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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비 Sep 24. 2021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그날의 밤은 너무 밝아서 내가 알아온 밤이 아닌 것 같았다. 짠 내음을 싣고 얼굴의 높은 산으로 소금기를 나르는 바닷바람과 뿌연 하늘 사이로 흐릿하게 비치는 인공위성. 하늘의 물과 땅의 물은 구분되지 않아 경계가 지워지고, 높이 솟은 건물들이 엄숙하게 내려다보는. 모래사장에는 폭죽놀이 금지라는 푯말을 어기고 흩어져있는 붉은 잔재들. 손가락이나 돌조각으로 그린 누구는 누구를 사랑한다는 표식들. 밀물과 썰물은 계속해서 영원할 거라 믿는 관계나 정성 들여 쌓은 모래성 같은 것들을 지워나간다.


그날의 밤은 너무 밝아서 내가 알아온 밤이 아닌 것 같았다. 끝없는 암흑과 심연을 향한 충동, 그 강렬함을 가리는 네온사인의 화려한 불빛과 시끄러운 소음. 색색의 조명과 음악은 사람들을 위해, 사실은 돈을 위해 빛났습니다. 웃고 떠드는 소리가 미련해지는 밤. 떠들썩함을 어쩔 수 없어 초라해지는 밤. 웃기 위해 웃는 이 소란은 조그만 농담을 명분 삼아 이유 없는 가락이 되어 울린다. 고요함이 고요한, 부재가 부재한. 이 밤은 한 치의 어둠을 용납할 수 없었던 걸까.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걷는다. 해안을 따라 걸으며 시커먼 바다 아래를 상상한다. 어떤 것이 담겨있는지 누구도 온전히 알 수 없는. 인간의 모든 욕망이 유기되어 그대로 가라앉고, 가끔 더 이상 삼킬 수 없다는 듯 해변에 뱉어내는.


누군가 내 어깨를 치며 말을 건다. 저기, 혹시, 혼자, 어떠세요? 같은 언어들. 소음의 세계에서는 어떤 말도 알아들을 수가 없다. 미처 내게 도달하지 못하고 바닥에 떨어진 언어를 멍하니 바라본다. 저건 무슨 뜻일까. 어떤 의미일까.


네가 달려와 나를 잡아끌며 자리를 벗어난다. 너는 말했다. 네가 일어나서 다른 곳으로 갈 때 두 사람이 근처를 빙빙 도는 걸 봤다고. 너는 말한다. 조심해, 세상은 생각보다 아름답지 않아.


세상은 생각보다 아름답지 않아.


어쩌면 나는 알고, 어쩌면 아직도 모른다. 참 이상하지. 아름다움에 대해 상상할수록 아픔만을 보게 된다는 건.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을 추천받은 적이 있다. 나는 <노르웨이의 숲>을 읽었지만 <노르웨이의 숲>은 물론 하루키도 읽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건 거짓말이지만, 사실이기도 했다. 거리를 헤매는 청춘, 방황하는 와타나베. 나가사와 선배. 술, 담배, 여자. 방황은 왜 그런 식으로 표현되어야 할까. 타인을 상처 입히지 않는 방법은 없을까. 방황의 이름 아래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한 걸까. 누군가의 머리맡에 도사리는 악몽은 사실, 그저 방황하고 있던 건지도 모른다. 지독한 어둠과 끝없는 정적의 세계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네온사인과 술집의 세계에서 방황한 건지도 모른다.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는 많은 정보가 필요하지 않다. 읽지 않은 타인에 대해 말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럴듯하게 멋진 이름을 가진 소설가나 시인의 이름을 알고, 책의 핵심적인 문장을 몇 개 알고 있으면 된다. 사람들과 그 책에 대한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누고 싶은 것이 아니라면 그 정도로 족하다. 나는 읽는다. 읽지 않았다고 말하기 위해 읽는다. 와타나베의 이야기를 아는 척하는 대신, 나오코와 미도리, 레이코, 스쳐 지나간 수많은 익명의 사람들을 읽는다. 집으로 가는 지하철을 몇 대 보낸다. 어느 행 열차가 어디까지 운행한다는 방송을 듣다가 눈을 감는다. 우리는 어디까지 흘러갈까. 어디에 닿아야 비로소 멈출까.


그러나 신이시여, 저는 모든 이와 할 수 있는 한 깊은 대화를 나누고 싶습니다. 너른 들판에서 잠을 자고, 서쪽으로 여행을 가고, 밤중에 자유로이 걷는 것, 이것들이 가능하기를 원해요.*




*실비아 플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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