 종소리가 날 것이다. 컴퓨터를 부팅시키고 당구장 관리 프로그램을 켜놓고 보니 제법 장사 준비가 9부 능선쯤에는 올라온 느낌이 든다.


  “두호야 니 손님인 것처럼 입구에서 한번 들어서 봐라”


두호가 출입문 밖을 나갔다가 째랭째랭~ 문을 열고 들어온다.


  “어서 오십시오 손님... 두호야 시작 벨도 한번 눌러봐 봐”


띵똥~ 관리프로그램이 카운터를 시작한다.
이제 손님을 들여도 될 것 같다.
 


  엄마랑 저녁을 먹는 것이 제법 오랜만이다. 엄마는 미역국에 선지를 넣으셨는데, 난 첨에 이게 뭔지 몰랐다. 그냥 꺼먼 두부가 있는가 보다 했는데 -하기야 미역국에 두부도 안 어울리긴 하다- 현석이가 밤새 우리 집에서 술 마시고, 담날 엄마가 주신 미역국 먹으며

‘어머니, 미역국에 선지가 있네예, 참 맛있네예.’ 해서 알았다. 석이 놈은 말을 해도 참 살갑게 한다 싶었다.
여하튼 이 선지를 숟가락으로 잘게 끊어가며 타이밍을 보는데.... 참 입이 안 떨어지는 것이다. 내일이나 모레는 개업을 할 것이니 오늘쯤엔 엄마한테 당구장 한다는 말을 해야 하는데 말이다.


  “니 요새 뭐 하노? 공부하러 댕기나?”


엄마가 마침 서두를 꺼낸다. 외려 잘 됐다.


  “아.. 안 그래도 나도 내 사업 한번 해 볼라꼬”
  “머 사업? 뭐 할라카는데? 학원 댕길끼라 안 했나? 학원 차릴라꼬?”
  “아. 사업이 아니고 친구가 당구장 한 대서 내는 과외 좀 하면서 같이 투자 좀 할라꼬.”.
  “당구장? 그기 괜찮다더나? 내사 모르겠다. 니가 잘 알아서 해라. 근데 친구 누구?”
  “아, 두호. 갸가 당구 잘 치거든”


백 프로 진실을 말하지는 않았지만, 이 정도라도 말해놓고 나니 맘이 한결 편해진다.
 


  개업일. 날씨가 좀 흐리다.
건물주가 소개해 준 간판집 사장이 일찍부터 시다 한 명을 데리고 간판을 달고 있다. 간판은 천갈이만 했다. 간판이 걸리고 깔끔한 남색 바탕에 <모비딕 당구장>이라는 흰색 상호가 선명하다. 흐뭇하다. 모비딕은 유명한 미국 고전소설 ‘백경’에 나오는 흰고래 이름이다. 당구장엔 흰 당구공도 있고, 또한 내가 국문과 출신이니 안팎으로 당구장 이름으로 손색없기도 하다.


  간판 위로 대형 현수막을 걸었다. 개업을 알리는 유일한 수단이다. 걸린 현수막을 살펴보는데. ‘축 개업 모비빅 당구장’이라고 ‘모비딕’이 ‘모비빅’으로 오타가 나 있다.
  ‘어, 저거 오타 같은데...!’
내 목소리를 간판집 사장은 못 들었는지 트럭에 장비들을 실으며 갈 채비를 하고 있다.
뭐, 그냥 두기로 했다. 며칠 있다가 내릴 현수막이고, 간판집 사장이 서비스라 그리 생색을 냈었는데 겸연쩍을까 봐.


  문방구서 천 원짜리 노란색 돼지저금통을 사서는 카운터에 놓고 고사도 지냈다. 잘 되게 해 달라고 동전 넣는 곳에 만 원짜리 한 장을 꽂고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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