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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쥰 Oct 04. 2020

너의 이름은? - 기생충 명명법 (기생충의 이름) 1편

기생충 옴니버스 VOL. 1 (4)

본격! 기생충학 전공자가 들려주는 기생충 이야기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생물체’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붙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기생충’ 이 되었다.


너의 이름은?


우리 모두에게 있어서 ‘이름’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누구나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사람의 이름을 짓기 위해 누군가는 오랜 스승에게 부탁을 하기도 하고, 작명가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처음 지은 이름이 그 아이 앞으로의 인생에서 두고두고 영향을 미칠 거라는 믿음과 이유에서이다.


비단 사람뿐 아니라 다른 생물들, 이를테면 강아지, 고양이, 꽃, 더 나아가 생명이 없는 자동차와 사물에도 우린 이름을 붙이고 또 부른다. 옛 개척자와 정복자들은 처음 발견하고 또 정복한 곳의 지명을 그들 각자의 뜻을 기념하는 목적으로 이름 지어 붙였다. 이름은 어떤 무언가를 기억하기 쉽게 도와주기도 하고, 더 특별하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성서에 쓰인 창세기의 내용처럼, 최초의 인류인 아담이 그의 눈 앞에 처음 나타난 생물들을 두고서 가장 첫 번째로 한 일이 ‘이름을 붙여주는 것’이었으니, 우리 인간에게 있어 이름이 문자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성서에 나오는 최초의 인류는 신이 빚은 창조물들에게 가장 먼저 이름을 지어준다(Johann Wenzel Peter, Adam and Eve in the garden of Eden)


이 세상에 있는 많은 생물들은 각각 누군가에게 각자의 이름들로 저마다 다르게 지어질 수 있고 또 그렇게 불릴 수 있다. 하지만 어떤 목적을 갖고서 그걸 연구하는 이들에게나, 새로운 발견을 공표하는 이들에겐 '저마다 다른 이름'이 아닌 '하나의 통일된 이름'이 필요하다.


그리하야! 생물학자들은 각 생물의 이름을 짓는 방식을 하나의 통일된 규칙으로 약속하고, 그 규칙에 따라 이름을 붙이기로 하는데, 그것이 바로 앞으로 다루게 될 ‘학명 (學名)’이라는 것이다! 쉽게 이야기해서 학명"학술 활동의 편의를 위해 붙이는 생물들의 이름" 정도로 우선 알아두면 좋겠다.




생물 분류


‘학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생물의 분류체계를 간단히 알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이름을 어떻게 붙일지에 대한 약속과 규칙은 모두, '생물 분류 (biological classification)'라는 하나의 체계 안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생물 분류' 란, 둘 이상의 생물체 사이를 구조적, 혈연적으로 비교했을 때 얼마나 가까운지 (유연관계, 類緣關係)를 따져, 서로 비슷한 무리들로 함께 배열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테면, 다리의 개수가 같은 것들끼리 묶는 다든지, 날개가 달린 것끼리 묶는 다든지의 방법을 통해서 말이다. 이때 공통적인 특징들로 함께 배열되는 생물체의 무리들은 (같은 특징을 가진) 큰 무리로부터 세부적인 특징의 작은 무리까지 점차적으로 세세하게 분류된다.


생물체의 가장 큰 무리를 어떻게 나누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단순히 동물과 식물의 둘 (2개의 계)로 나누었던 18세기 [1]부터, 3개의 역과 6개의 계로 크게 나누는 지금 [2]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논의되어 왔다.


현행 분류체계로 보면 3개의 (domain)이 생물을 구분 짓는 가장 큰 단위가 되고, 그 아래로 6개의 계 (kingdom), 그 아래로 각각의  (phylum),  (class),  (order),  (family),  (genus),  (species)의 순서로 점점 작은 단위를 이룬다.


당연히 작은 단위의 분류체계로 갈수록, 무리를 이루는 기준이 세분화되고 훨씬 많아지기 때문에 무리에 해당되는 생물체의 수도 더 적어지게 된다. 이 때문에 역 (domain)에서 종 (species)으로 갈수록, 아래로 좁아지는 모양의 피라미드 형태가 된다. (예시로 사람, 고양이 그리고 곤충은 모두 동물계에 속하지만, 곤충강에는 오직 곤충만이 속해 있다)


작은 단위의 분류체계로 갈수록 무리에 해당되는 생물체의 수도 더 적어지게 된다


또한 생물을 각 특징에 맞게 전부 분류하였을 때, 마치 하나의 나무로부터 큰 가지가 뻗어 나오고, 큰 가지에서 다시 작은 가지가 뻗어 나오는 식으로 형태가 만들어진다. 이 모양은 실로 나무의 모양과 매우 흡사한데, 실제로 생물을 유연관계에 따라 분류해놓은 그림을 일컬어, '나뭇가지 수 '라는 한자어를 사용해 계통수 (系統樹, phylogenetic tree)라고 부른다. 


