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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브런치는 나에게 이렇게 왔다

사진> 에릭 요한슨 전시회에서 <the library> 일부분만 찍음

'글이 작품이 되는 공간, 브런치'에 관해 처음 알게 된 것은 2019년 12월, 저물어 가는 한 해를 조금이라도 연장시켜 보려는 어느 작은 송년회 자리에서였다. 한 선생님이 얼마 전에 '브런치 작가'가 되어 글을 쓰고 있다고 했다.  평소 글쓰기에 관심이 많았지만, '브런치'란 아침 점심을 함께 먹는 간단한 식사로만 알고 있던 나에게 '글 쓰는 공간, 브런치'는 매우 신선하게 느껴졌다. 왠지 맛있는 글이 저절로 써질 것만 같은, 우아한 공간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햇살 드는 창가의 작은 책상, 고소한 커피 한 잔의 여유와 함께 글을 쓰는 내 모습이 그려졌다.

"어머, 이름도 예쁘네요. 나도 들어가 봐야겠어요."

"그런데, 누구나 바로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작가 신청을 해서 합격만 사람만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이에요."

"어머나, 그래요? 왠지 더 들어가 보고 싶은 곳이네요."

어렸을 때부터 성장 단계를 한 단계 한 단계 통과할 때마다 시험을 보고, 합격이라는 관문을 통과할 때마다 느껴지던 희열감이 함께 떠올랐다. 도전 의지가 쑥쑥.

집에 와서도 '브런치'라는 말이 계속 마음속에서 날아다녔다.

과연 '브런치'라는 공간은 어떤 곳인가?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가입하고, 어떤 활동들을 하는 곳인가, 둘러보기 시작했다. 글쓰기를 사모하는 사람들이 모여 자기 성장 및 치유하는 공간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꿈꿔보는 '저자'가 될 수도 있는 그런 마법 같은 공간.


아하,

나는 먼저 예전에 써 놨던 글 몇 편을 올려놓고, 간단하게 내 소개를 하고, 고민의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는 목차를 작성하고(반려 고양이에 관한 글을 쓰고 싶다고 했다), 깃털처럼 가볍게 글을 쓰고 망설임도 없이 '작가 신청하기'를 눌렀다. 그리고 혹시나 하는 설렘으로 메일을 기다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맞춤법도 띄어쓰기도 별로 고려하지 않았던 거 같다.

가물가물한데, 2~3일 후였을까?

"안타깝게도 이번에는 모시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불합격이란 말은 언제라도 마음 한 곳을 스산하게 만드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생각보다 어려운 곳인가 보네.'

씁쓸하게 브런치라는 공간을 다시 둘러보면서 내 글이 입장할 수 없는 공간이라 생각하니 더 아쉽고, 그곳에 올라온 글들에서는 빛이 나는 것 같았다.

그러고는 바로 도전할 생각은 나지 않았고, '1인 1저 책쓰기'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부터는 '브런치'라는 공간을 잠시 망각하고 있었다.


그렇게 2020년, 2021년이 바쁘게 흘러갔다.


강력한 검은 호랑이해 2022년을 맞아 적막하지만 평화로운 설 연휴를 보내고 있었다.

2월 2일 마지막 연휴를 보내기 아쉬워, <독서의 역사>라는 책을 읽고 있었다.

책을 펼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책 속에 빠져들면서 그동안 내가 읽어왔던 책 목록들이 머리 위로 떠 다니기 시작했다. 아, 써야 하는데. 쓰고 싶다.

마음만 먹으면 쓸 수 있는 공간들은 어디라도 있었다. 이미 사용하고 있는 블로그도 있었고.


그때 다시 '브런치'라는 공간이 떠올랐다.

진지하게 글을 쓰고, 같이 공유할 수 있는 그런 곳.

책을 읽다가 벌떡 일어나 노트북을 켜고 나는 다시 '브런치'라는 공간으로 재접속했다.


켜자마자,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안타깝게도 이번에는 모시지 못하게 되었습니다."라는 문장이 선명하게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내가 많이 성장했다고 자신했다.

내가 뭘 쓰고 싶어 하는지도, 다른 사람들과 무슨 내용으로 공유하고 싶은 지도 확실했다.

나는 다시 2편의 글을 새로 저장하고, 내 정체성을 잘 나타내는 단어들로 300자를 채우고,

쓰고 싶은 주제를 이번에도 망설임 없이, 그렇지만 진중하게 300자를 채워갔다.

그리고 '작가 신청하기'를 간절한 마음을 담아 신중하게 눌렀다.

5일 안에 연락을 준다는 내용이 나왔다.

5일, 기다려 보자.


그러다가 다시 검색창에서 '브런치 작가'를 검색해 보니, 하루 만에 합격 메일이 왔다는 사람도 있었고, 선정 메일은 1~2일 안에 빠르게 온다는 글을 보면서부터, 갑자기 내 마음은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시간을 세 보기 시작했다.

출근하고 목요일에 시간 날 때마다, 메일을 확인했다.

자기 전에도 메일을 확인했지만, 없었다.

연휴 마지막 날, '미스터 선샤인' 최종회를 다시 보면서 엄청나게 울었었는데, 그 감정이 계속 이어졌는지 마음 한 곳이 가라앉고, 우울하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었는데, 메일까지도 올 기미가 보이지 않자,

'이번에도 안 되는 것인가? 나는 글쓰기 역량이 안 되는 것일까?'

우울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마음을 가다듬고 잠을 청했다.

'안 되면 어때? 또 다른 무언 가가 있겠지.' 위로하며.


그러다가 금요일 입춘.

오전 동아리 모임을 하다가, 우연히 열어 본 메일에서

'브런치 작가가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라는 글을 봤을 때 소리 지를 뻔했다. 좋아서.



나는 요즘 글을 쓰고 싶다.라는 생각에 자주 빠져들곤 한다.

노트북에 글 쓸 때마다 타다닥 거리는 소리와 함께 경쾌하게 움직이는 내 손가락들이 기분 좋게 한다.


글쓰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이곳에서, 나는

나를 만들어가는 독서, 치유 이야기

'우리'로 나아가게 하는 독서, 교육 이야기

내 인생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반려 고양이, 초코 이야기

여러 힘든 점들도 있지만, 천직이어서 즐거운 사서로서의 삶을

이곳에서 열심히 기록해 나가고 싶다.



내 안의 숲 / 해솔


겨울 숲에 가 보았습니다. 고운 이파리 다 떨쳐버리고도

의연하게 서 있는 겨울나무들은 서로 단꿈을 꾸고 있었습니다.

맨 가지로 서로서로 안아 안고 온전한 순응 속에 잠겨

꿈들을 나누는 모습은 내 안의 나를,

내 안의 숲을 깨우기 시작했습니다.


내 안에도 넘쳐나는 초록으로 빛나던 푸른 숲이 있었습니다.

내 안의 꿈들로 무성하던 그 숲들은 이제는

물기 없이 바스락바스락거립니다.


겨울 숲에 앉아 조용히 두런두런 나무들의 꿈 소리를 듣습니다.

그 소리 없는 바람들이 내 안의 푸른 숲을 깨우기 시작합니다.

내 안의 내가 꿈틀거립니다.

겨우내 단꿈으로 나를 키워 새봄에는 화사한 이파리들을

마무 마구 피워 내는 나는,

꿈꾸는 한 그루 나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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