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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니스프리 Jul 13. 2024

저요? MBC울산 방송국'노래자랑'장려상 출신이에요.

특별한 추억을 선물해 준 부모님을 그리며

울산MBC'엄마와 함께 노래를'부르는 경연 프로그램에 바쁜 엄마 대신해 아빠와 동요를 불렀다.

일요일 아침, TV에서 '엄마와 함께 노래를' 보게 되었다. 식당을 운영하던 엄마는 항상 바빴다. 안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나는 소원이 있다면서 말했다. 그 당시 국민학교 3학년이었다.


그날도 식당 일로 바쁘신 엄마에게 "엄마, 방송국에서 같이 노래 부르고 싶어. 안되나?"라고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엄마는 "뭐 한다고! 마마!! 아빠랑 같이 나가라!"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실망감에 울상이 된 나를 보며 엄마는 "아빠랑 같이 나가면 노란색 원피스 한 벌 사줄 끼다. 그거 입고 나가면 예쁘겠네. 우리 공주."라고 덧붙이셨다. 새벽시장을 따라 나갔을 때 눈여겨봤던 노란 원피스, 엄마는 일주일 뒤에 약속을 지켰다.

 

부모님은 식당을 운영하시느라 늘 바쁘셨지만, 내가 바라는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셨다. 나는 겁도 없이 방송국에 나가고 싶다고 말했을까? 지금 생각해도 헛웃음이 나온다. 넉넉하지 않았던 형편인데, 엄마는 내심 미안했던 마음에 원피스를 사준다고 말했던 것 같다.

 

며칠 뒤, 아빠 손을 잡고 우리 집 뒷동산에 있는 MBC 방송국으로 올라갔다. 다른 친구들은 엄마와 함께 접수하러 왔는데, 아빠랑 함께 온 우리 모습을 발견하고는 아나운서 언니가 친절하게 안내해 주셨다.

 

여섯 팀을 선발해야 하는데 서른 명 이상 접수했던 것 같다. 그리고 오디션에 합격해야 출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새벽 늦게까지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엄마는 "정아가 공부를 이렇게 열심히 했으면 얼마나 좋겠노. 그래도 뭐든 열심히 하면 됐다, 마!"라고 하셨다. 일주일 뒤, 오디션에 합격했다고 전화를 받았다. 엄마는 내심 기뻤는지 꼭 안아주셨다.

 

그런데 '나뭇잎 배' 동요를 연습하면서 짜증이 났다. 아빠는 노래를 왜 이렇게 못하는 거지? 어린 마음에 오디션에 꼭 붙어야겠다는 각오를 하고, 아빠 때문에 떨어지면 집을 나가겠다고 협박했다. 3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난 나는 유일하게 아빠한테 떼를 쓰면서 화를 냈다. 엄마랑 같이 나가고 싶었던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녹화 당일 아침. 바쁜 엄마 대신 나온 아빠는 처음으로 긴장한 모습을 보였다.

"아빠, 내가 먼저 노래 부르면 후렴에서 잘 따라와야 된다."

"알겠다, 마!"

굵고 짧게 대답했던 아빠는 첫 소절부터 음정이 불안했다. 엇박자로  시작하더니 끝내  가사도 잊어버렸던 것이다. 나는 아빠보다 더 크게 불러야겠다고 생각하며 마이크를 잡아먹을 듯이 불렀다.

 

1절: 낮에 놀다 두고 온 나뭇잎 배는

엄마 곁에 누워도 생각이 나요

푸른 달과 흰 구름 둥실 떠가는

연못에서 사알살 떠 다니겠지

 

2절: 연못에다 띄워 논 나뭇잎 배는

엄마 곁에 누워도 생각이 나요

살랑살랑 바람에 소곤거리는

갈잎새를 혼자서 떠 다니겠지

 

심사위원은 "엄마와 함께 노래"인데 아빠와 함께 왔다면서 칭찬했다. 대상을 받고 싶었던 마음을 뒤로하고, 아쉽게도 장려상을 받았다. 생방송으로 진행했던 아나운서 언니는 참가한 학생들 중에서 제일 잘했다고 특급 칭찬을 해주셨다.

 

하지만 집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첫 음부터 엇박자로 들어간 아빠 탓을 하면서 눈물을 쏟아냈다. 엄마는 장려상 받은 탁상시계를 보고는 "이거, 진짜 금이가?"라며 웃음으로 만회해보려 했다. 그때를 회상해 보면 부모님이 힘든 여건 속에서도 막내딸을 위해 최선을 다해 사랑을 쏟아주셨구나 싶었다.


 방송 출연하는 당일에는 아빠가 머리를 땋아주셨고, 엄마는 반짝이는 큐빅 구두를 광내고 노란 원피스를 챙겨주셨던 기억이 마음속 한켠에 남아 있다.

 

그 당시 내가 출연했던 영상을 찾고 싶어 울산 MBC 방송국에 영상이 남아 있는지 알아보았다. 영상담당자는 말했다. 83년도 첫 회 방송을 시작했지만 88년부터 자료가 있다고 말했다. 87년도 영상은 찾을 수 없었지만,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주신 부모님을 생각하니 눈물이 쏟아졌다. 너무 일찍 돌아가신 부모님이 그립고 그립다. 지나온 추억을 회상하면서 소소한 일상을 함께 나눴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특별한 추억으로 남아있는 그날의 기억을 되새기며, 나는 미소 짓는다.

“엄마, 아빠. 나는 충분히 예쁘게 잘 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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