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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니스프리 Jul 15. 2024

마지막 항암치료 후 내가 집중한 일

사랑의 손길과 희망의 빛

2차 항암 치료를 받고 난 이후에도 시민기자 일을 시작했다. 항암 치료를 마치고 두 번째 방문한 곳은 당진시노인복지관이었다. 사회복지사로 근무하는 직원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었다. 당진시노인복지관부터 지역기관을 통해 한 분 한 분 소통해 나갔다. 지역사회의 따뜻한 손길이 나에게 큰 용기를 주었다. 나는 그 사랑을 되돌려주고자 노력했다. 보육원에서 아이들을 위한 특별한 행사를 계획한 이유다.    

 


아동양육시설(보육원)에는 0세부터 거주 중인 청소년들이 함께 지낸다. 보호 종료 아동(만 18세 자립준비청년)이 되면 보육원을 나와 홀로 살아가야 한다. 이제 막 사회초년생이 되어 나온 아동들은 세상에 찌들어져 있는 편견과 동정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현실을 마주해야 하는 어려움에 직면해야 한다. 제대로 된 직장을 찾기 어려운 상황에서 ‘근본도 없는 고아가 하는 일이 그렇지 뭐’‘고아라서 끈기 없다’는 편견에 멍들어 있어 자립 준비 청년들에게 큰 상처로 남는다. 나 또한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비슷한 말을 들었던 과거를 회상해 보면 어디를 가든 한 명쯤은 꼭 있는 그런 빌런들이 있다.      


잘못된 일을 다시 바로잡으려 할 때도 상대방의 거짓말 여부와 상관없이 인생이 허탈하게 느껴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부당해고를 당했을 때도 '부모님 그늘에서 자라지 못해 그렇다'는 말을 종종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마음이 쓰였는지 모른다. 이런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아동들의 마음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에 아동양육시설에 있는 청소년들, 세상 끝에 내몰린 ‘보호 종료 아동’들에게 온기를 전하고 싶었다.     


지난 5월 11일, 오전 일찍 삼일육아원에 도착했다. 행사를 준비하며 52 패밀리 회원들과 암 투병 과정의 경험을 공유했다. 항암치료를 받은 이후의 삶이 어떤 부작용으로 힘들었는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은 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함께 웃고 울었다. 그 순간, 어떤 어려움을 겪더라도 서로에게 힘이 되어 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한 달 전부터 어린이날 행사 준비를 했다. 아동양육시설에 지내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특별한 경험과 잊지 못할 추억을 선사해 주려고 노력했다. 지역사회에서 다양한 재능 활동을 하고 있는 전래놀이 전문가 손은영 대표, 생태환경교육연구소 ‘풀씨’ 김수정 대표, 더블레싱도그 작가 한송희, 음악 전공자 강진아, 전문가들에게 재능기부를 요청했다. 준비하는 과정이 한 달 이상 소요됐지만 이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아이들에게 큰 기쁨과 즐거움을 안겨 주었다.      


재능기부는 단순히 시간과 노력을 기부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우리는 지역사회와 함께 소통하며 아이들에게 희망과 꿈을 심어주는 소중한 추억을 만들었다. 작은 일이라도 함께 나누면 소중한 시간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어린이날 행사를 통해 아이들에게 사랑과 희망을 전할 수 있었다. 그리고 52 패밀리 회원들 또한 나에게 큰 용기와 힘을 주었다. 항암 이후의 삶은 이들과 함께하는 시간 속에서 더욱 풍요로워졌고, 여럿이 함께하는 일은 나에게 큰 보람을 주었다.     


보육원 행사는 단순한 이벤트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사랑과 희망의 소통이었고, 나의 삶에도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 주었다. 앞으로도 52 패밀리 회원들과 함께 더 많은 순간을 만들어 나가고자 한다. 함께하는 모든 이들에게 나의 사랑과 감사를 전하며, 모두가 행복한 미래를 함께 꿈꾸고 싶다.    

 

무엇보다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살아가면서 우리는 감사하고 소중한 순간을 더욱 가치 있게 여겨야 한다. 감사함과 소중함을 더욱 많은 이들과 공유하면서 더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다사다난했던 여정들을 내가 겪었기 때문에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오늘 하루가 마지막이라면 무엇을 할지, 누구와 함께할지 신중하게 선택하고, 우리 주변의 소중한 것들을 더욱 가깝게 느낄 것이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은 어떤 관점에서 보면 무거운 단어로 해석될 수 있지만, 내 삶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나는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새로운 삶에 집중하기 위해 뜻하지 않게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취재 요청을 받게 되었다. 그 과정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다. 취재원들의 소소한 이야기를 담아보니 우리 모두의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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