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에서 요가하기
어느새 런던 생활 3개월이 넘어가는 중.
이 말은 여기에서 요가원을 다닌 지도 벌써 세 달째.
런던의 겨울은 오후 3시 반이면 해가져서 밤이 길고, 거의 매일 흐리거나 비가 내리며 바람도 겁나 불고 뼛속까지 으슬으슬 추운 날의 연속이다.
(정말 왜 영국 날씨가 우울하다고 하는지 온몸으로 체감 중.)
여기저기 구경하러 다니는 것도 런던에 갓 도착했던 9월에나 가능했고 요즘은 짧은 해와 궂은 날씨 때문에 집-학교-요가원의 생활 반복이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해외 출장 와서 한국에 있을 때보다 더 성실하게, 더 열심히 요가를 하고 있다.
처음에는 모든 수업들이 다 궁금해서 온갖 클래스에 들어갔었는데, 이제는 나와 잘 맞는 몇몇 수업에 정착하게 되었다.
내가 출석하는 Top 3 클래스는 아래와 같다.
Emi의 Dharma yoga.
Eleonora의 Inversion.
Saskia의 Vinyasa.
그리고 Echo의 Rocket 수업이나 Sarah의 Hot yoga 클래스도 자주 듣는다.
(이쯤 되면 모든 수업이 그냥 좋은 듯?)
오늘은 나의 페이보릿 3 클래스 중에서 2번째인 Eleonra의 Inversion 클래스에 관한 글을 써보려고 한다.
Inversion은 말 그대로 '거꾸로', 즉 머리서기나 핸드스탠드를 위주로 연습하는 시간.
매주 일요일 오후 3시 수업으로 여기에는 항상 수련하는 고정 멤버들이 있다.
다른 클래스와 비교하면 비교적 소그룹 클래스라고 느껴질 정도로 몇몇 사람들만 꾸준히 수련을 하러 온다.
하긴 생각해 보면 나처럼 연고 없는 타지에서 주말에 딱히 만날 사람도 없는 외국인 아니면 요가에 미친 자들 빼고는 다들 일요일에 쉬거나 휴일을 즐기고 있지 않을까?
아무튼 이 수업은 주로 뒤집힌 자세를 연습하기 때문에 코어와 근력 위주로 수련하는 프로그램으로 진행된다.
예를 들면 웜업으로 '다운독-하이플랭크-로우플랭크-하이플랭크-다운독'을 계속 반복하는 등.
그래서인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요가의 이미지가 아닌, 뭐랄까? 뭔가 기계체조 같은 종목에 가까운 느낌이다.
한국에서는 핸드스탠드 자체를 많이 안 해봐서 이곳에서 이것을 집중적으로 수련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점이 굉장히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런데 핸드스탠드를 연습해 볼 수 있다는 설렘도 있었지만 사실 처음에는 이 수업에 참여했을 때 몹시 소외감이 들었다.
왜냐하면 앞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Inversion 클래스의 고정 멤버들이 있어서 선생님을 포함한 회원들끼리 항상 친목행위(?)처럼 수련 전에 약 5-10분 정도 항상 수다를 떨었는데, 이 시간 동안 나만 아싸처럼 조용히 매트 위에 앉아서 그 뻘쭘한 시간을 견뎌야 했다.
물론 아무도 나를 신경 안 썼겠지만 나 혼자만 뭔가 눈치 보게 되는? 그런 상황.
그리고 영어를 교재로 공부한 한국인에게 그들의 빠른 템포로 진행되는 일상 수다는 절반 이상은 알아듣지도 못해서 더 소외감이 가중되었다고나 할까.
그래서 한동안은 수업을 가기 전부터 은근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이 때문에 일요일 수련은 그냥 때려치울까라는 생각도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런던에서 1년 동안 핸드스탠드를 꼭 성공해 보겠다는 초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꿋꿋하게 3개월 동안 열심히 수업에 출석했다.
남들이 수다를 떨든지 말든지 나는 핸드스탠드를 하고 싶었기 때문.
(그리고 웃프지만 일요일 오후에는 요가 말고 할 게 없기도 했다.)
아무튼 그렇게 꾸준히 수업에 출석하다 보니 두 달째쯤 되었을까, 어느 날 동작 시범조가 되었다.
물론 핸드스탠드는 불가능했지만 아마도 시범조가 된 것은 선생님이 원하는 움직임을 정석적으로 해 보였기 때문인 듯?
시범이 끝난 후에는 사람들한테 박수를 받았는데, 부끄러우면서도 기분이 너무 좋았다.
꿔다 놓은 보릿자루 같은 존재에게도 이런 순간이 오다니.
그리고 얼마 전에는 수업이 끝난 후 선생님이 "Kim, 너도 우리 Inversion Lab 그룹에 너도 들어올래?"라고 물어봐서 뭔지 모르겠지만 좋다고 대답했더니 Whats app의 그룹챗에 초대받게 되었다.
이 것은 나도 이제 Sunday Yoga Club, 즉 일요일 요가 클럽의 정식 멤버가 되었다는 것!
정말 감격스러운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소외받던 외노자에서 로컬 피플들과 함께하는 그룹의 일부가 된 몹시 기념비적인 날이었다.
그룹챗에는 매주 수련한 영상이 올라오기도 하고 요가 관련 이야기나 수다를 나눈다.
그리고 1월에는 다 같이 태양의 서커스를 보러 가기로 했다.
갑자기 '웬 태양의 서커스?'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Eleonora는 우리가 공연을 보고 영감을 받아 더 요가를 잘하기 위한 취지로 그룹활동을 계획했다.
태양의 서커스가 목표라니, 도대체 회원들을 어떻게 만들려고?!
이제 겨우 정회원(?)이 되었지만, 어쨌든 소속감도 생기고 수다도 떨면서(아직은 100% 알아먹을 수 없는 영어 농담과 대화가 난무하지만.. ) 처음보다는 더 자연스럽게 본격적으로 일요일 수업을 참여하고 있다.
만일 내가 처음의 뻘쭘함을 이기지 못하고 일요일 수업을 포기해 버렸다면 이런 기회는 없었을지도.
소외감을 이겨내고 꾸준하게 수련한 나, 칭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