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 옴니버스 VOL. 1 (5)
본격! 기생충학 전공자가 들려주는 기생충 이야기
*(원활한 이해를 위해) 1편을 보시지 않은 분들은 전편을 보신 후 이번 편을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1. 너의 이름은? - 기생충 명명법 (기생충의 이름) 1편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생물체’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붙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기생충’ 이 되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학명 (이명법)'과 '기생충의 명명법'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다시 한번 복습하자면, 학명은 "학술 활동의 편의를 위해 붙이는 표준화된 생물들의 이름"인데 원칙적으로 린네가 확립한 '이명법 (binomial nomenclature)'을 따라 학명을 붙이게 된다.
이명법은 생물을 분류체계에 따라 분류하였을 때, 가장 마지막에 분류되는 속 (Genus, 屬)과 종 (Species, 種)의 이름을 한꺼번에 표기하는 방식으로, 속명 (屬名)과 함께 생물 분류의 가장 기본단위인 '종'의 이름을 간편하게 명명함으로써 생물들의 이름을 쉽게 구분하도록 도와준다.
단순한 비유로 이명법은 '영월 신(辛)씨 판서공파 35대손 신지훈 (辛智勳)'으로 이야기할 것을 짧게 줄여 '신 지훈 (辛 智勳)'으로 줄여서 명명하는 것이라 보면 된다. 나무의 뿌리에서 갈라져 나온 서로 다른 가지들을, 가지의 끝으로 구분하는 식이다.
실제로 생물분류 단위의 위부터 아래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한 번에 나타내려면 무지막지한 표기가 이루어진다. 이명법이 없었다면, 학술활동의 편의를 위한 이름인 학명이 도리어 학술활동을 제약하고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었을 것이다.
이명법의 표기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이명법으로 학명을 표현하려면 우선 라틴어로 된 속명 (generic name)을 대문자로 시작해서 쓴 뒤, 그와 함께 종명 (species name)을 소문자로 시작하여 쓴다. 그리고 그 뒤에 이름을 지은 명명자의 이름을 쓰고 콤마 (,)를 찍은 뒤 명명된 해를 함께 명기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이름을 비로소 학명 (scientific name)이라 한다. 이때 속명과 종명은 다른 문자와 구별하기 위해 기울임꼴 이탤릭체 활자로 쓴다. (아쉽게도 브런치 플랫폼에서는 기울임꼴 표현이 불가능하다)
생물학 전공자들의 글쓰기 편의를 위해 브런치는 이탤릭체 기능을 추가하라! 추가하라! ㅎㅎㅎ...
사람 (Homo sapiens)을 예로 이명법을 통한 학명 표기방법을 알아보자. 속명인 Homo는 대문자로, 종명인 sapiens는 소문자로 시작하여 이탤릭체로 쓴다. 이어서 학명을 명명한 사람의 이름 (Linnaeus)을 쓰고, 콤마를 찍은 뒤 이름이 붙여진 해 (1758)를 표기한다. 모든 생물들의 학명이 위의 표기 방식으로 붙여진다.
하지만 이명법으로 지어진 학명은 또다시 간추려진 형태로 변형되어 사용될 수 있는데 아래와 같은 식의 축약이 가능하다.
1번에 활용된 것처럼 속명과 종명 뒤에 붙는 명명자와 명명년도는 생략하여 표기하기도 하며, 2번의 예시처럼 학명이 계속 반복해서 등장할 경우엔 속명의 첫 대문자만 남기고 마침표 (.)를 찍은 뒤 종명을 이어서 쓰는 것이 올바른 생략법이다.
*단, 학명의 축약형을 활용하는 방법은 동물분류와 식물분류에 따라서도 차이를 보이므로, 본 글에서는 동물분류학을 기준으로 이야기하기로 한다.
이제 기생충의 명명법에 대해서 알아보자.
Take it easy ~
부담 가질 것 하나도 없다. 왜냐! 기생충의 학명 또한 생물분류체계를 따라 다른 생물들과 똑같이 이명법으로 지어진다.
