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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비 Jul 29. 2023

휘파람

너는 말했다. 어떤 외로움은 서랍 같아서 사람을 담아 채울 수 있지만, 어떤 외로움은 베개 같아서 떠오르는 언어들을 애써 눌러놓지 않고는 잠들 수 없다고. 너와 함께 있을 때 나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싶어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하지 않아도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애초에 사람이 사람을 이해하는 건 별다른 의미가 없다고. 사람은 계속해서 변하는데 누군가를 이해하는 것이 뭐가 중요할까. 너는 그런 나를 빤히 바라보다 발밑에 걸리는 돌멩이를 찼다.​


너는 ‘ㅁ’을 ‘ㅇ’처럼 쓰는 습관이 있었고, 나는 ‘ㅇ’을 ‘ㅁ’처럼 쓰는 습관이 있었다. 내가 네 글씨체를 따라 쓰게 된 이후로 우리의 글씨체는 쌍둥이처럼 닮았지만, 습관으로 인해 너와 나는 한 사람이 아닌 두 사람으로 구별되었다. 그럴 때면 너는 휘파람을 불었다. 너는 본 영화를 여러 번 다시 봤고, 나는 한 번 본 영화는 다시 보지 않았다. 물질에는 기억이 담겨 있어 처음 그 물질을 접했을 때의 날씨와 기분, 감정 같은 것들이 생생하게 떠오른다고 말하는 너, 반복해서 볼 때 새로운 기억이 과거의 추억 위에 덧씌워지는 게 싫은 나. 그럴 때면 너는 휘파람을 불었다. 너는 사람들의 소란이 싫었고, 나는 사람들의 활기가 좋았다. 녹차맛은 좋아하지만 녹차는 싫어하는 사람처럼 사람맛이 나는 책을 읽으면서도 사람을 싫어하는 너, 딸기맛은 싫어하지만 딸기는 좋아하는 사람처럼 사람을 좋아하면서도 사람맛이 나는 것들에는 흥미가 없는 나. 그럴 때면 너는 휘파람을 불었다. ​


너는 내 이름을 가만히 불러보면 꼭 휘파람 소리 같다고 했다. 입술과 입술이 맞부딪치며 그 사이로 새어 나오는 바람은 풀잎 소리 같지 않느냐고 했다. 이번에도 나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종이에 적었다. 사랑. 나도 종이에 적었다. 사람. 사실 우리가 습관대로 적은 각자의 글씨는 원래의 글자와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는 걸 사람들은 알까. 사람들이 너를 이해했다면, 아니, 내가 너를 이해했다면 너는 떠나지 않았을까. 나는 베개처럼 외로워졌다.


문득, 휘파람이 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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