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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드즈모임 Jun 25. 2024

‘지역정당’은 진정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지역정당의 가능성과 한계에 대한 토론

거대 양당 체제의 폐해를 극복하고 풀뿌리 민주주의와 지역정치를 강화하는 대안으로 ‘지역정당’이 주목받고 있다. 앞선 글에서 ‘주민의, 주민에 의한, 주민을 위한’ 지역정당의 필요성을 역설한 바 있는데, 관련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스드즈모임 멤버들과 지역정당의 가능성과 한계를 토론했다. 이야기는 총선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지난 4월 23일에 나누었다.




Q. 뉴스를 접하거나 선거에 참여하면서 거대 양당 체제의 문제점을 느낄 때가 있나요? 원주도 갈수록 양당정치가 더 강해지는 거 같은데요. 선택지가 좁아진다는 측면에서, 이런 흐름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궁금해요.


국인: 이번 선거에서 양당제가 특히 강화된 거 같아요. 총선에 참여하면서 고민을 많이 했는데요. 저는 보통 정당을 기준으로 선택하는데, 이번엔 두 후보만 나왔잖아요. 두 후보 모두 내가 지향하는 바를 반영해 주기엔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지역구보다는 오히려 비례대표 정당을 더 비중 있고 폭넓게 고민하지 않았나 싶어요.


주비: 같은 맥락이지만, 지역구 후보 둘 다 저를 대변해 주지 않다 보니 누굴 뽑아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정당을 떠나 이 두 명이 내세운 공약이 너무 개발 중심적이니까 누가 당선 되든 내가 사는 지역구가 크게 바뀔까 싶은 거죠. 반면, 비례대표는 명확하게 내 관점을 대변해 준다고 생각하는 정당이 있어서 사표가 되더라도 찍어야겠다는 신념이 저는 확실했어요.


해명: 양당만 나와서 내가 원하는 당을 선택할 수 없다 보니, 그래도 그 안에서 내가 지향하는 가치에 누가 더 가까운지를 따져서 투표할 수밖에 없었어요. 비례대표도 위성정당이 또 나타나면서 내가 원하는 당이 의석을 잃기도 했고요. 되게 위태롭다고 생각해요. 당세가 줄어들고 입지를 잃어가면 과연 어떤 의제가 살아남을 수 있을지. 결국 소수정당은 다른 정당과 붙어야만 하는 건가? 고민이 들더라고요. 소수당끼리 연합하면 다 죽고 민주당 쪽에 붙어야 사는 현실을 보면 점점 더 미국과 가까운 체계로 가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거기서 벗어날 수 없다면, 그 민주당 체계 안에서 어떻게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도 고민이에요. 미국은 민주당 체제 안에서 다양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체계가 나름 자리를 잡은 상태에서 유지돼 왔는데, 한국은 이도 저도 아니게 왔다 갔다 하다가 결국 민주당에 흡수되지 않을까 싶은 거죠. 그 거대한 정당 안에서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그래서 힘 있는 소수정당이 힘 있는 한 사람을 얼마나 많이 배출할 수 있는지가 참 중요한 거 같아요. 그게 잘 안돼서 지금 소수정당들이 죽어간다고 생각하거든요. 당 문제뿐만 아니라, 한 사람을 어떻게 키워낼 건지에 대한 고민으로 연결되는 거죠.


우재: 우리가 다당제를 할 기회가 역사적으로 몇 번 있었잖아요. 하지만 3당 합당 같은 야합이나 정치공학적 결정으로 다당제 기반을 쌓지 못한 측면이 있죠. 그걸 정치인들 탓으로만 돌릴 수 있는 건지, 아니면 국민들도 양당제를 선호해서 그걸 승인해 온 건지는 모르겠지만요. 전성기가 짧긴 했지만, 민주노동당이 진짜 뭔가 바꿔낼 것 같은 시기가 있었는데 말이죠.


