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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원의 초고들 Dec 18. 2023

반쯤 남은 샌드위치를 꺼내 쓰레기통에 버렸다

공항 내에서 주문한 써브웨이 샌드위치를 두 입 먹었을 때다. 고요했던 탑승구 앞 휴게 공간이 웅성거리는 소리로 가득 찼다. 중국에서 온 단체 여행객이다. 의자에 앉아 샌드위치를 오물거리며 풀어진 미간으로 바라보니, 말을 서로 주고받는 대화가 아닌 어느 한 점을 향한 불만을 모으는 거 같았다. 그중 한 여행객은 보다 기분이 상했는지 배낭 옆에 달린 자국 국기 색처럼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중국어를 할 줄 모르지만, 그들이 모으는 분노가 어디를 향해 있는지는 짐작할 수 있었다.


나도 삼십 분 전 탑승수속 단계에서 여권을 빼앗겼다. 그리고 군인이 쥔 내 여권을 쳐다보며 깜깜한 통로를 몇 번 지나고 이름 모를 작은 방에 들어갔다. 그 비좁은 공간에서 세 명의 군인에게 십 분간 여러 질문을 받았다. ‘러시아에 온 목적은 무엇이냐’, ‘어디서 공부했냐’, ‘언제 다시 러시아로 돌아올 거냐’ 등…. 러시아어를 곧잘 하는 나는 문제 없이 대답을 마쳤다. 그 후 돌려받은 여권과 함께 탑승수속을 마무리했다. 휴게 공간에 들어섰을 때는 긴장이 풀렸는지 배가 고팠다.


휴게 공간에는 아이리시 펍과 두 개의 면세점 그리고 써브웨이가 있었다. 네 가게는 서로 다른 물건을 취급하고 있지만, 전부 가게에 형광등이 하나만 있는 것처럼 어둡게 있었다. 심문의 여파 때문인지, 비행기에 올라탈 때까지 정신을 놓기 싫어 펍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바로 옆에 있는 써브웨이로 향했고 매번 먹던 메뉴를 주문했다. 포장지를 뜯고 샌드위치를 먹다 보니 공간이 북적해졌다. 그리고 세 입을 먹을 때 또 다른 중국 단체 관광객이 들어왔는데, 그 무리 끝에서 “까레이치! 까레이치!”가 들려왔다.


‘까레이치’는 한국인이란 뜻이다. 아까 내 여권을 가져갔던 군인이 왜인지 여기까지 와서 한국인을 찾고 있었다. 나는 이 공간에 한국인은 나밖에 없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괜히 고개를 좌우로 두리번거렸다. 확실히 한국인은 나뿐인 걸 확인하고, 반쯤 먹은 샌드위치를 조심스레 다시 포장지로 둘러쌌다. 내려둔 소지품을 주섬주섬 챙기고 일어나 군인에게 다가갔다. “즈데씨-(여기요-)”. 눈이 마주친 그는 ‘다이쩨 빠스뽀르뜨’라며 여권을 달라고 했다. 어느새 불만을 모으던 중국 관광객은 조용해졌다.


“하라쇼(알겠습니다)” 나는 여권을 순순히 건네줬다. 괜히 불만을 표했다가 시간이 끌려 비행기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큰 보폭으로 걷는 군인을 따라 아까보다 밝은 듯한 복도를 다시 지났고, 출입 금지가 적힌 문 앞에 멈춰 섰다. 군인은 여권을 쥔 손으로 문을 밀었고, 문틈 사이로 처음 보는 동양인이 보였다. ‘빠마기떼 이무’ 컴퓨터 앞에 앉아 있던 또 다른 군인이 나를 보며 말했다. 그를 도와주라는 말이다. 곧바로 나는 “한국인이세요?”라고 물었고, 그는 “네, 네 한국인이세요?”라고 되물었다.


알고 보니 그 한국인과 군인은 영어로 대화를 시도했지만, 의사소통이 이뤄지지 않았다. 결국 나는 그들 사이에 끼게 되었고, 질의응답을 도왔다. 그는  임 씨였고, 여자 친구를 보러 러시아에 와서 며칠을 지냈다고 한다. 이어서 군인은 여자 친구 전화번호며, 이름이며, 어디서 만났는지 등 상세하게 물었다. 나는 이런 정보를 컴퓨터에 입력해서 뭐 하려는 건지 싶었지만, 비행기에 제때 올라타기 위해 신속하게 있는 그대로 전달했다. 그리고 십 분 뒤 그 비좁은 방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아으, 전쟁 때문이에요”라며 나는 그의 수속이 다 끝났을 때 말했다. 상기된 목소리로 임 씨는 “이런 게 있을 줄은 몰랐어요”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나는 외국인을 심문한다는 사실보다 전쟁이 진행되고 있는 국가임에도 누군가를 보러 온 사람이 더 놀라웠다. 그 둘은 데이트 어플을 통해 만났고, 이전에 실제로 본 적도 없었다고 했다. 그는 도와줘서 고맙다며 먹을 걸 산다고 했지만, 비행기는 도착해 있었다. 나는 “괜찮아요. 얼른 타시죠”라고 말했고, 주머니 속 반쯤 남은 샌드위치를 꺼내 쓰레기통에 버렸다.


한국에 도착할 때까지 비행기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잠만 잤다. 비행기 좌석에 앉자마자 안경을 벗어 주머니에 대충 넣었고, 바로 잘 준비를 했다. 어제저녁에 넷플릭스로 보고 싶었던 시리즈를 잔뜩 다운 받아뒀지만, 가방에서 아이패드를 꺼내지도 않았다. 중간에 승무원이 톡톡 어깨를 치며 ‘꾸리짜 일리 가뱌지나’ 소고기 아니면 닭고기인지 선택을 물었지만 나는 괜찮다며 잠을 선택했다.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 거 같았다. 


네 시간 반이 지났고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원래대로라면 아무도 안 보이는 게 맞았다. 왜냐하면 평일 늦은 저녁이었고, 친구들에게 몇 시에 도착한다는 말을 일부러 전하지 않았다. 그런데 입국장 문이 열렸을 때 영준이와 대한이가 있었다. “어, 뭐야”라는 말이 인사보다 먼저 나왔다. 급하게 임 씨에게 조심히 들어가라고 전하고, 웃음을 최대한 참으며 영준이랑 대한이 쪽으로 걸었다. “뭐 먹을래?” 저 쪽에서도 인사 없이 선택을 물었다. 아 ‘또, 질문이네’ 싶었고, 그럼 맥도날드로 가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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