생물체의 무리들은 같은 특징을 지닌 큰 무리에서부터 작은 무리로 나뉜다 (3역 6계의 현행 분류체계에 따른 계통수)



단순한 예시 (박테리아, 나무, 사람)를 통해 위의 분류체계를 이해해보자. 박테리아나무, 그리고 사람은 먼저 각자의 특징에 따라 진정세균역 (박테리아)진핵생물역 (나무, 사람)으로 가장 크게 나뉜다. 그중 진핵생물역에 속하는 나무와 사람은 세부적인 특징에 따라 또다시 식물계 (나무)동물계 (사람) 나누어진다.



이후 사람은 동물계 안에서도 척삭동물문, 그중에서도 포유강, 영장목, 사람과, 사람속을 거쳐 마침내 사람(종) 순으로 최종적으로 나뉘게 된다.


사람 (Human)의 생물학적 분류 (大 > 小, 큰 무리부터 작은 무리의 순으로)
 
진핵생물(역)- 동물(계)- 척삭동물(문)- 포유(강)- 영장(목)- 사람(과)- 사람(속)-사람(종)


하나 더 연습해보자. 버섯파리는 모두 진핵생물역에 속한다. 이후 둘은 균계 (버섯)동물계 (파리)로 나누어진다. 이후 파리는 동물계 안에서도 절지동물문, 곤충강, 파리목으로 또다시 나누어진다.


이처럼 자연계의 생물들은 서로 다른 집단과 구분되는 분류 단위를 통해 (큰 것부터 작은 것에 이르기까지) 구분되며, 이를 구분하고 연구하는 학문을 일컬어 '분류학 (taxonomy)'이라고 한다.


큰 무리에서 점점 작은 무리로 구분 지어지는 생물 분류체계를 보고 있노라면, 러시아의 전통인형인 '마트료시카'가 생각나기도 한다!




학명을 이야기하기 위해 지금껏 달려왔다.


자, 이제 '학명'에 대한 소개가 얼마 남지 않았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모든 생물체의 학명은 스웨덴의 식물학자였던 린네 (Carl Linnaeus, 1707-1778)가 1758년 확립한 '이명법 (binomial nomenclature) [1]'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명법은 위의 생물학적 분류 단계 중 마지막 두 단계에 해당하는 속 (genus)과 종 (species)에 이름을 붙임으로써 생물 하나하나의 종류를 구분하는 방법이다. 사람을 다시 한번 예시로 이명법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도록 하자.


사람 (Human)의 생물학적 분류 (大 > 小, 큰 무리부터 작은 무리의 순으로)                                                         
진핵생물(역)- 동물(계)- 척삭동물(문)- 포유(강)- 영장(목)- 사람(과)- 사람(속)-사람(종)


생물 분류체계로 보았을 때, 맨 끝에 위치한 사람(), 그리고 사람()에 대한 이름을 각각 붙여 속명 (屬名)  종명 (種名) 한꺼번에 표기하는 것이 바로 이명법이다. 이렇게 하여 사람에게 붙여진 학명이 바로, 우리가 지금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호모 사피엔스 (Homo sapiens)'이다. '속명'  'Homo (사람)'와 '종명'  'sapiens (지혜로운)'를 나란히 표기하여 'Homo sapiens'가 된다.  그 이름의 의미인즉슨 “사람속 (Homo)에 속하는 지혜로운 사람 (sapiens)”이라는 뜻이다.


린네 이후의 학자들은 이 '이명법'을 이용하여 생물들을 점차 구분해 나가기 시작했다. 생물들에 이름을 붙이는 이명법을 처음 제창한 린네가 '제2의 아담'이라고 불리는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제 다음 편에서 본격적으로 '학명'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 그리고 '기생충의 명명법'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2편에 계속...



참고문헌

[1] Linnaeus, C. (1758). Systema naturae (Vol. 1, No. part 1, p. 532). Laurentii Salvii: Stockholm.

[2] Woese, C. R., Kandler, O., & Wheelis, M. L. (1990). Towards a natural system of organisms: proposal for the domains Archaea, Bacteria, and Eucarya.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87(12), 4576-45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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