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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드즈모임 Mar 22. 2024

주민과 함께 예술로 지역을 바꾸려면?

주민참여형 공공미술에 대한 토론


   주민참여형 공공미술이 겪는 딜레마가 있다.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 주민들이 참여해야 하는 동시에 높은 퀄리티의 결과물을 기대하는 것. 어쩌면 주민들의 의견이 반영되는 정도와 작품의 예술성은 반비례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예술성이 높다고 해서 모두 좋은 작품이라는 건 아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이전에 주민들이 예술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다양해지고 이를 감각할 수 있는 교육이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또한 ‘마을미술 프로젝트’의 경우 신청 단계에서 지자체와 단체(지역문화재단이나 관련 사회적 기업 등)가 방향성을 설계하는데, 결국 이 부분에서 실질적으로 주민들이 주체로 참여하기보다 수단으로 동원되기 쉽다. 그래서 주민과 예술가 사이에서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도록 돕는 매개자 역할이 필요한데, 역시 매개자를 잘 활용하기 위해서는 주민들이 공동체의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하기 위한 역량과 예술에 대한 이해가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주민참여형 공공미술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스드즈모임 멤버들과 함께 토론을 진행했다. 사전에 고민을 풍부하게 하기 위한 몇 가지 질문을 던졌고, 각자 조사해 온 자료를 바탕으로 의견을 나눈 후 그 내용을 아래와 같이 정리했다.




Q. ‘마을미술 프로젝트’와 같은 주민참여형 공공미술을 살펴보면서 인상적인 점이 있었다면 무엇인가요?


국인: 국내 사례는 아쉬운 점이 많이 느껴지기도 하고 주민 참여의 기준을 어떻게 봐야 할까에 대한 고민이 들어서 해외사례를 찾아봤는데요. 그중에서도 프랑스의 ‘새로운 주문자’ 공공미술 프로젝트는 주민들이 클라이언트 즉 주문자가 되어서 우리의 의도를 잘 실현해 줄 수 있는 매개자를 선정하고, 매개자를 통해 예술가를 섭외하고 소통하며 프로젝트를 진행하더라고요. 우리가 ‘주민 참여’라고 하면 창작과 감독에 깊이 관여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데, 이러한 프로젝트의 과정과 결과물이 대중에게 확산되지 못하고 사업기간 이후에 지속가능하지 못하는 점의 문제와도 결국 연결되어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서 ‘새로운 주문자’ 프로젝트처럼 창작은 온전히 예술가에게 맡기되 주민들의 요구가 잘 실현될 수 있도록 주문자와 매개자의 역할을 나누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해명: 강릉 경포초등학교 인근에 터널이 있는데, 그 안에는 학생들이 그린 그림으로 만든 타일들이 설치돼 있거든요. 간단하게 보면 그것도 공공미술이죠. 아마 미술수업 활동으로 만든 그림일 텐데 자세히 보면 귀여워요. 이러한 경험이 어떤 가치가 있는가를 고민해 봤을 때, 주민들의 다양한 문화 향유 프로그램 참여가 결국 ‘주문자’로 나아갈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다시 말해 앞서 이야기한 경험이 쌓여야 지역이 특정한 합의를 도출하고 공공미술을 ‘주문’할 수 있는 단계로 넘어갈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국인: 예술적 경험이 어렸을 때부터 충분히 이뤄지기 어려운 환경인 것 같아요. 그래서 예술에 대한 인식 자체가 더 멀게 느껴지는 게 아닐까 싶고요. 프랑스 같은 경우도 예전에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주요 과목이 따로 있고 예술은 부가적이었는데, 문화부와 교육부가 긴밀히 협력하면서 문화예술교육을 학교 교과 과정에서 중요하게 다루기 시작했거든요. 특히 파리에서는 작은 아뜰리에에 가서 창작 활동을 해볼 수 있게끔 하는 등 그 지역에 있는 문화 인프라와 연계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도 지역에서 활동하는 작가나 갤러리, 작업실과 연계하는 형태로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Q. 그렇다면 주민참여형 공공미술에서 실질적으로 주민 참여가 가능케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해명: 도시재생 사업을 예로 들면, 주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이 많이 진행되는데 거기에 참여한 주민들이 그 경험을 바탕으로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설계가 부재한 것 같아요. 그냥 키링 만들기, 유리공예품 만들기 등 인기 있는 원데이클래스를 운영하면서 어느 정도 참여자 수가 확보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거죠. 하지만 그렇게 연결된 참여자들 중에서 핵심 멤버 즉 키맨을 발굴하고, 의견이 반영될 수 있는 프로세스 안에서 권한을 부여해 주민들이 주도적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경험을 하면서 의사결정의 경험치들이 쌓인다면,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에도 주민들의 참여를 효과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국인: 수잔 레이시의 ‘새 장르 공공미술’에서 공동체별로 아젠다가 다양하잖아요. 그건 주민들이 직접 세팅한 건지, 아니면 기획자가 어느 정도 세팅을 한 후에 거기에 관심이 있는 주민들을 그룹화한 건지 여쭤보고 싶어요.