이젠 어느덧 익숙해진 우리의 친구(?) 회충(사람회충)의 이름으로 기생충의 명명법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회충 (蛔蟲)"이라는 이름은 우리나라에서만 사용하는 생물의 이름 (국명)으로, 회충의 원래 학명은 Ascaris lumbricoides이다. 그 이름의 뜻은 고대 그리스어로 "intestinal worm (장내에 사는 벌레)" 에서부터 유래되었다. 속명인 Ascaris, 종명인 lumbricoides, 명명자로 린네와 명명년도 (1758)가 붙어 회충의 학명이 완성되었다. 줄여서 쓰게 되면 "A. lumbricoides"로 속명의 첫 글자만 사용하여 축약할 수 있다.
어떤가. 학명은 라틴어로부터 유래되었기 때문에 문자에서부터 학술적인 냄새가 풀풀 풍긴다. 국명인 '회충'과는 다른 느낌의 '기생충 이름'이다.
현재 내가 박사학위 주제로 연구 중인 기생충 (톡소포자충)을 예시로 하나 더 연습해보자.
우리나라에서는 '고양이 기생충' 이라고도 불리는 '톡소포자충'의 학명이다. 톡소포자충의 학명은 속명인 Toxoplasma, 종명인 gondii, 그리고 명명자 (Nicolle & Manceaux)와 명명년도 (1909)로 이루어진다. (기생충의 발견년도는 1908년이다)
속명인 Toxoplasma는 고대 그리스어로 "arc, bow (활 모양)"을 의미하는 "toxon"과 "shape, form (형태)"를 의미하는 plasma가 합쳐져 이루어졌고, 종명인 gondii는 처음 기생충이 발견될 당시의 숙주였던 군디(gundi)라는 설치류의 이름에서 따와 명명되었다. 이름을 풀자면, "군디에서 발견된 활 모양 형태의 생물체" 정도가 되겠다. 명명자가 두 명 일 때엔 '&' 혹은 'et'으로 둘을 함께 표기하여 주는데 톡소포자충의 명명자도 Nicolle과 Manceaux 두 명이라서 둘의 이름을 함께 표기하여 준다.
아래 사진을 통해 톡소포자충의 형태를 살펴보도록 하자. '활 모양'이라는 이름을 지어준 명명자들의 눈썰미는 틀리지 않았다.
2편에 걸쳐, 생물의 분류체계와 학명, 그리고 기생충의 명명법에 대해 알아보았다.
마지막 부분에 소개한 톡소포자충의 경우, 짧은 학명 안에 '(발견 당시) 숙주', '기생충의 형태', '명명시기'와 '명명자'까지, 기생충의 역사에 관한 중요한 정보가 다 담겨 있는 셈이다. 특히나 숙주의 정보가 종명 (gondii)에 표기되어 있기 때문에 해당 생물체가 '기생충'이라는 것 또한 미루어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나의 주관적 기준에서는 이렇게 '알차게' 지은 학명이야말로 정말 좋은 학명이라고 생각된다.
톡소포자충에게 만약 지성이 있었다면, 그도 그의 이름을 만족스러워했으리라! (정말 김춘수 시인의 "꽃" 이 생각나는 학명이다.)
기생충의 명명법은 다음 3편을 끝으로 마무리하려고 한다. 기생충을 비롯한 생물의 학명들은 각자 가진 모양과 색깔, 그리고 발견된 장소 혹은 발견한 사람에서부터 유래되는 경우가 많다. 마지막 편에서는 학명 안에 재미있는 이유와 사연을 가진 기생충들을 몇 가지 소개하고자 한다.
끝으로 여러 가지 생물들의 학명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유용한 사이트를 몇 가지 소개하고자 한다.
3편에 계속...
사족.
기생충학을 전공과목으로 공부하는 수의대생들이나 의대생들은 지필시험을 치르기 위해, 많은 종류의 기생충의 학명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모조리 외워야 한다. 지금 나에겐 ‘기생충의 학명’이 너무 재밌고 가슴 뛰는 이름이지만, 그때 당시 학생으로 만난 기생충의 학명은 솔직히 너무 싫었다. 이름은 시간에 따라서 다르게 해석된다 ㅎㅎ.
참고문헌
1. 이순형, 채종일, & 홍성태. (1996). 임상기생충학 개요. 서울, 고려의학, p.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