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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딕 당구장[5]

ep_5

by 섭이씨 Jan 11.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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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소를 끝내고 손님을 기다린다. 출입문에 달아놓은 종이 쉼 없이 울려 주기를....


  정오를 조금 넘긴 시각 드디어 첫 손님이 들어왔다. 째랭째랭 종소리는 나지 않았다. 출입문이 아닌 베란다 문으로 들어왔는데 건물 뒤쪽 구름다리를 타고 넘어오는 모양이다.

여하튼 생애 첫 손님. 낯설고도 감격스러운 순간이다. 첫 손님은 산비탈 쪽에 있는 고등학교 학생들이다.


‘어서 오세요’

90도 인사를 했다. 그 애들은 5도 정도로 고개를 까닥이며 맞인사를 했다.
애들이 담배를 꺼내 핀다. 현석이처럼

‘야. 고삐리 때는 숨어서 피는 기 미덕이다. 어데 교복 입고 담배 피노. 저게 화장실 가서 피라.’

라는 등의 말은 아예 머릿속에 정렬되지도 않았다. PC방이야 몰라도 당구장은 담배 피는 재미지. 암. 고삐리가 편히 담배 필 데가 어데 있겠노 고작 당구장이지. 하는 것이 방금 새로 생긴 내 지론이었다.


  첫 손님이 가고 오후 내 손님이 없다가 초저녁이 되자 베란다 쪽 문으로 사십 후반쯤 되어 보이는 손님 다섯이 들어선다. 여기 손님들은 주로 산동네 사람들인가 보다.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로 맞이했다. 일행 중 한 명이 누구냐는 듯이 빤히 바라본다.


  “아 저기, 오늘부터 새로 시작한....”
  “어 그래요? 우째 문을 열어놨다 했더니.... 젊은 사장님이네. 자주 보입시다.”
  “넵. 잘 부탁드립니다”


재차 고개 숙여 인사했다. 원래 이 집의 단골이었나 보다. 두 명은 큐대를 잡고 나머지는 테이블에 앉아 화투를 달라고 한다.
화투... 예? 하니, 나랑 인사한 아저씨가 전축 장식장 아래 서랍에서 꺼내어 간다.
다시 오더니 전축 장식장 아래 서랍 위에 개어져 있던 파란색 작은 담요를 꺼내어 간다. 아하.... 저런 시스템이 있었네. 여하튼 손님 덕에 화투 한 모 건졌네 싶다.
또 뭐가 있나 서랍을 열어보니 포커 카드도 한 벌 있다.


  당구 치던 둘은 30분쯤 되니 큐대를 내려놓는다. 카드를 꺼내 가더니 이번엔 다섯 명이서 왁자지껄하며 훌라판을 벌인다.
그 손님들은 세 시간쯤 있다가 일어섰다. 그리고 만원을 건넨다. 잔돈을 어떻게 해야 할까 잠시 망설이니, 그렇게 받으면 된단다. 오늘은 딱히 딴사람이 없어서 좀 작단다. 말하자면 주는 대로 받으라. 당구비는 기본 삼천 원이라 치고, 투전판 ‘대라비’가 나머지 계산인가 보다. 투자 없이 칠천 원을 벌은 셈이다.  
 


  개업한 지 일주일쯤 지났나? 생각보다, 훨씬, 손님이 없었다. 나는 사막에서 길을 잃은 여행객처럼 지치고 의욕을 잃어갔다. 소파에서 점점 힘없이 미끄러지며 고쳐 앉기를 반복했다. 두호 녀석이 일어서서 연습구라도 딱딱 소리 나게 쳐주면 좋으련만 웬일로 책 읽는다며 무협지를 빌려다가 반나절 내내 독서삼매경에 빠져있다. 뭐든 공짜는 금방 싫증 나는 모양이다.

적막이란 놈이 가게 문 열 때 스르륵 같이 들어오더니 이리 누울까 저리 누울까 눈치를 보다가 당구장 바닥에 큰 대자로 드러누웠다.  


  ‘째랭째랭~’

출입구 위에 달아놓은 작은 종이 울리며 문이 열린다. 적막이 놀란 듯이 다리를 오므리더니 구석으로 몸을 말아 세운다. 어깨에 제법 큰 가방을 메고 있는 40대 초반의 남자가 들어선다.


  “어서 오십시오.”


손님이 당구장을 휙 둘러보다가 나한테서 시선이 멈춘다. 나는 고개를 외로 꼬고 뒷머리를 긁었다. 손님이 당구장을 둘러볼 때마다 생긴 버릇이다. 너무 좋은 인테리어는 오히려 당구 집중에 방해가 된다는 걸 저 손님이 알아주길 바라면서.


  “저기, 혼자 오셨어예?”
  “아예, 혼자 왔지라.”


아, 전라도다. 나는 전라도 사람을 좋아한다. 그 사투리가 정감 있다.


  “아. 예 손님. 공 드리까예?”
  “사장님이시오?”
  “네 지가 뭐, 그렇습니다”


음료수를 가져다 공손히 건네 놓았다.


  “어따.... 젊은 사장님 인상 조쿠마이라, 지금 안 바쁘모 나하고 한큐 칠라요?”


소파에 앉아 무협지에 빠져있는 두호를 힐끗 봤다. 우리 당구장은 혼자 온 손님을 위해 대기조 시스템까지 완비되어 있다는 것을 또한 알아줬으면.


  “몇이나 치시는데예?”
  “내는 500이오.”
  “와우.... 잘됐네요. 저 친구랑 치시죠. 저 친구가 300입니더.”


전라도 손님이 큐대를 이것저것 만져본다.


  “이거, 큐대가 영 파이네. 사장님 당구장 혹시 처음 허시오?”


이거 송구하다. 중고 큐대나 놓고 장사하는 상도의 부족한 신참 사장에게 고수 손님이 와서 지적질을 해주시니 송구할밖에. 전라도 손님이 ‘야스리’를 달라더니 예사롭지 않은 손놀림으로 큐대 손질을 한다. 팔뚝에 그려진 한 송이 장미 문신이 발달한 전완근과 함께 움찔거린다.
그날 그 전라도는 반나절 가량을 놀다 갔다. 당구도 잘 치고 매너도 좋았다. 당구비도 다 냈다. 두호랑 게임, 나랑 게임에서 더러 이겼었는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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