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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행복한 눈사람

『안데르센 메르헨』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지음, 문학과 지성사, 20

어제 토요일 새벽에 올 마지막일지도 모를 눈이 살짝 내렸다.

예전에 써 놨던, 눈사람 이야기가 생각났다.

나는 어렸을 때, 안데르센 동화를 읽으며 자랐다.

지금도 안데르센은 내 안의 동화 세상을 따뜻하게 상상할 수 있도록 지지해 주는 사람이다.  



"와, 눈이다."

도서관에 한 작은 아이의 감격스러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고개를 숙이고 책을 읽던 사람들의 얼굴이 일제히 고개를 들더니, 커다란 창으로 눈이 향했다. 과연 하늘에선 하얀 눈이 펄펄 내리고 있었다.

잠시 신기한 듯 눈을 쳐다보던 사람들은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다시 고개를 숙이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작은 아이만이 얼굴을 반짝이더니 바깥으로 뛰어나갔다.

사람들이 계속 밖을 바라보았다면, 창에 달라붙어 유독 녹지 않은 눈송이 하나를 발견했을 것이다.

유난히 크고 하얗게 반짝거리는 눈송이 하나가 창문에 꽉 달라붙어 있었다.

‘아, 사람들은 나에게 관심이 없나 봐.’

눈송이는 속상했지만, 창안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사람들의 표정은 편안해 보였고, 추운 겨울이어도 초록 식물들은 꽃을 피우고 있었다.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은 사람들은 뭘 저렇게 열심히 보는 걸까?’

눈송이는 서운한 마음 한편에도, 사람들의 마음을 저렇게 빼앗는 것이 무엇인지 무척 궁금했다.

‘나도 저 안으로 들어가 보고 싶다.’

그때 눈송이 눈에 한 여자의 모습이 보였다.

커다란 책상 앞에 앉아 뭔가를 열심히 만들고 있었다. 커다란 눈덩이를 닮았는데 녹지도 않았다.

‘이곳에는 신기한 것이 많구나.’ 눈송이는 생각했다.

눈송이는 혹여나 바람이 불어 다른 곳으로 날려 갈까 봐 더욱더 창을 꽉 껴안았다.

그때 아까 밖으로 뛰쳐나갔던 작은 아이가 불구레진 얼굴로 들어왔다.

아이의 손에는 작은 눈사람이 들려있었다.

눈송이는 자기도 모르게 아, 하고 감탄사를 쏟아냈다.

‘저 눈사람은 좋겠다. 나도 저 안으로 들어가 보고 싶다.’

그때 뭔가를 열심히 만들고 있던 여자가 그 아이에게 가더니,

“어머나, 예쁜 눈사람이구나. 나도 지금 눈사람 만들고 있는데”

여자의 손에는 흰 양말에 솜으로 몸을 불린 눈사람이 들려있었다.

여자와 아이는 서로의 눈사람을 바라보면서 웃기 시작했다.

“이 양말 눈사람으로 뭘 하는 거예요?”

“응. 곧 도서관 행사로 눈사람 만들기 하려고 하거든. 마음에 드니?”

“네. 정말 귀여운 눈사람이에요. 내가 만든 눈사람도 예쁘죠?”

아이의 손에 들린 눈사람은 벌써 조금씩 녹아내리고 있었다.

“아, 이 눈사람은 도서관에서 살 수 없는데, 곧 녹아 버릴 거야,”

여자의 말에 아이의 얼굴이 울 듯이 일그러지더니.

“이렇게 이쁜 눈사람이 사라져 버린다면, 난 무척 슬플 거 같아요.”

아이는 울 듯한 얼굴로 도서관 주변을 둘러보다가, 창문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는 커다란 눈송이 하나를 발견했다.

“저기 좀 보세요. 저렇게 큰 눈송이는 본 적이 없어요.”

“어머, 정말?”

여자랑 아이는 서로의 눈사람을 들고, 발소리를 죽이며 창문으로 다가갔다.

“정말 커다란 눈송이네.”

여자와 아이는 마냥 신기해서 눈송이를 계속 바라보았다.

‘아,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도 있구나.’ 자신에게 아무 관심도 없는 사람들 때문에 서운했던 눈송이도 기분이 좋아져서 더욱 하얀 별처럼 반짝이기 시작했다.

“선생님, 내 눈사람이 조금 녹아내렸는데, 저 커다란 눈을 여기에 붙이고 싶어요,”

창에 붙어있던 눈송이도 그 말을 듣고 마음이 설레기 시작했다.

‘내가 저 큰 눈사람이 될 수 있다고?’

여자는 그 말을 듣고 한참 동안 생각하더니,

“그래? 네 눈사람이 슬퍼 보이는 것도 같구나. 네 눈사람을 행복하게 해 주자.”

여자는 아이의 손에 들려있던 눈사람을 받아 들더니,

창문을 열고 커다란 눈송이 옆에 눈사람을 가만히 들이대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커다란 눈송이는 그대로 눈사람 몸에 찰싹 붙었다.

조금 녹아내렸던 눈사람은 다시 둥글둥글한 멋진 눈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커다란 눈송이는 눈사람이 되어 도서관에 들어올 수 있었다.

여자는 차가운 바람이 고여 있는 창가에 눈사람과 솜으로 만든 눈사람을 나란히 내려놓았다.

“어떻게 하면 눈사람이 안 녹을까?”

걱정하는 아이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여자는 한 권의 책을 가져왔다.

“이 책 한 번 읽어보지 않을래?”

아이는 여자가 들고 온 책을 받아 들었다. <안데르센 메르헨>이라고 적힌 커다란 책이었다.

“이 책에도 ‘눈사람’이 나와. 한번 읽어보렴.”

아이는 조금씩 녹아내리는 눈사람과 솜 눈사람 옆에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 속의 눈사람은 난로를 그리워하다가 햇볕에 녹아 사라졌다.

훌쩍이던 아이는 자기가 만든 눈사람을 바라보았다. 웃고 있는 것만 같았다.

아이는 눈사람을 집에 데려가려다가, 그냥 도서관에 두고 가기로 했다.

“녹으면 안 돼, 눈사람. 선생님, 우리 눈사람 잘 부탁해요.”

아이는 연신 눈사람을 바라보면서 집으로 돌아갔다.

사람들이 모두 돌아간 도서관을 정리하면서 여자는 조금씩 얼굴이 흐려지는 눈사람을 바라보다가, 솜 눈사람을 그 옆에 바짝 세우더니,

“네가 이 눈사람 지켜 줄래?” 하고는 집으로 돌아갔다.


아무도 없는 캄캄한 도서관은 차가운 냉기로 가득했다.

눈사람은 옆에 있는 솜 눈사람에게 말했다.

“네가 부럽다. 너는 절대 녹지 않을 거잖아.”

눈사람은 조금씩 녹아내리기 시작했고, 옆에 있는 솜 눈사람 몸은 이상하게도 더욱 하얗게 빛이 나기 시작했다.      


아침이 되고, 여자가 도서관으로 들어왔다. 들어오자마자 여자는 눈사람이 있는 곳으로 갔다.

눈사람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솜 눈사람은 유난히도 하얗게 빛이 났다.

“이상하다. 물방울이 하나도 없네.”

여자는 솜 눈사람을 자신의 자리로 데려가 사람들이 잘 보이는 곳에 내려놓았다.

조금 후에, 어제의 그 작은 아이가 들어오더니,

“와, 내 눈사람이다.”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1인 1저 책쓰기 『도도란 정애 씨의 도서관 이야기』에 수록되어 있는 이야기.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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