주비: 정확지는 않지만 이미 아젠다를 가지고 있는 그룹을 섭외한 걸로 이해했어요. 


국인: 그 부분이 중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게, 우리가 도시재생이나 문화도시, 청년활동 등 여러 파트에서 담론을 수집할 때 해당 고민을 구체적으로 하고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질문하고 단편적인 대답을 듣는 경우가 많잖아요. 가령 “버스가 불편해요”라는 대답도 더 파고들어 보면 내가 도보로 이동 가능한 거리에 즐길 게 없기 때문에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하는 근원적인 결핍이나 문제가 있을 텐데, 표면적인 것들만 수집하게 되면 문제해결이 버스 노선을 개편하는 것에 그치기 십상이죠. 그래서 아젠다를 세팅할 때 좋은 질문을 만들어내는 것 그다음에 해당 아젠다를 갖고 있는 사람들을 찾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주비: 일상에서 활발하게 토론하는 문화도 중요하다는 생각도 들어요. 1981년 미국 뉴욕 연방청사 광장에 설치됐던 공공미술 작품 ‘기울어진 호’를 두고 벌였던 주민들의 논쟁도 꽤나 인상적인데요. 작가 ‘리처드 세라’는 정부를 대표하는 건물 앞에 위압적인 철제 벽을 세움으로써 그곳을 지나다니는 주민들이 정치권력을 직간접적으로 느끼게 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해요. 하지만 당시 작품이 동선을 방해하기도 했고 심미적으로 아름답지도 않았기 때문에 불만을 느끼기 시작한 주민들은 이윽고 광장의 의미와 중요성을 설파하며 공공장소에 설치되는 작품에 주민들의 의견이 적극 반영되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내세워 해당 작품을 철거하자고 주장했습니다. 단순히 작품이 마음에 안 드니까 폐기하자는 게 아니라 그렇다면 이 장소에서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건 무엇인지, 공공미술 작품의 주제를 선정하고 설치되는 과정에서 주민들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도록 어떤 의사결정구조가 이뤄져야 하는지 등등을 토론한 것이죠. 이렇게 생산적인 논의가 없는 상태에서 혹은 논의를 배제한 상태에서 작품을 폐기하고 사업이 없어지는 작금의 상황은 뭐가 됐든 지속성을 담보하지 못하는 악순환을 반복하지 않을까 싶어요. 아무튼 앞서 소개한 사례를 마무리하자면 결국 ‘기울어진 호’ 작품은 철거되었고, 주민들은 광장을 다시 조성했으며 한편으로는 공공미술이 건축물의 장식품이 아닌 대중과 소통해야 한다는 인식으로 바꿔놓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미국 뉴욕 공공미술 작품 <기울어진 호> by Richard Serra


우재: 기본적으로 주민 참여가 어려운 현실은 거시적으로 봤을 때 결국 노동시간이 너무 길어서 여력이 없다는 것인데요. 특히 한국은 세계에서 노동시간이 가장 긴 편인데, 독일이나 이런 나라는 사실 우리나라의 절반 수준의 노동시간을 갖고 있다 보니 그만큼 여력이 많다는 지적이 나와요. 그래서 예전에도 그랬지만 진보 정당에서 매번 문화예술 정책으로 내세우는 공약 1순위가 결국 노동시간과 연계를 해야 된다는 거죠. 노동시간이 줄지 않은 상황에서는 어떤 주민 참여를 내세우더라도 참여하는 사람만 참여하게 돼요. 이러한 문제는 지역에서 상인들이 과대 대표되는 경향으로 나타납니다. 시의원들도 보면 대부분 자영업자 출신이지 직장인 출신이 없어요. 노동자들은 이런 데에 참여할 여력이 없는 거죠. 그러니까 이 문제가 개선되지 않으면 하나의 이해관계자일 뿐인 상인들이 과대 대표되어 결국 주민참여형 프로젝트 결과가 실패로 나올 수밖에 없게 되겠죠.
 