해명: 어느 책에서 나온 이야기인데, 사람들이 둘 중 하나를 수월하게 고르는데, 셋 중 하나부터는 쉽게 선택하지 못한다고 해요. 그때부터 역학을 고민하면서 이것저것 따져봐야 하니까 인간의 심리와 맞지 않는 지점이 있다는 거죠. 뭐든지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게 인간의 마음인 거 같기도 하고요. 다양성이라는 건 세 가지, 네 가지 선택지부터 생기는 거잖아요? 우리가 다양한 세계를 만들어 내지 못하는 건 어찌 보면 우리의 어떤 인식론이 계속 반영된 결과가 아닐까 싶어요. 다양한 사회를 원한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다수는 사실 그걸 귀찮아하고 원치 않는 게 아닐까? 사람들의 그런 인식과 피로도가 이미 있는 거죠. “난 둘 중의 하나 고민할게” 이런 태도가 좀 더 지배하는 현실 아닌가.


그래서 저는 반대로 과연 양당 정치를 타파하는 게 좋은 방향인지, 오히려 양당 정치에서 더 좋은 의사결정이 이뤄지도록 그 안에서 다양성을 고민하는 게 좋은 방향인지 고민이에요. 아마 미국식이냐 유럽식이냐 이런 방향으로 갈릴 텐데, 어느 쪽에 사람들이 더 익숙함을 느끼고 체제 전환을 하느냐에 따라서 한국식 정치가 나타나지 않을까 생각해요.


주비: 양당 정치 안에선 소수 입장을 대변해줄 기제 자체가 안 나올 거 같아요. 많은 표를 얻을 수 있는 방향으로만 집중할 테니까요. 우리가 계속 이야기하는 다양성, 효용성이 실현되려면 결국 소수정당이 있어야 하고 양당 정치에서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Q. 중앙정치에 비해 지방정치는 더 쉽게 무관심, 냉소, 불신의 대상이 되는 거 같아요. 어떻게 보면 우리 삶과 더 밀접한 이슈를 다루는 경우가 많은데 말이죠. 이유가 뭘까요?


주비: 시민들이 그나마 국회의원은 관심 있게 보는데, 확실히 지방의원은 이름부터 잘 모르다 보니 사실상 정당만 보고 뽑는 거 같아요. 그러니까 더더욱 양당 대결로 치우칠 수밖에 없죠. 지방의회를 봐도 의원 중에 내 의견을 대변하고 관련 정책을 내세우는 분이 한두 명 정도 있지만, 그것도 진짜 운이 좋아야 그런 분이 있는 거 같아요. 대다수는 시장과 같은 정당이면 시정을 견제하지 못하고 힘을 실어주는 방향으로만 가잖아요. 그래서 의회와 집행부가 서로 견제하는 역할을 제대로 못 한다는 느낌이 들어요.


해명: 시의원도 결국 공천이 걸려 있어서 이견을 이야기하기가 어렵잖아요. 정당과 상관없이 “이건 되게 잘못된 일”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개인의 양심과 시의원의 소신이 잘 지켜져야 하는데, 당 안에 연결고리가 다 있으니까 다른 생각을 갖기가 힘든 거 같아요. 당론을 따르다가도, 때로는 당과 독립적으로 내 소신과 가치를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하는데 말이죠.


주비: 지방의원들이 공천을 받고 자기 세력화를 하는 과정에서 시민을 만나는 게 아니라 대개 정당 안에서 국회의원·시장 라인을 타고 올라가는 구조이니까, 더더욱 지역과 멀어지고 당파 싸움이 커지는 거 같아요. 그렇게 당선돼서 의정 활동을 하면 자기 지역구에 신경 쓰기보다는 자신을 밀어준 국회의원, 시장의 정책을 보조하기 마련이니까요. 아까 얘기한 것처럼, 시민의 의견을 대변해 줄 수 있는 몇몇 의원이 등장해서 시정 정책을 비판하면 같은 정당일 땐 배신자인 양 낙인을 찍는 문화도 있는 거 같고요. 이렇게 말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좀 조폭 문화처럼 느껴져요. 어쨌든 그런 분위기 때문에 지역 정치인이 시민에게서 멀어져 있다는 느낌을 더 받아요. 사실 지방의회에서 벌어지는 일이 우리 삶과 아주 밀접하잖아요. 국회의원은 큰 개발 사업을 따오는 식으로 거시적인 일을 많이 하니까 크게 와닿지 않는 측면이 있고요. 그럼에도 지역 주민이 지방의회에서 벌어지는 일엔 무관심하니까 지역 정치인이 시민을 신경 쓰기보다는 당내 세력화에 치중하는 구조가 반복되는 게 아닐까 해요.


