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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비 Sep 24. 2021

문 틈새에 끼인 자유

사람들이 건물에 모여들었다. 저마다 커다란 가방이나 알록달록한 캐리어 손잡이를 끌고 자신의 이름이 붙어있는 네모난 방 안으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인사를 나누고 서로의 이름을 몇 번 읊조린 후에, 좋아하는 음악이나 근황 같은 것들을 이야기하곤 했다. 사람들은 자주 첫인상에 대해 말했다. 너는 굉장히 밝았어. 너는 노래를 잘하더라. 그리고 내 차례가 오면,


너는 굉장히 침착해 보였어. 어떤 일에도 동요하지 않을 것처럼. 문 틈새에 손가락이 끼었는데도 신음 하나 안 냈잖아.


잔잔한 물살을 가르며 기억의 방을 찾아간다. 손잡이를 돌리면 익숙한 기억에 잠식된다. 나는 문틀을 잡고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눈다. 화장실이 급한 누군가가 뛰어 들어가며 문을 닫는다. 문과 문틀 사이의 간격이 좁아지며 납작해지는 뼈와 살. 경첩과 경첩 사이에 심겨 자라나는 네 개의 손가락. 어쩐지 현실감이 없다. 왜 손가락이 저기에 있을까. 저건 정말 내 손가락일까. 부러진다면 가루가 되지 말고 깔끔하게 부러졌으면 좋겠는데.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문을 열지 않는다면 이 상태에서 벗어날 길이 없고, 문을 연다면 되도록 손가락이 살아남는 방식이었으면 한다. 자유 없음과 훼손된 자유는 마찬가지니까.


어떤 종류의 고통은 일정 이상 넘어가면 오히려 아무렇지 않다. 아무렇지 않아야만 견뎌낼 수 있기에 몸과 영혼을 분리한다. 고통에 추를 달아 심연의 어둡고 깊은 곳으로 내려보내면, 모든 감각이 느려진다. 침착한 것이 아니라 그저 아픔을 표현할 언어를 잃었을 뿐. 아픈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자유를 빼앗겨,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언어를 잃어간다. 목소리를 낼 수 없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다리를 얻어 육지에 올라와도 사랑한다는 말을 할 수 없다면.


어느 밤, 나는 벤치에 앉아 검고 고요한 강물과 시선을 맞춘다. 색색의 불빛과 화려한 도시, 그 사이로 난 길들이 비친다. 강물은 화려하고 상처 입은 도시를 금방이라도 흔들리며 꺼질 듯이 그려낸다. 물 위의 세계와 물아래 세계. 어쩌면 한 걸음씩 물속으로 걸어 들어갔던 사람들은 머물 자리를 찾아 떠난 건지도 모른다. 외면받고 배척받지 않는 곳으로. 더 이상 외롭지 않은 곳으로. 물아래 세계로 사라진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떠올린다. 끝까지 사랑하고 또 사랑한 사람들.


당신들을 기억해요.


고요한 수면에 파문이 일며 강가의 갈대숲이 흔들린다. 언뜻 헤엄치는 지느러미를 본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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