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말, 올 첫 독서동아리 3월 토론 도서로 박완서 님의 <나목>이 선정되면서 마음이 설렜다. 박완서 님의 작품은 제목으로만 많이 접했지, 작품으로 정독하지는 못했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박완서 님의 작품 세계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을 거란 마음에서였다. 간절한 마음으로 봄을 기다리는 시기에 너무도 잘 어울리는 작품 '나목'에 좀 더 다가가고 싶으면, 덕수궁 국립현대미술관 <박수근 전 - 봄을 기다리는 나목>을 먼저 꼭 관람하라는 발제자의 말에 서둘러 전시 예약을 하고, 2월 끝날에 덕수궁 나들이를 하게 되었다.
정말 오랜만에 방문한 덕수궁 입구는 공사 중이었고, 역시나 박근혜를 사랑하는 어르신들로 소란스러웠다.
덕수궁으로 들어서면서 시야에 들어온 것은 나무들이었다.
의연하게 서 있는 소나무에게서는 오랜 시간을 이겨낸 당당한 자존감이 느껴졌다.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는데, 유난히 벽 쪽에 있는 낮은 나뭇가지들에서 초록 안개가 끼여 있는 듯 신비롭게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가는 몸대가 초록색이었다. 신비로운 초록 가지에서 황금꽃들이 피어날 때 다시 한번 가봐야겠다.
최근에 <미스터 션샤인>을 재방송으로 다시 보면서 엄청 울었었는데, 그 여운 때문인지 덕수궁에서 일어났던 슬픈 역사가 생생하게 다가왔다. 전각 단청이나 나무문에 칠해져 있는 단아한 녹색은 어딘지 모르게 처연하면서도 깊은 아름다움으로 가득했다. 한참이나 서서 바라보았다.
조금은 스산한 경내를 돌아보다가 국립현대미술관으로 들어섰다. 곧 끝나는 전시 때문인지 사람들이 꽤 많았다.
박완서 작가는 1931년에 태어나 서울대 국문과에 입학했으나, 6.25 전쟁으로 학교를 그만두고, 40세에 미8군 PX 초상화부에 근무하면서 만나게 된 박수근 화백과의 인연을 토대로 쓴 <나목>으로 등단했다. 작가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40세로 늦게 등단한 박완서 작가의 경우는, '늦은 시작은 없다'는 희망의 사례로 항상 이야기되곤 한다.
나무와 두 여인 / 박수근
UN의 서울 수복(1950년 9월 28일)으로 서울로 돌아온 경아는 PX 초상화부에서 세일즈 걸로 근무하고 있다. PX는 지금의 명동 신세계 백화점 자리로, 경아는 근무가 끝나면 전쟁으로 피폐해진 충무로를 지나 한쪽 지붕이 폭격으로 날아간, 을씨년스러운 집으로 바삐 돌아간다. 집으로 돌아간 경아에게 엄마는 매일 희멀건 김칫국만을 끓여주신다. 전쟁으로 목숨보다 사랑하던 아들들을 잃어버리고, 딸을 투명인간처럼 대하는 엄마의 모습은 생명력을 잃어버린 고목 같다.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엄마를 보면서 슬픔과 혐오감 사이에서 방황하던 경아에게 PX로 새로운 환쟁이, 진짜 예술가 옥희도(박수근) 씨가 나타난다. 주변 사람들과는 다르게 말없이 그림만 그리는 그에게 경아는 전쟁이라는 광포한 시간 속에서도 사랑이라는 감정에 빠져든다. 그런 경아를 사랑하는 PX 전공 태수도 있다.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었지만, 전쟁으로 인한 가난 속에서 진짜 그림을 그릴 수없는 현실에 절망하던 옥희도 씨와 엄마에게 존재를 부정당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에 관한 혼란으로 힘들어하던 경아는 서로에게 따뜻한 빛이 되면서 사랑하게 된다.
그리고, 옥희도 씨는 경아와의 만남으로 예술성을 회복하면서 드디어 '나목'을 그리게 된다.