우재: 원주도 총선 전후로 지역구 국회의원 의견에 따라 시의원들 행보가 확확 바뀌는 모양새가 나타나고 있죠. 우리가 그래도 지방자치를 한 30년 했다고는 하는데, 여전히 패거리 정치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거 같아 안타까워요. 어쨌든 기성 정당과 정치인 책임이 큰 건 분명한 거 같은데요, 다른 이유도 있을까요?


해명: 사람들은 큰 이야기를 하는 걸 좋아하잖아요. <우리는 왜 극단에 끌리는가>라는 책을 보면, 서로가 알 법한 얘기를 꺼내야 같은 생각을 한다는 인식이 생겨서 호감을 느낀다고 하더라고요. 공감하는 이야기를 나눌 때 집단이 점점 강화된대요. 그만큼 극단으로 치달을 가능성도 커지고요. 그런 맥락에서 중앙정치는 서로 알 법한 이야기지만, 지역정치는 좀 더 미시적으로 들어가야 하니까 보통 대화에선 빠진다고 생각해요.


국인: 중앙정치는 타자화하기가 편하죠. 반면, 지역정치는 내가 결부돼 있거나 누군가와의 관계성이 개입될 수 있잖아요. 가까운 관계에서 예민한 부분을 자꾸 피하려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꺼리는 지점이 있는 듯해요. 예민한 이야기더라도 건강하게 잘 풀면 되는데, 갈등으로 발현되기 쉽다 보니 피하려는 경향이 생기는 거죠. 그래서 자꾸 큰 얘기로 가게 되는 거고요.


지난 발제 때 우재 씨가 설명해 주신 것처럼, 박정희 정권 때 개헌하면서 정당 관련 규정을 기본권 조항에서 총강으로 옮긴 게 그런 지점을 더 공고히 하지 않았나 싶어요. 기본권에 정당 관련 규정이 있었다면 일상에서 우리가 정치 활동, 이야기를 하는 게 더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졌을 거 같거든요. 법 조문이 우리 삶에 되게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걸 느껴요.


한편으로는 언론도 냉소, 불신, 무관심을 강화하는 데 기여한다고 생각해요. 자꾸 갈등의 요소만 강조하니까 ‘정치=갈등’처럼 비치잖아요. 정치에서 대립은 근본적 속성이고 토론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건데, 그걸 부정적으로 보여주면서 환멸감을 키우는 게 아닌가 싶어요.


우재: 언론이 갈등을 무조건 안 좋은 것처럼 보도한다는 말에 공감해요. 갈등이 생기면 언론은 누구 말이 더 타당하고 합리적인지 판단해서 시민들이 이해하도록 맥락을 설명해 줘야죠. 지방자치로 갈수록 그런 보도가 없어요. 그냥 ‘둘이 싸우고 있다’, ‘화해해서 잘 좀 해봐라’ 이런 식이죠. 아카데미극장 예산안을 두고 양당이 충돌해서 시의회가 파행했을 때도 양비론적 보도가 대부분이더라고요. 정치적 냉소와 무관심을 키우는 보도라고 생각해요.


주비: 청소년기 교육과 경험도 성인이 돼서 정치를 바라보는 관점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해요. 대화와 토론보다는 일방적으로 수업을 듣는 교육 방식이니까 스스로 생각하는 경험치를 쌓기 어렵고, 정치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것도 기성세대에 의해 제약을 받잖아요. 청소년을 미성숙한 사람으로 규정해서 공부만 해야 한다는 식으로 치부하기 마련이고요. 그러다 성인이 되면 갑자기 알아서 투표하라고 하니 이제 와서 정치에 관심 갖기가 쉽지 않은 거죠. 자연스레 정치가 내 삶과 밀접하지 않다고 여기게 되는 듯해요. 선거권 연령을 낮춘 것처럼, 정치·사회 문제에 관심 가질 기반을 조성하고 토론할 수 있게끔 교육 방식을 바꾼다면 시민들이 좀 더 정치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까 싶어요. 지금은 너무 정치와 일상을 분리하는 거 같아요.


