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초엽 작가에 관해 처음 알게 된 때는, 작년 10월 도서관 시민학교 '독서토론' 강의 때였다. 김상균 작가의 <메타버스>를 읽고 비경쟁 독서토론을 하는 중에, 강사 선생님이 나에게 '메타버스' 공간을 어떻게 활용하고 싶은지 물어보셨다. 나는 사서 입장에서 생각해 보곤 했던 내용을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몇 년 전부터 '작은도서관'의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서, 시립도서관과 구별되게 작은도서관은 지역주민들의 이야기나 마을 역사를 저장하는 공간으로 활용하면 좋겠다는 의견들이 있었다. 나는 그 연장선에서 '메타버스' 가상공간에 도서관을 만들어서 지역주민들의 역사를 기록하고 함께 공유하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서 요즘 나이를 먹으면서 소중한 존재를, 언제라도 상실할 수 있다는 불안감에 종종 휩싸이곤 하는데, 이런 가상의 공간을 통해 만남을 이어간다면 그런 불안감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요, 라는 말을 덧붙였던 거 같다. 그때 참여자 한 분이,
"그런 소설이 나와 있어요. <관내분실>, 한 번 읽어보세요."
"아, 그래요?"
독특해 보이는 제목과 지금도 이미 날마다 메타버스 공간에서 살고 있지만 -- <메타버스>라는 책을 읽으면서 내가 날마다 사용하고 있는 페이스북이나 유튜브 등 온라인 활동이 메타버스의 한 부분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앞으로는 어느 정도의 가상공간에 살게 될지 가늠할 수도 없다는 것을 <메타버스>라는 책을 읽으면서 나름 충격을 받았던 터라, 한 번은 읽어보고 싶었던 책을 이제야 읽어보게 되었다.
'관내분실'은 김초엽 작가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 수록되어 있는 단편이다.
5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 '관내분실'이 가장 마음이 와닿았다.
공간이 도서관이기도 했지만, 지금의 도서관과는 완전히 다른, 죽은 사람들의 마인드가 데이터로 저장되어 인덱스화되어 있는 추모 공간이다. 죽은 사람들의 뇌는 동의를 얻은 후, 마인드 업로딩(뇌의 시냅스 패턴을 스캔하여 시뮬레이션으로 구현)을 통해 도서관이라는 공간에 데이터로 저장되고, 사서에 의해 관리되고, 남겨진 사람들은 아무 때나 망자가 그리울 때 도서관에 가서 현실인 듯 생생한 그 사람을 만나볼 수 있다.
임신 초기의 지민이 엄마를 찾아 도서관에 가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평생 엄마의 병적인 우울증과 자신에 대한 지겨운 집착 때문에 괴로웠던 지민은 엄마가 병원에서 돌아가셨다는 부음을 들었을 때도, 별 상실감을 느끼지 못했었다. 그랬던 지민이 갑작스럽게 임신이 되면서 '엄마'가 되어야 하는 상황에서 자신의 '엄마'와는 다른 '엄마'가 되기 위해서 도서관으로 엄마를 찾아 나선다.
"관내분실인 것 같습니다."(p.221)
사서는 지민에게 엄마 마인드 인덱스가 검색이 안 된다면서 '분실' 된 거 같다고 말한다.
가족 중 누군가가 엄마를 나타낼 수 있는 마인드 인덱스를 지워 버리는 바람에, 엄마는 도서관의 저장 공간 어딘가에는 확실히 존재하지만, 찾을 수는 없는 '실종' 상태로 빠져 있다는 것이었다.
돌아가신 엄마와라도 관계 회복이 필요했던 지민은 생각보다 큰 충격을 받게 되면서, 엄마 삶의 흔적을 찾아 나선다. 그 과정에서 엄마와 함께한 20년이라는 시간속에, 가족이라는 관계 안에서 거의 기억되고 있는 것이 없다는 것에 새삼 놀라면서 엄마의 삶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은 욕구를 느끼게 된다. 다행히도 도서관 관계자로부터 '표준형 시물레이션'이라는 방법을 권유받게 되고, 실종되어 버린 엄마의 마인드를 조금이나마 강력하게 끌어당길 수 있는 엄마만의 고유한 유품을 찾아 나선다.
어쩔 수 없이 엄마의 죽음을 정리한 현욱에게 연락을 한다. 현욱은 아빠 이름이다. 항상 일에 바빴던 현욱은 산후우울증에서 시작된 아내의 병적 상태를 방관하면서 병을 키우게 했고, 자식들 간의 관계에서도 거의 단절된 사람이다.
그런 아빠를 찾아가 엄마의 유물 속에서 처음으로 '김은하(엄마 이름)'만의 고유한 삶을 그려볼 수 있는 물건을 찾아낸다. 그것은 바로 '김은하'라는 엄마 이름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는 종이책이었다. 전자책에 밀려 사라져 가고 있던 종이책을 편집했던 김은하는 지민을 임신하면서 자연스럽게 '김은하'의 삶 대신 '지민 엄마'로서의 삶을 시작했지만, 남편으로부터도 외면당한 채 자신만의 왜곡된 정신 공간에 갇혀 불행하게 살다가 병원에서 삶을 마감하게 된다.
처음으로 엄마만의 고유한 삶을 알게 된 지민은 도서관으로 가서 드디어 엄마를 만나게 된다.
책을 읽으면서 내 정신이 책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나이를 먹으면서 언젠가는 내가 부딪힐 수밖에 없는 상실의 순간들이 떠올랐다.
뚝딱뚝딱, 누구에게나 평등한 시간의 흐름으로 나에게도 언젠가는 몰아닥칠 소중한 존재들의 부재의 시간이 언젠가부터 상상 속으로 불현듯 찾아와 불안해지곤 한다.
그럴 때, '마인드 업로딩'과 같은 비슷한 것을 상상했을 때도 있었다.
상실을 이겨낼 수 있는 존재의 흔적.
나는 언제나 세상 그 누구도 부럽지 않은 한 가지가 있다.
그것은 지금까지 내 삶을 언제나 사랑과 지지로 보듬어준 엄마의 사랑이다.
세상 속에서 사람들과 꽤 오래 살다 보니, 이 무한한 사랑이 얼마나 큰 선물인지 알게 되었다.
바다와 같은 엄마의 무한대의 사랑을 받아 본 나는, 나름 착한 지구인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언젠가부터 꼬부랑 할머니가 되어버린 엄마와 통화하면서 엄마 목소리를 핸드폰에 꾹꾹 저장하는 습관이 생겼다. 시간을 이겨낼 수 있는, 나만의 보물을 만들기 위해서.
내가 죽을 때쯤 되면, 정말로 '마인드 도서관'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그때 누군가가 가상공간에 살고 있는 나에게 접속을 해 온다면, 아마 작은 치즈 고양이와 함께 종이책을 정리하는 나를 만나볼 수도 있겠다,는 상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