   또한 영국 게이츠헤드(Gateshead) 공공미술 사례를 보면 여기가 폐광 지역이더라고요. 우리도 지금 태백·정선 등의 폐광지역이 있는데 공공미술로 어떻게 풀어볼 수 있을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 게 아쉬워요. 백종원 대표가 지금 예산시장 시즌2로 정선에 가서 상권 살리기를 한다는데, 우리는 계속 그런 식으로 상권에 대한 관점에서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지역을 재생할 때 물론 그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폐광지역에서 활용할 수 있는 자원과 스토리라인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지자체 차원에서도 관심이 부족해서 충분히 해볼 수 있는 걸 하지 못하는 게 안타깝습니다.


영국 게이츠헤드 공공미술 작품 <북쪽의 천사> by Antony Gormley


해명: 그럼 공공미술을 활용한 정선의 지역 재생에 대해서 지자체를 설득할 게 아니라 백종원 대표한테 들고 가는 게 어떨까요. 시장 상권 살리기랑 충분히 연결해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우재: 우리가 문화예술을 문체부 중심으로 사고하는 게 워낙 익숙한데, 사실 민간기업과 연계하는 방식은 미국에서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고 충분히 가능한 모델입니다.


Q. 그렇다면 정부 중심으로 운영되는 지원사업이나 공모사업의 한계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우재: 사업기간이 너무 짧은 것 같아요. 거의 10년을 내다봐야 하는 문제일 수도 있잖아요. 주민들과 신뢰를 쌓는 기간만 생각해도 2년은 턱없이 부족한 것 같은데, 아무래도 정부 집권기간 5년 안에 성과를 내게 하려는 의도가 있지 않을까 싶어요. 영국이나 미국 사례에서도 다 오랜 기간에 걸쳐서 했던 걸 우리는 단기간에 해버리려고 하는데 그럼 될 것도 안 되죠. 사실 우리나라 정책은 대부분 연간 단위로 끊어지는데 항상 지적이 나오는 건 건축과 다르다는 거예요. 건축 같은 경우는 5년 단위로 계획을 세우고 연차별로 시행하는데, 유독 문화예술 분야는 1년 단위로 보고하면서 작품 제작 기간도 덩달아 짧아져서 결과물의 퀄리티가 좋지 않은 경우가 많고요. 정책 입안자 중에서 그런 목소리를 내줄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 것 같아요.


주비: 우리나라 공공미술 프로젝트에서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에 공동체 활성화가 들어있다는 게 문제인 것 같아요. 그러니까 공공미술 하나로 달성해야 될 목표가 너무 많은 거예요. 애초에 공동체가 존재하고 그 공동체가 지역 문제에 관심을 가지면서 이슈파이팅 혹은 대안으로써 공공미술을 활용하는 식의 결합을 해야 되는데 우리는 주민참여형 공공미술을 하려면 공동체를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야 되는 거죠. 게다가 ‘새 장르 공공미술’이라는 건 공공미술이 작가의 개인적인 작품 세계가 아니라 지역 주민들이 공공미술이 설치되는 공공장소의 장소성, 작품의 주제, 기대효과 등에 대해서 충분히 논의하면서 함께 만들어가는 흐름인 건데 우리나라에서는 공동체 활성화도 하고 관광 상품도 만들고 이것저것 좋아 보이는 것들을 한데 다 집어넣으려다 보니 결국 하나도 제대로 하기 어려운 것 같아요.


Q. 공공미술을 통해 공동체의 문제 혹은 지역의 문제를 해소하는 게 근본적으로 가능한 일이라 보시나요?


국인: 저는 문제를 해소하기는 어렵겠지만 어떤 계기들은 만들어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문제를 환기하고 새로운 방식을 통해서 결과물을 만들어보고, 그럼 그 자체로 지역 문제에 대해서 계속 고민을 갖고 지속가능하게 활동할 수 있는 동력으로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비유를 하자면 일종의 연료와 같이 계속 불을 지필 수 있는 장치로 기능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재: 지금 가능한 사람들을 잘 조직하는 방법에도 공공미술이 할 수 있는 역할이 분명히 있을 거라 생각하는데요. 예를 들어 마을 공동체 사업 중에서 마을 신문이나 라디오의 경우, 만드는 과정에서 지역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고 좀 더 다른 시각을 갖게 되는 경우도 많은 것 같아요. 그러니까 주민들이 내가 사는 지역의 주인이라는 걸 인식하는 과정을 심어줄 수 있는 방법적인 측면에서 공공미술도 하나의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국인: 그래서 저는 공공미술의 방향성이 중요한 것 같은데요. 마을 벽화나 이런 것보다는 좀 더 어렵더라도 공동체나 지역의 문제를 들여다보고 예술이라는 방식을 통해서 표현할 수 있도록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원주에도 다양한 아젠다를 고민하고 있는 그룹들이 있는데, 그룹별로 각자의 아젠다를 저마다의 예술적인 방식으로 표현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물론 거기에 필요한 예산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겠죠.



노주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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