우재: 그게 참 웃겨요. 한국은 사실 투표는 굉장히 독려하잖아요? 유럽 선진국과 비교해도 투표율이 높은 편이고요. 정작 평소엔 정치와 거리를 두도록 하는데 말이죠. 선거철에만 투표를 위해 ‘벼락치기’로 정치에 주목하게끔 하는 게 관성화한 것 같아요. 관심의 양은 많지만, 관심의 질은 떨어지는 느낌이죠.


국인: 선진국은 투표율은 낮아도 일상에서 정치 참여가 활발한데, 우리는 “4년에 한 번만 주인이다”란 말이 나올 정도로 투표라는 이벤트적 행사에만 참여율이 높은 거 같아요. 일상과 정치가 분리된 모습이 바로 이런 지점에서 나타나는 거죠.


우재: 지방자치가 그만큼 발달하지 못한 탓도 있을 거고요. 지방자치법, 지역언론 문제도 있다 보니 지역정치에 관심을 갖기가 되게 어려운 현실이에요.


국인: 물론 그렇다고 모든 국민이 정당 활동가처럼 정치 고관여층으로 활동할 순 없으니까, 지금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구체적 목표와 방안이 항상 고민이긴 해요.


Q. 양당정치를 타파하고 지방정치 실효성을 높이는 측면에서 지역정당이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는데요. 얼마나 효과가 있으리라 생각하나요? 기대하는 지점도 있지만, 한계도 있을 듯해요.


국인: 시민 운동처럼 다양한 지역 활동이 실질적으로 정치와 결합하는 지점을 만들 수 있을 거 같아요. 원주는 협동조합 영역에 기반이 있지만, 그게 정치와 잘 연결되진 않는 느낌이죠. 운동을 통한 변화를 이끌려면 결국 정치와 결합도 중요하기 때문에 그런 효과가 기대돼요.


주비: 시민사회에 아젠다가 생겨서 정치와 결합하려 할 때, 기존 양당을 활동하면 흑백논리에 휩싸여서 한쪽 정당 색깔로 칠해지고 평가절하되는 경향이 있잖아요. 그래서 시민사회 일각에선 일부러 양당과 거리를 두는 경향이 있기도 하고요. 만약 지역정당이 있다면 (물론 여기도 어떤 정치색이 나중엔 형성되겠지만) 양당과는 다른 결로 의제를 끌고 갈 수 있어서 더 적극적으로 시민운동과 정치가 결합할 수 있을 거 같아요.


해명: 비례대표와 비슷한 거 같아요. 비례대표는 자신이 갖고 있는 의제를 집요하고 날카롭게 계속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역정당도 마찬가지죠. 중앙정치와는 다른 지역 이슈가 있잖아요. 그걸 지속적으로 내뱉는 사람이 나타나야 하는데, 그 사람이 양당 체제에 들어가면 그 안에서 해야 하는 역할 때문에 자기 의제를 똑바로 말하지 못하는 일이 생기죠. 그런 의제가 지역정당에선 더 구체화해서 날카롭게 나타났으면 해요.


국인: 한편으론, 그게 양당에선 절대 이뤄질 수 없는 걸까 싶기도 해요. 양당 안에서 스펙트럼을 만들어 가면서 목소리를 내는 형태로는 불가능할까? 지금까지 봐 온 걸 생각하면 힘들 거 같지만요.