"오, 어떡하면 자네가 알아줄 수 있을까? 내가 살아온, 미칠 듯이 암담한 몇 년을, 그 회색빛 절망을, 그 숱한 굴욕을, 가정적으로가 아닌 예술가로서 말일세. 나는 곧 질식할 것 같았네. 이 절망적인 회색빛 생활에서 문득 경아라는 풍성한 색채의 신기루에 황홀하게 정신을 팔았대서 나는 과연 파렴치한 치한일까? 이 신기루에 바친 소년 같은 동경이 그렇게도 부도덕한 것일까?" p.360
태수 앞에서 옥희도 씨는 이렇게 절절하게 자신의 내면을 드러낸다.
갑작스러운 폐렴으로 인해 엄마가 돌아가시고, 고아가 된 경아는 가족에게로 완전히 돌아간 옥희도 씨를 가슴에 묻고 태수와 결혼하게 된다.
작가의 첫 등단 작품이자 장편 소설인 <나목>을 읽으면서, 타고난 작가일 수밖에 없는 박완서님를 만날 수 있었다. 본인 말처럼 6.25라는 전쟁을 만나지 않았으면, 교사가 되었을 거라는 말도 있지만,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가진 사람은 어떻게든, 글을 쓸 수밖에 없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 현대사의 비극을 온몸으로 통과한 박완서 작가는 그 아픔들을 글로 쓰면서 치유했다고 한다. 가끔
작가에의 삶을 동경하기도 하지만, 작가는 '삶의 고통을 스스로 짊어지는 자'라는 생각이 들면서, '고통의 무게'를 견뎌야 하는 것을 생각하면 두렵다는 생각도 든다.
이제는 완연한 봄이 되면서, 나목들이 푸른 생명을 피워내고 있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박수근 평전>을 찾아 읽어봐야겠다.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나무판에 그렸던 <농악>
나무판에 그린 그림들은 캔버스에 그린 그림들보다 왠지 화사하고 따뜻해서 마음에 와 닿았다.
나는 옥희도 씨를 쳐다보았다. 그는 하염없이 화필을 놓고 잿빛 휘장을 바라볼 때처럼 그런 시선으로 침팬지를 보고 있었다. 문득 나는 그도 역시 침팬지의 고독을 앓고 있음을 짐작했다. 그리고 나도 그를 도울 수 없음을.(...) 침팬지와 옥희도와 나... 각각 제 나름의 차원이 다른 고독을, 서로 나눌 수도 도울 수도 없는 자기만의 고독을 앓고 있음을 나는 뼈져리게 느꼈다. p.86
그가 자기만의 고독을 아무에게도 나누려 들지 않듯이 나도 아무에게도 도움을 받을 수 없는 나만의 일이 있는 것이다. p.86
그는 '화안한'을 어쩌면 그렇게 풍부한 감성을 곁들여, 고혹적으로 발음을 하는지 나는 단박에 가슴이 울렁거려왔다. 빛과 기쁨이 있는 생활에의 갈망이 세차게 고개를 들었다. p.177
"난 오랫동안 그림을 못 그렸어. 너무 오랫동안....아직도 내가 화가인지 궁금할 만큼 오랫동안. 나는 내가 사람이 아니란 것보다 화가가 아닌 것이 더 두려워. 화가가 아닌 난 무엇일 수 있을까. 도무지 짐작도 할 수 없어. 며칠 동안만 내가 화가일 수 있게 해줘."
"그렇게 화가이고 싶으세요?"
"그냥 그림이 그리고 싶어. 미치도록 그리고 싶어. 정진과 몰두의 시간을 마음껏 누리고 싶어." p.229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나는 전쟁을 기다리지도 바라지도 않아도 되는 것이다. 나도 여느 여자들처럼 전쟁을 조금쯤 두려워하며, 전쟁으로부터 자기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 용감해질 수도 있어야겠다. p.326
일찍이 누구도 한국전쟁 이후 한국 사회를 이러한 비화해적 분열의 주체 위치 속에서 탐색한 이는 없었다. 이것이 작가 박완서, 그녀의 독보적인 위치이기도 하다. 이러한 주체 위치 속에서 박완서는 한국 사회를 전쟁 상태적 신체의 시선 속에서, 그 양가적 진동 속에서 냉정하게 비판할 수 있었던 것이다. p.3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