해명: 중앙그룹 회장이 손석희 씨를 <JTBC> 사장에 앉힐 때 보도 관련해서 일절 건들지 않겠다고 얘기했대요. 그래서 손 씨가 자기 소신대로 <JTBC>를 끌고 가서 <중앙일보>와 달라진 거죠. 삼성에서 “너무한 거 아니냐”는 불만이 나왔지만, 중앙그룹 회장은 끝까지 약속을 지켰어요. 저는 이게 좋은 태도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오히려 이런 생각도 드는데, 위성정당을 나쁘게 보지 말고 하나의 브랜드화시켜서 지역정당처럼 끌고 가는 거죠. 예를 들어, 민주당의 의제를 받아서 어떤 지점은 같이 가되 어떤 지점은 생각이 달라서 따로 갈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해 줬으면 좋겠어요. 기본소득당 같은 곳이 그런 돌파구를 만들어낸 게 아닐까 싶고요. 생각은 다르더라도 이런 지점은 지켜줄 수 있지 않나 생각해요.


우재: 지난 국회 때 열린민주당이 민주당 개혁을 견인하겠다면서 독자 정당으로 출마했는데, 위성정당도 아니었지만 결국 나중엔 민주당에 흡수 합당이 됐죠. 기본소득당도 솔직히 말하면 민주당과 각을 세운 걸 저는 본 적이 없어요. 한국 정치에선 양당의 자장에서 벗어나기가 어렵기 때문에 독자 정당이 그만큼 중앙 단위에서 나오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더 지역정당을 얘기하게 되는 거 같은데요. 근데 그것도 참 어렵죠. 지역정당이 만능이 아니잖아요. “지역정당을 성공시킬 수 있다면 양당과 다른 진보정당은 왜 지역에서 성공 못 시키냐?”, “진보정당도 제대로 못 하면서 지역정당 새로 만들면 잘할 수 있다는 게 말이 되냐?”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고요. 냉소적으로 보면 “어디서 나온 자신감이야?” 이런 말이 나올 법하죠. 분명 한계 지점은 있다고 생각해요. 지역정당 하면 무조건 잘될 거다, 이렇게 볼 순 없죠. 그럼에도 지역정당은 중앙당의 정세 판단이나 통제에 따라서 왔다 갔다 하는 게 아니라 그 지역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조직해서 지역 상황에 따라 움직일 수 있는 거니까, 그 차이점이 그나마 기대하게 하는 거 같아요.


국인: 저도 비슷하게 생각하는 게, 지난 발제 때 소개해 준 대구 사례처럼 기존 정당의 한 지역위원회를 지역정당을 지향하는 주민들이 장악해서 활용하는 방안도 지금 체제에선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우재: 2018년 지방선거 때 제주녹색당 고은영 제주도지사 후보가 상당히 선전했잖아요? 당시 제주녹색당은 거의 지역정당처럼 움직였던 거로 기억해요. 양당과 달리, 주민 입장에서 제주신공항, 해군기지에 명확히 반대하면서 평화와 군축의 관점을 드러내기도 했고요.


국인: 정당에서 중요한 파트가 연구라고 생각해요. 지역정당을 했을 때 그 지점이 충분히 운영될 수 있을까 싶어요. 이것도 한편으론 지역정당의 한계가 되지 않을까요?


우재: 이상적으로 보면, 이런 스터디모임 하나하나가 다 풀뿌리 조직이 돼서 지역정당과 결합할 수 있고, 지역대학과 협력하는 그림도 그려볼 수 있을 거 같아요.


해명: 지역정당의 한계도 결국 지속성이죠. 한 명이 쭉 끌고 가다가 윤리적으로 타락하거나 권력에 맛을 들이면 결국 잘못된 판단을 할 가능성이 있잖아요. 시스템이 이걸 견제할 수 있어야 하는데, 조직을 이끄는 사람의 리더십이 타락하는 순간 전체 조직이 와해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은 거 같아요. 지역정당도 잘못하면 그렇게 될 가능성이 분명히 있고요.


우재: 여성의당, 미래당도 비슷한 일로 당이 사실상 와해한 상태죠. 원주도 지역정당을 만들어서 명망가를 리더로 모셔 온다고 했을 때, 그 한 사람이 타락하면 결국 조직의 리더십이 다 흔들릴 수도 있잖아요. 그렇게 되지 않도록 당내 민주주의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 새로 정당을 만드는 김에 잘해보자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국인: 정당이기 때문에 더 그런 거 같아요. 사회운동 성격이라면 액션이 더 중요할 수 있는데, 정당은 정책, 제도, 입법에서 실질적 대안을 구체화해야 하니까요. 그래서 역시 연구 파트가 중요하다고 봐요. 내가 막연히 생각하는 어려움이나 지향하는 가치를 해석해 주거나 삶의 현장에서 변화를 만드는 역할을 해야 하니까요. 지역정당 운동에서 가장 필요하면서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우재: 우리 사회는 전반적으로 정당은 시민단체가 되고, 시민단체는 정당이 되는 경향이 있죠. 그런 역할을 요구하기도 하고요. 사실 각각의 시민사회단체는 저마다의 의제에 관심을 갖고, 정당이 그걸 결합하고 조율해서 정치 의제화하는 게 이상적인데, 우리는 시민단체든 정당이든 각자 다 그 역할을 해주길 바라요. 저는 결국 지역정당에 기대하는 점은, 시민단체가 내세우는 각각의 의제를 종합해서 정치로 풀어내는 역할을 해주는 것이에요.


해명: 모든 게 양당 정치 안에 세팅이 다 돼 있으니까, 어떤 사람이 당에 영입되더라도 당에서 원하는 의제를 말할 수밖에 없는 지점이 있잖아요. 그런데 지역정당이 대안으로 주목을 받아서 떠오른다면 그 정당에서 활동하던 인물이 양당에 영입되더라도 지역정당에서 활동하던 맥락이 있기 때문에 날카로운 목소리가 좀 더 살아남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우재: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기존 정당에 맞춰야 하는 부담이 덜하니까요. 시민사회에서 활동하는 분이 기존 정당에 들어가려면 역학관계, 공천 가능성 등 고려해야 할 지점이 많잖아요. 시민사회의 정치 참여 부담을 너무 키우는 거죠. 그래서 저는 언젠가 원주에 만들어질 지역정당에서 시민사회 전설적인 선배들과 지금 한창 활발하게 활동 중인 청년활동가들이 신구 조화를 이뤄서 시의원 후보로 8개 모든 지역구에 출마하는 꿈을 꾸기도 해요.


Q. 우리가 원주에서 지역정당을 만든다면 어떤 지향점과 정책을 생각해 볼 수 있을까요? 당장 2년 후 지방선거 참여를 상정하고 상상해 본다면 재밌는 이야기가 나올 거 같아요.


국인: 기후위기가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캠페인이나 운동을 정책으로 전환하는 지점이 필요한데, 지역정당이 그 역할을 해줄 수 있을 거 같아요. 누군가는 또 출마해 주실 거고(웃음).


당장 지역정당을 통한 건 아니더라도 지방선거까지 남은 2년 동안 차분히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최소한 양당 후보에게 구체적 정책 제안을 해서 답변을 받는 식으로 말이죠.


우재: 20여 년 전만 해도 지방선거 앞두고 원주에서 토론회도 활발히 열리고 풀뿌리 관점에서 정책 질의와 시정 감시도 많이 이뤄졌는데, 지금은 사실상 다 없어졌어요. 그게 안타까워요.


국인: 그때 그런 활동이 더 의미가 있는 건, 원주푸드 조례처럼 구체적인 정책화가 이뤄졌다는 거죠. 그 과정에 많은 노력이 있었고요.


우재: 원주푸드 조례 같은 입법 활동을 할 수 있는 정당이 이젠 없는 거 같아요. 기본적으로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느냐가 제일 중요하다고 봐요. 레고랜드, 알펜시아 같은 문제도 양당이 서로 비판만 하니까 사람들도 진실에 관심을 갖기보다는 피로감만 느끼게 되죠. 이런 문제가 재발하지 않기 위한 정책적 대안을 모색해야 하는데, 그런 이야기를 할 정치 세력이 없어요. 정의당이 그나마 성명을 내지만, 도의회에 의석이 없는 현실이고요.


해명: 서울에서 나오는 잡지들도 대부분 수도권 중심으로 이야기해서 저는 꼭 지역 불균형 이야기를 다뤄달라고 말하거든요. 근데 신경도 안 써요. ‘정말 이 사람들은 대한민국 이야기가 딱 수도권 정도라고 생각하나?’라는 느낌도 받는데. 어쨌든 지역정당이 생긴다면 지역 불균형, 지역소멸, 저출생 관련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할 수 있고, 개발 논리에서 벗어나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우재: 저는 시내버스를 공영화하고, 공영전기자전거를 원주 전역으로 확대하고, 백원택시 지원을 강화하는 식으로 대중교통 활성화 정책을 펼쳐서 기후위기와 연관해 자동차를 줄이는 방향으로 지역정당이 의제를 끌고 갈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어쨌든 정치적으로 설득이 필요한 지점이잖아요. 더 나아가, 원주에 산업단지를 조성할 때 RE100을 충족하도록 규제를 적용하는 방안도 추진할 수 있을 거 같고요.


국인: 제 아이와 다니면서 요즘 눈여겨보는 게 인도예요. 인도가 계속 좁아지는 느낌이라 최소폭을 늘리는 법제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또, 점자블록이 제대로 안 돼 있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보도블록 보수 공사를 매번 하는데, 그때 점자블록화가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싶어요.


우재: 보행 여건을 배리어프리로 바꾸는 역할을 지역정당이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특히 원도심에 필요하죠.


해명: 그게 기존 양당 정치 안에선 나타나기가 좀 어려운 거 같아요. 누가 목소리를 내려고 해도 일단 검열을 받게 되니까요. 그럴 때 눈치 보지 않고 지역정당이 문제점을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하면 좋겠어요. 사람들은 대안을 제시해 줘야 내가 불편했다는 걸 확 체감하고 법으로 바뀌었을 때 반가워하거든요. 지금은 정치권에서 이런 목소리가 나오지 않으니까 사람들이 불편을 인식하기도 어려운 상황 같아요.


우재: 원주 시민단체들은 그래도 비판을 하잖아요. RE100이나 인도 폭 문제를 다 이야기하는데, 대안 제시까지 언론에 가닿지는 않는 거 같아요. 결국 정치의 언어로 바꿔서 정치적 설득을 해야 하는데, 기존 정당이 거기까지 못 가고 있죠. 지역정당은 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국인: 시의회에서 조례가 만들어지는 걸 봐도, 다른 지역 입법 선례를 참고한 좋은 취지의 조례가 많이 올라오는데, 정작 필요한 부분은 빠진 채 만들어지는 경우가 있어요. 그걸 지적하거나 보완하는 것도 지역정당 역할 아닐까 싶어요.


주비: 얼마 전 원주시 인구 통계를 살펴봤는데 1인 가구가 40%를 넘었더라고요. 그걸 읍면동별로 세분화해서 봤는데, 중앙동 1인 가구가 70%라서 너무 깜짝 놀랐어요. 원도심이 거의 다 그 정도예요. 반곡관설동, 지정면처럼 신도심으로 가면 20%로 확 줄어들고요. 원도심 1인 가구 대다수가 노령 인구인데, 이분들에게 필요한 정책이 무엇인지 세세하게 들여다보는 게 필요할 거 같아요. 지역정당이 생긴다면 다양한 관점에서 디테일한 정책이 개발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요.


우재: 공감하는 게, 총선 때마다 원도심은 사실상 버림받잖아요. 국민의힘은 어차피 텃밭이니까, 민주당은 인구가 별로 없으니까 신경 안 쓰는 거죠. 이런 상황에서 원도심은 계속 낙후하는 거죠. 주민을 위한 정책보다는, 주차장 조성처럼 그곳에서 장사하는 자영업자를 위한, 혹은 외지 방문객에게 편리한 정책 위주로 추진하는 실정이랄까요. 주민의 니즈를 제대로 반영하려면 지역정당이 필요하다고 봐요.



전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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